8년 전 한국 땅에서 험난한 난민의 길을 선택한 줌마 사람들은 생계와 불안정한 신분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신들의 상황을 알리고 싸워왔다. 이주노동자로 살면서, 그리고 강제 추방될 경우 자신들을 억압하는 방글라데시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벼랑 끝에서도 결코 연대를 잊지 않았다. 버마, 팔레스타인, 그리고 이주노동자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함께 해왔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보이사비 축제를 통해 음식을 나누면서 지쳐 있는 수많은 친구와 동지들을 따뜻하게 품어왔다.
언제나 선한 웃음으로 보는 이의 마음까지 환하게 해주는 이들이 왜 방글라데시와 싸우는 전사가 될 수밖에 없었을까? 우선 그들의 고향인 치타공 산악지대의 상황부터 살펴보자.
방글라데시에서 독립 요구 중
방글라데시 동남부에 버마 아라칸 주와 인접한 치타공 산악지대(CHT)에는 챠크마, 마르마, 트리퓨라, 탄창갸, 미로, 루샤이, 큐미, 챡, 컁, 바움, 팡콰 등 11개 민족으로 구성된 선주민이 있고 이들을 줌마족이라 부른다. 치타공 산악지대는 방글라데시에 속해 있지만 줌마족은 방글라데시의 절대다수를 이루는 벵갈리족과 인종과 언어, 종교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독립하여 방글라데시와 다른 나라를 건설하지 못한 것은 이유가 있다.
인도가 파키스탄으로 분리되면서 파키스탄 정부가 이슬람 동화정책을 펴며 줌마인들을 탄압하였고, 이에 1971년 방글라데시(당시 동파키스탄)의 독립전쟁이 일어나자 줌마인들은 벵갈리인들과 함께 전쟁에 참가해 파키스탄에 맞섰다. 전쟁의 결과 독립한 방글라데시는 그러나 주류 벵갈리족 위주의 정책을 피게 된다. 줌마인 독립과 자치의 꿈은 또다시 무시되었다. 군대를 동원해 땅을 강제로 빼앗고 벵갈리 이주민들의 정착촌을 건설하자 줌마인들은 정당 활동과 무장 투쟁으로 방글라데시 정부와 군대의 탄압에 맞섰지만 정부와 군대, 벵갈리 정착민들의 탄압은 더욱 거세졌다.
군대는 무장 세력을 색출한다는 명목 하에 줌마인들의 집을 수시로 수색하였고, 죄 없는 민간인들을 투옥시키고 고문하였다. 그러는 동안 벵갈리 정착민들은 군대의 보호 아래 정착촌을 늘려나갔고 줌마인들을 공격해 방화와 폭행을 일삼으며 줌마족 여성들을 집단 성폭행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계속되는 벵갈리인들의 공격에 20만 명 이상이 고향을 떠나 인도나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다.
1997년 12월, 25년 이상 이어진 싸움을 끝내고자 줌마의 정당 PCJSS(Par Parbattya Chattagram Janasamhati Samity, ‘치타공 산악 지대 사람들의 연대 연합’이라는 뜻)은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고, PCJSS의 무장 조직인 샨티 바히니는 총을 내려 놓았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정부가 약속한 평화협정의 조항들은 이행되지 않았고, 정부는 줌마에 제한된 지역 자치를 제안하였다.
이에 학생들을 비롯한 일부가 PCJSS에서 분리되어 UPDF(연합민중민주전선)이라는 새로운 정당을 구성하고 완전자치를 요구하며 줌마의 싸움을 이어나갔다. 이후 PCJSS와 UPDF간의 싸움까지 더해지면서 줌마인들의 인권은 여전히 암흑속에 있다.
한국의 줌마인들은 바로 완전자치를 요구하는 UPDF를 지지하면서 끊임없이 방글라데시 정부와 싸우고 있다. 이들은 한남동에 위치한 방글라데시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것을 비롯하여 자신들을 상황을 알리는 활동들을 8년 동안 꾸준히 지속해오고 있다.
국내서 독립운동 8년째 지속
보이사비 축제는 바로 이러한 고된 그들의 투쟁을 희망으로 바꾸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전통음식과 술을 나누고 함께 노래하고 춤추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결코 포기하지 않은 완전한 자치와 귀향의 꿈을 함께 나누었다. 그들과 함께 해온 한국 활동가들에게는 보이사비 축제란 단순한 축제를 넘어서 단순한 동정과 관심에서 시작한 연대가 자신 스스로에게도 감동과 희망을 준다는 것을 배우는 자리였다. 물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항상 귀여운 웃음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줌마족 아이 주니와 게야가 커가는 모습을 확인하는 건 보이사비 축제가 가진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아무리 축제가 화려하고 그들의 웃음이 따뜻해도 그들이 모여 사는 김포가 결코 그들의 고향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나 인권과 평화에 대해서는 무개념인 이명박 정권 들어서는 더욱 그들의 삶과 투쟁이 어려워 질 것이다.
봄이 왔으나 봄이 온 것 같지 않고, 새해가 왔어도 여전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시절이지만 이미 8년 전부터 기약 없는 봄을 기다리며 새해를 맞이하면서도 희망의 노래를 불러온 이들이 있다. 어려울수록 연대만이 유일한 힘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들과 연대하기보다 그들과 함께 희망을 노래하기위해 올해 보이사비 축제에 많은 한국인들이 참가했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더 큰 감동과 기대보다 더 큰 희망들을 나누는 보이사비 축제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상임활동가
나현필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쓸모없는 실패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