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웃으로 온 예수

내 인생의 첫 수업[10] 문창식l승인2007.07.1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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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1학년 생활이 거의 끝나갈 무렵, 대구 근교에 위치한 한 아동복지시설(그때는 고아원이라고 불렀다)을 찾았다. 지금은 생활환경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1983년 당시 대부분 복지 시설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오죽했으면 수용시설보다 못하다고 했을까? 내가 방문했던 그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곳에는 영아부터 고등학생까지 100여명이 대가족을 이루고 생활하고 있었다. 어설픈 솜씨로 기타를 치며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코흘리개 꼬맹이 한 친구가 다가와서 무릎에 앉았다. 가만히 앉혀 주었더니 품속으로 자꾸 파고들었다. 애정에 굶주린 모습도 안타까웠지만 뼈마디만 앙상한 어린 친구의 육체가 더더욱 가슴 아팠다. 왜 이렇게 야위었을까? 궁금증은 점심시간이 되자 금방 풀어졌다. 아이들의 식판에는 보리밥 한 주걱, 멀건 무국, 그리고 춘장 한 스푼이 모두였다. 그것도 양이 너무 적어 아이들은 순식간에 식판을 비우고도 아쉬운 듯 자리를 뜨지 않았다.

민중의 실체를 보다

내 식판을 내밀자 잠시 서로 눈치를 보더니 서 너 개의 숟가락이 다투듯이 오갔다. 시설의 열악함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반찬 투정하고 먹다 남기는 일이 허다했던 나의 어린 시절이 그렇게 사치스럽고 죄스럽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 꼬맹이는 그동안 살아왔던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이념을 학습하거나 군부독재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집회에 쫓아다니고 자유, 평등을 안주삼아 거의 매일 이어졌던 술자리에서의 내 모습이 얼마나 모순 덩어리였는지를 깨닫게 만들었다. 그날 이후로 비로서 나는 진정한 이웃(민중)의 실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이웃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하였다.

페놀 마시는 어린 친구

그리고 8년이 흐른 어느 날,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고 LG전자 구미연수원에 취업한 나는대구 시내에 소재한 한 아동복지시설을 찾아갔다. 그때 대구시민들은 페놀사건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었다. 도시 외곽으로 나가는 도로는 생수와 약수를 구하기 위한 차량 행렬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런데 내가 찾아간 그곳 어린 친구들은 페놀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고 있었다. 그들이 안전한 수돗물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관이나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독극물인줄 알면서도 마실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니…누군가로부터 뒤통수를 힘껏 얻어맞는 듯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의 환경 운동은 그래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또 몇 년이 더 흘렀다. 어느 날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학 1학년 때 코흘리개 꼬맹이를 만났던 그 아동복지시설 출신 친구인데, 그때 그녀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그런데 어엿한 숙녀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런 곳에서 생활하는 친구들도 성장하면서 아주 먼 친척일지라도 대부분 혈육을 만난다. 그런데 이 친구는 십 수 년을 수소문했는데 단 한명의 혈육도 찾지 못했단다. 이 세상에서 가족은 달랑 자기 혼자란다. 가족에게서 철저하게 버림받은 그 친구의 외로움이 나의 폐부를 찔렀다. 나는 선생님에서 오빠로 호칭을 바꾸자고 했다. 나는 여동생이 한명 생겼다. 몇 년 뒤 결혼을 시켰다. 2명의 조카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여동생이 참으로 대견스럽고 고맙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예수에게 해 준 것이라 했다. 코흘리개 꼬맹이, 페놀마시는 어린 친구, 그리고 여동생은 내가 만난 예수였다. 이렇게 내 인생의 첫 수업은 가난한 이웃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로부터 이루어졌다.


문창식 대구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장

문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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