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5명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풀려난 17일 하루전, 같은 내용의 촛불집회와 관련해 단체휴교 시위 문자를 보냈다는 혐의로 기소됐으나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 받고 대법원 상고심을 기다리던 2명이 각각 상고심 주심에 신영철 대법관이, 그리고 본인이 신영철 대법관이 속한 대법원 3부에 배당됐음을 사유로 법관 기피 신청을 냈고, 전경 폭행 혐의로 기소된 1명도 신 대법관이 속한 재판부에 사건이 배당되자 역시 기피신청을 냈음이 알려졌다.

이들이 법관 기피 신청을 요청한 사유는 모두 촛불재판 개입 논란으로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된 신 대법관이 촛불집회 사건을 특정 법관에게 몰아주기 배당했고 집시법의 위헌 여부가 헌법재판소에서 심리중인데도 서둘러 선고할 것을 촉구하는 등 법관의 독립된 재판권을 침해해 공정한 재판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법관에 대한 기피 신청이 법원 역사상 처음도 아니고 형사소송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절차인만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치부할 순 있지만, 일반 법관도 아닌 대법관이 피고인으로부터 다른 사유도 아닌 공정(公正)하지 못하다는 사유로 기피당한다는 것은 개인의 불명예는 차치하고서라도 대한민국 사법부의 명예는 물론 우리가 가꿔 온 민주주의와 헌법적 가치를 손상시키는 일이 분명하다. 게다가 아직도 촛불집회 관련 재판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 한두명이 아닌데 누가 봐도 대법관으로서의 정상적인 직무수행이 사실상 불가능해 보임은 부정할 수 없겠다.

법관도 사람이고 개인이 가진 정치관이나 법률적 신념이 있을 순 있겠지만 법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신념이라는 것이 국민이 지향하는 가치와 인권에 기반해 사고되고 소통되며 그것이 정의롭고 공정한 판단의 결과로 해석되고 행사되어야 하는 것이지, 본인 개인의 우월적 엘리트관이라던가 법관이라는 신분상 지위자로서의 소재로 행사된다면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워 질 수 있는지 우리는 신 대법관의 재판개입 논란에서 확인하고 있다. 대법원 윤리위원회의 최종 결과가 남아있다지만 신 대법관이 촛불재판과 관련해 사법행정권을 남용하고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했다는 것은 왠만한 상식을 가진 국민이라면 누구나가 수긍할 일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비단 신 대법관 혼자 사과하고 사퇴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일도 아니다. 사법부가 정권의 시녀가 되어 국민을 저버리고 민주주의를 외면했던 어두운 과거를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사법권 독립 침해에 대한 제도적 대응 방안등이 마련되는 계기로 삼는 것은 물론, 대법원 차원의 대국민 사과도 이어져야 한다. 일이 이렇게 가서는 국민들이 어떻게 법원의 판결을 믿고 수긍할 것인지, 법관들의 공정성을 어떻게 믿고 재판을 그들에게 맡길지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를지 모른다. 그것이 얼마나 우리 민주주의 역사를 퇴보시키는 일이 될 것인가 아찔하기까지 하다.

이젠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판사들이나 변호사들도 신 대법관의 용퇴를 촉구하고 있다. 촛불재판 개입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20일에 열린 전국 법관 워크숍에서 모아진 의견도 대부분 신 대법관이 사퇴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고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은 사법부에 대한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자고 눈물로 호소하고 있기까지 하다. 앞으로 전국 법원장들과 수석 부장, 대표 판사들의 모임도 줄줄이 예정되고 있다. 신 대법관이 왜, 무슨 이유로 사퇴를 미루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본인이 평생 몸담아 온 사법부의 명예와 우리의 소중한 헌법적 가치가 본인으로 인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훼손되고 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몇년전 한 헌법재판관이 본인에게 쏟아진 탈세 의혹에 대해 본인의 부덕함을 사과하며 전격 사퇴하며 말한 반구제기(反求諸己)의 뜻과 촛불의 의미를 신 대법관은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이영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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