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일은 34주기를 맞은 인혁당 사건 희생자 기일이었다. 지역에서는 4.9인혁 열사들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다양하게 열리기도 했는데, 일부 유가족과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회원들은 대구 인근에 있는 열사들의 묘소를 찾아 헌화하고 참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당시의 감상(感傷)과 추모의 마음을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준) 오규섭 집행위원장이 글로 전해왔다. /편집자 |
기억은 과거가 아니라 현실과 실천에서 솟구치는 생명입니다. 4.9인혁열사들의 소중한 정신은 조국과 민중의 가슴에 살아 영원할 것입니다. 열사들의 소중한 뜻을 민족자주와 평화통일, 민주화와 평등사회라는 시대정신으로 계승하고, 그저 한 번의 추모식이 아니라 신명나는 연대의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이번 4.9인혁열사 34주기는 대구의 60여개 시민사회 단체들과 각 지역 어르신들을 모시고 ‘노래로 읽는 한국현대사-희망의 노래’라는 문화제로 함께 했습니다. 문화제 만으로야 어찌님들의 뜻을 다 담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을 다잡는 자리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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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인혁열사 34주기를 맞아 유가족과 4.9인혁열사 계승사업회 회원들이 참배를 하고 있다. |
‘징검다리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밟고 건너가는 징검다리 말입니다. 꿈꾸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역사의 한 복판에 놓여 있는 수많은 징검다리들. 참으로 소중한 징검다리들을 나 또한 한 발짝 한 발짝 지나가고 있습니다.
현대공원 묘소에 가던 4월 9일은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주간이었습니다. 고난은 열정과 같은 말이지요. 고난을 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고난을 선택한 것이고, 국가권력이 나를 죽였지만 실상은 내가 그 죽임을 선택 할 수 있는 것은 열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너희들이 나를 구속하나 역사가 나를 사면할 것이고, 너희들이 나를 죽이나 결코 나를 죽일 수 없을 것이다.’ 님들은 그 열정으로 고난을 넘어 부활을 보셨지요.
이 자리는 빈무덤입니다
사형언도 채 하루 넘기기 전에 님들을 도륙하고 그 시신조차 유가족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분노가 하늘을 치솟고 그리움의 추모가 어찌 끊어 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젠 추모를 넘어서고자 합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어찌 둘이겠습니까. 활짝 웃으시는 열사님들과 음복주 한잔 한 몸으로 나누는 그날은 봄날이었습니다. 보는 날 이었지요.이제사 이미 오래전 우리와 함께 하시는 님들을 확연하게 봅니다.
나 자신에게만 사로잡혀 근본을 보지 못할 때 부활의 모습으로 함께 살아계신 님들의 빈 무덤 찾아오겠습니다. 내가 있는 그곳에 열사님들도 찾아오시겠지요. 아니, 미리 와 계시지요.
몇몇 동지들과 현대공원에 묻히신 다른 열사님들의 묘역을 서둘러 찾아뵙습니다. 한 잔의 술잔올림이 송구스럽지만 늘 4.9열사님들 묘역에 오면 지남철에 끌리듯 찾아뵙지요. 이름이 알려졌던 알려지지 않았던 참 많은 열사님들이 저희들에게 힘을 주고 계시네요. 온 몸에 생기가 충만합니다.
내려오는 길에 첩첩이 들어선 묘역들이 눈에 들어오네요. 저마다 삶의 이야기들이 태산을 이루겠지요. 4.9열사님들 이분들과 인사 잘 나누셨겠지요. 무슨 말씀들을 나누셨을까 궁금한 마음이 생깁니다.
수많은 점들이 이어집니다
좁은 소견에 그저 살아온 이야기와 남겨놓은 인연들과 후손들에 대한 염려, 못 다한 일들에 대한 말씀들을 나누셨지 않았을까. 자리에는 서로간의 분열과 갈등이 없었겠지요. 못 다한 일들과 말씀들 그 끝점에 저희들이 서있습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한 점에 가만히 묵상해 봅니다.
끝점이자 첫 점. 수많은 점들이 그렇게 이어져 있습니다. 올곧게 뻗어가는 대나무의 마디마디처럼 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그렇게 이어져 있어 든든합니다. 맘과 뜻을 같이하는 열사님들의 동지들입니다.
‘자본주의를 넘자’라는 화두로 ‘열공’들 한답니다. 열사님들이 꿈꾸는 세상을 지금도 잘 찾아갈려고 다들 힘을 쓰고 있습니다. 열사님들도 열공하고 계시겠지요. 각기 다른 날 태어났지만 함께 숨 쉴 수 있어 참 좋습니다. 뒤 따르겠습니다.
오규섭 올림
시민사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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