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신어법 못버리는 ‘윗물’

[강상헌 칼럼] 강상헌l승인2009.04.20 13:07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우리’와 ‘나라’를 합친 말인 ‘우리나라’는 사전에 ‘우리 한민족이 세운 나라를 스스로 이르는 말’이라 풀이되어 있습니다. 워낙 의미 깊고 자랑찬말이기에 ‘우리’와 ‘나라’ 사이를 띄어 쓰지도 않습니다.

우리나라, 나지막히 한번 읽어 보시지요. 기분이 좋아집니다. 김연아가 금메달을 걸고 눈물 흘리는 대목에서 이 말을 생각하면서 뜨거운 감격에 몸을 떨었던 생각이 납니다.

‘저희나라’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희’는 ‘우리’를 낮춰 부르는 말입니다. 겸손(謙遜)의 뜻을 반영하는 대명사지요. 가령 할아버지에게 손자들이, 스승에게 제자들이 쓰는 말이지요. ‘저희나라’는 명백히 틀린 말일 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기분 나쁘게 하는 단어지요. 물론 사전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쓰다 망신을 당하곤 하는 ‘저희나라’가 뿌리 뽑히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요? 지난해 신문에 난 것입니다. 국회에서 나온 발언을 말 그대로 옮긴 기사인데, 글쓴이는 아마 일부러 이렇게 적은 것 같습니다.

…그(한승수 국무총리)는 워싱턴포스트가 이명박 대통령을 ‘부시의 애완견’이라 비유한 것에 관해 “미국 언론은 굉장히 언론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이기에 저희나라 대통령 뿐만 아니라 블레어, 고이즈미도 그런 식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어떤 의원이 명예훼손 등 대응 여부를 묻자 “미국 대통령에 대해서도 저희나라 신문에서 이상하게 표현하는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대책을 취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우리나라 축구의 중요 인사 중 한 사람인 허정무 국가대표팀 감독의 ‘저희나라’ 타령도 참 안타깝지요. TV에 자주 나오는 인사들의 저희나라 어법은 나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효과(?)를 거둘 것입니다. 배우 권상우 씨, 소녀시대의 유리 씨도 이 ‘저희나라’ 발언으로 톡톡히 망신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인가요? 한화 한승연 회장도 국민에게 사과한다며 ‘저희나라 경제를 위해…’라고 해서, 심지어는 이명박 대통령도 작년 6월 쇠고기 문제 등 국정 전반에 관해 국민에게 사과하는 특별 기자회견에서 ‘저희나라’라고 발언했다고 하여 네티즌들의 지적의 대상이 됐었지요. 또 같은 자리에서 ‘미국대통령께서’라고 얘기한 것도 비슷한 맥락의 구설수(口舌數)의 표적이었고요.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의 ‘저희나라’ 국회발언도 유명합니다.

이 망신어법이 왜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결된 것 같습니다. ‘윗물’도 쓰고, 대중의 우상인 연예인도 공석에서까지 쓰기 때문에 상당수 사람들이 무심코 활용하는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중을 상대로 부인 권양숙 씨가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부인을 지칭해 ‘저희 집’이라 쓴 것은 어법에 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우리 집’이라 한다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많이 어색하지요. 그는 ‘저희나라’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렇듯 ‘우리’와 ‘저희’는 정확하게 구분해서 써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저희’라는 말을 차라리 쓰지 말자고 하기도 합니다. 비단 격조 높은 겸손을 표시하려는 의도에서라도 ‘우리’라는 말로서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지요. 영어 등 다른 나라의 어법을 봐도 그렇습니다. 이런 혼선을 담보하면서까지 ‘저희’를 ‘모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랍니다. 아예 ‘우리’로서 ‘저희’까지를 다 의미하도록 하자는 것이지요.

‘저희’로서 ‘우리’를 겸양(謙讓)하는 언어적 미덕은 참 고우나, 우리 사회 구성원 상당수가 그 구분과 정확한 사용법에 익숙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번지고 있는 씁쓸한 자기비하를 크게 경계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끼리 얘기하면서, 또 우리나라 방송에 나온 사람들끼리 ‘저희나라’ 타령은 블랙코미디일 수밖에요. 그 ‘저희나라’의 저희에는 필자도 포함될 수밖에 없습니다. 필자는 결코 그들과 한 동아리가 되어 ‘우리나라’를 비하하거나 겸양할 의사가 없습니다.

언어는 곧 생각을 담는 그릇이며 틀입니다. 그 그릇이, 틀이 못생겼다면 거기에 담기는 문화 또한 반듯하기를 기대할 수 없지요. 문화적으로 성숙한 사회, 나라를 위해서는 언어가 바로 서야 합니다. 영어에는 모든 것을 다 걸면서 우리 말글에는 소홀한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인 ‘저희나라’가 언제나 사라질지 함께 걱정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강상헌 논설위원

강상헌  @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상헌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회장·논설주간 : 강상헌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