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의 선용과 오용

[강상헌 칼럼] 강상헌l승인2009.05.1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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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단일화, 생각나는 게 많은 단어다. 김대중 김영삼의 ‘양김’의 사례가 물론 제일 먼저 떠오른다. 지난 재보선의 울산북구에서도 진보정당 간 후보 단일화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가위 바위 보를 해서라도 단일화를 하겠다”고 했고,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또한 강력한 의사표명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김창현(민노당), 조승수(진보신당) 후보 사이의 치열한 경쟁은 거의 막판까지 계속됐다. ‘물 건너간 것 아닌가’ 했는데 조승수 후보로 단일화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리고 당선됐다.

‘단일화’의 기준은 여론조사였다. 그 여론조사 결과 양 후보 간의 지지율가 워낙 차이가 적었고, 그 시점의 상승세를 확신한 김창현 후보의 반발 가능성도 없지 않았으나 그는 정정당당하게 조승수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양당 관계자들 모두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여론조사의 가치를 경험한 사례로 기억될 만한 일이었다.

최근 한나라당의 신진세력 모임인 민본21이 마련한 ‘국회제도개혁 대토론회’에서 무소속 유성엽 의원(전북 정읍시)이 다음과 같이 발언해 주목을 끌었다.

“국민들의 여론은 이미 이러저러하게 형성됐는데, 막상 정치적인 결정은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있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여론조사를 주요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연구하자.”

‘국민의 소리에 반응하는 정치’가 주권재민(主權在民)의 구체적인 모습일 터인데, 이를 정치권이 외면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대의제(代議制) 민주주의의 현장 적용과정에서 생겨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장치로 여론조사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활용해 보자는 뜻이다. 인터넷 기술(IT)의 응용도 여론조사의 선용(善用)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여론조사는 민주주의 제도를 위해 퍽 유용한 도구다.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모의투표로 시작되어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졌다. 특히 언론이 여론조사를 즐겨 활용한다. 투표 결과를 예측하는 방법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 기업의 마케팅에까지 그 활용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선거 예측’이 선거 자체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우선 지적된다. 밴드웨건(bandwagon) 효과라고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우세하다고 알려지고 있는 편에 유권자들이 더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가설에 토대를 둔 이론이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논의되어온 이 이론은 아직까지 일반적인 것으로 검증되지는 못했다. ‘심증’은 두터우나 결정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의 두 번째 문제는 정확성이다. 조사방법 등의 기술과 경험의 축적으로 오류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만능’ 또는 ‘척척박사’로 여겨질 정도의 신뢰수준에는 크게 미달이다. 미디어나 수용자(독자 시청자)가 여론조사의 결과를 잘못 읽거나 해석을 잘못해서 빚어질 수 있는 소통(疏通)의 오류도 문제다.

이런 사항들은 ‘일반적인 문제’다. 이 땅의 정치후진적 상황이 생산하는 ‘특별한 문제’도 있다. 이런 사항들이 더 치명적인 문제일 수 있다.

이번 재보선에서 무소속 정수성 후보(득표율 45.9%)가 한나라당 정종복 후보(36.5%)에게 압승을 거둔 경주의 경우 여론조사 결과는 정종복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신문은 대통령 측근이며 이상득 의원 직계로 분류되는 한 인사가 공천 직전 청와대를 방문해 정종복 씨의 공천을 논의했는데, 이 인사가 자신과 절친한 지인이 운영하는 여론조사회사의(정종복 씨가 10%포인트 이상 이기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했다고 썼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여론조사 결과가 인위적으로 조작됐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쓴 글로 보인다. 실제로 여러 선거 현장 등에서 언급되는 여론조사 결과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발주자(發注者) 측의 요구가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여론조사 결과에 반영된다는 식의 얘기는 너무 흔하다. 여론조사회사들의 운영 실태나 직업적인 윤리의 수준도 따져 봐야 할 부분이다.

여론조사를 선용하기 위해서는 전제나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 이제 운전하다 접촉사고가 났을 경우 잘잘못을 두고 예전처럼 주먹다짐을 하지 않는다. 보험회사가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론조사도 그 많은 싸움을 막아주는 착한 도구가 되어야 옳다.


강상헌 논설위원

강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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