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넌스, 노간지 그리고 바보

[편집인 레터] 김주언l승인2009.05.2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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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였던 노무현 얘기를 할께요/원칙과 상식을 지켜 반장이 되었죠/반장 되기 전에는 줄반장 분단장 3번씩이나 떨어졌지요/1학년 때 엄석대에게 명패 던지고 이젠 몸을 던지나요/반장이면서도 왕따를 당했던 내 친구/학생부와 신문부가 미워했던 친구/고통없는 세상 상생의 나라로 눈물과 함께 보내 드리니/역사는 진실로(그리고 정의로) 기억되리라/슬프디 슬프다 불쌍타 내 친구 노무현/힘을 가진 사람들이 죽여버렸구나/솔직했던 무현 솔직했던 친구 따뜻한 반장 우리반 반장/사람 사는 세상을 원하던 친구 이제 볼 수 없누나”

‘우리반 반장 임영박’이란 개사곡으로 유명한 성악 중창단 잡리스는 ‘노무현 레퀴엠’에서 이렇게 읊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남겨 놓은 업적은 역사가 증명할 것이다. 서민적인 풍모와 원칙과 상식을 지켰던 ‘우리반 반장’은 국민의 가슴 속에 ‘바보 노무현’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권위주의와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한국의 민주화와 정치개혁, 남북의 화해협력을 위해 헌신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거버넌스’를 중시했다. 이제 정치권력이 제왕적 권위를 가지고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함께 권력을 분점하여 나라를 꾸려가는 ‘협치’(協治), 즉 거버넌스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또 최초의 ‘인터넷 대통령’ 답게 국민과의 소통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겼다. 퇴임 후 고향인 봉하마을에 돌아가 주민과 함께 살아가던 그의 서민적 풍모 때문에 누리꾼들은 ‘노간지’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전국을 휩쓸었던 추모 열풍은 이러한 국민의 열망을 잘 말해준다. 장례기간 동안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이 300만명을 넘어선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독재자 박정희가 측근의 총탄에 사라졌을 때 추모객은 200만명이었다. 그것도 모든 방송이 국장기간 동안 하루종일 장송곡을 틀어주며 추모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번에는 다르다. 시민이 스스로 분향소를 만들고 밤 늦도록 3~4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조문하는 것은 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정부 분향소에 가지 않고 시민 분향소에 몰려 드는 시민의 모습을 보면서 이명박 정부는 무슨 생각을 할까.

4개 종단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로 구성된 시민추모위원회는 지난 27일 덕수궁 돌담길에서 1만여명의 시민이 참가한 가운데 추모제를 열었다. 추모제는 당초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이명박 정부의 불허로 덕수궁 돌담길로 옮겨야 했다. ‘추모제의 정치적 변질 우려’라는 게 이유다. 이명박 정부는 서울광장을 틀어막고 있다. 지난 해 촛불집회 당시 광화문 사거리를 틀어막고 있던 ‘명박산성’을 연상케 한다. 서울광장은 이명박 정부에게는 ‘두려움의 상징’이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오만이기도 하다.

영결식과 서울광장 노제에 참여하기 위해 광화문 일대에 운집한 국민은 경건하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었다. 그러나 그들의 가슴 속에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충격과 슬픔을 넘어 ‘정치적 타살’이라는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다. 온갖 야비한 방식으로 벼랑에 몰아 그를 죽인 세력에 대한 분노가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더 나아가 6.10시민항쟁 이후 어렵게 쌓아 올린 민주화와 인권 증진, 남북 화해협력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분노는 국민의 가슴 속에 포도처럼 알알이 맺혀 가고 있다. 장례식을 엄숙하게 치르기 위해 국민은 분노를 삭였다. 그러나 ‘분노의 포도’는 언제 터질지 모른다.

시민단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분열과 갈등을 유발하는 후진적이고 낡은 정치문화와 사회적 풍토를 쇄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의 검경과 정보기관을 동원한 정치 보복과 반대세력에 대한 압박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 기본원칙과 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하고 시민사회의 공론장을 질식시키고 있는 국정운영 방식을 전면적이고 근본적으로 쇄신해야 한다. 더구나 PSI 참여를 공식 선언해 남북관계를 화해에서 대결로 반전시킨 이명박 정부의 반민족적 유산 역시 청산돼야 한다.

시민단체들은 6월2일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쇄신을 요구하는 시국집회를 열 예정이다.

“천 번이고 다시 태어난대도/그런 사람 또 없을 테죠/슬픈 내 삶을 따뜻하게 해줄/참 고마운 사람입니다/그런 그대를 위해서 나의 심장쯤이야/얼마든 아파도 좋은데/사랑이란 그 말은 못해도 먼 곳에서 이렇게/바라만 보아도 보는 걸 줄 수 있어서 사랑할 수 있어서/난 슬퍼도 행복합니다.”

인터넷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추모 동영상에 입힌 가수 이승철의 노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의 한 귀절로 추모사를 대신한다.


김주언 편집인

김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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