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시각 위한 ‘비판적 거리’를

지령 100호 특집-'파리에서 바라본 오늘의 세계' 정수복l승인2009.06.1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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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민사회,전지구적 관점으로 미래예측 가능해야
프랑스 언론의 지구촌 사건 보도는 한국 언론과 사뭇 다른 모습
좌파정당들 대안마련 고민···녹색당도 ‘환경+종합적 대안’ 절치부심
한국시민사회가 시대 흐름 변화에 독자 의견 형성할 수 있을지 주목



<시민사회신문>은 100호 발행 특집으로 본지 프랑스 파리 특파원이자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객원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는 정수복 박사의 특별 기고를 싣는다. /편집자

파리에 살면서 프랑스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관찰하게 된다. 프랑스 언론계는 프랑스 혁명이 내건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인류의 보편적 이상과 과거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남태평양 등에 식민지를 경영한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전 지구적 현상을 바라보는 자기 나름대로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신문과 방송을 비롯한 프랑스 언론들이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을 보도하는 방식은 한국의 언론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글로벌 수준 여론형성과 시각차

일단 프랑스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할애하는 분량이 월등하게 많다. 일면의 머리기사에 외신이 올라오는 경우도 빈번하다. 한국의 일간지를 보던 습관에서 벗어나 프랑스 신문을 자유롭게 읽기 위해서는 프랑스어에 익숙해지는 것을 넘어서 세계 각국의 역사와 현황을 알아야 하며 세계를 전체로 바라보는 종합적 시각을 갖추어야 한다.

전국을 염두에 둔 신문과 지방을 염두에 둔 신문의 시각이 다르듯 한 나라의 여론 형성을 염두에 둔 신문과 그와 더불어 세계적 수준에서의 여론 형성을 고려하는 신문 사이에는 엄청난 시각의 차이가 있다.

세상에는 매일 크고 작은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언론은 시시각각으로 새로운 소식을 전달한다. 과연 그 수많은 정보의 바다에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리며 수집된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여 나의 의견을 만들 수 있는 것일까? 신문이나 방송의 외신을 접하면서 정부 관리는 관리대로, 기업인은 또 그 나름대로 중요하고 의미있는 사건들을 수용하고 해석할 것이다.

시민사회와 시민운동계는 똑같은 사건이라도 정부나 기업과는 다른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고 정부나 기업의 입장과는 다르게 중요한 외신을 선별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동안 <시민사회신문>은 세계정세의 변화에도 관심을 가졌지만 주로 국내 정치상황을 중심에 두고 시민사회의 입장을 전달하는데 주력해왔다. 아래에서는 “한국의 시민사회는 과연 세계정세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독자적인 의견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염두에 두고 시민사회의 입장에서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보거나 읽은 뉴스들을 정리해 본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보도 ‘야속’

지난 5월 24일 아침 9시. 이곳 파리에서 라디오 뉴스를 듣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연합통신의 보도를 인용한 이 뉴스는 남한의 전직 대통령이 산에서 투신자살을 했는데 정치적 부패 사건에 연루되어 검찰의 심한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고 아무 논평도 없이 짧게 보도했다. 남의 나라 대통령이 자살을 했는데 그것을 보도하는 프랑스 언론의 태도가 야속했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 한 지 48시간 만에 북한이 지하 핵실험을 했고 실험용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남북관계를 긴장상태로 몰아넣었다.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이 내려다보이는 트로카데로 인권 광장의 모습이다. 아프리카 청년들이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을 팔러 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주말이면 이곳에서 다양한 주제의 인권 운동 집회가 열린다.

프랑스 <르몽드>는 필립 퐁스가 쓴 서울발 기사를 통해 한국인들은 북한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의 <쿠리에 엥테르나시오날>지는 북한의 김정일이 아들 김정운에게 권력 이양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26세라는 나이는 북한을 비롯한 동아시아 나라들의 관행에 비추어 볼 때 한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되기에는 이른 나이라고 논평했다.

프랑스 언론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북핵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북한체제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기사를 반복해서 내보내고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언론들의 북한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수집되고 해석되는가?

프랑스 언론, 중국 인권문제에 관심

6월 3일 오후 7시. 파리 트로카데로의 인권광장에는 1989년 천안문 사태 20주년을 기념하는 집회가 열렸다. 파리에 망명한 중국인들, 프랑스의 인권단체,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는 프스인들이 집결한 이 집회에 때맞춰 달라이 라마 티베트 망명정부의 지도자가 파리를 방문했다.

중국 정부는 달라이 라마를 지지하는 정부들은 중국과 심각한 외교관계 악화를 기대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래서 사르코지 대통령은 중국과의 외교마찰을 피하기 위해 달라이 라마를 접견하지 않기로 결정한 반면, 사회당 소속의 들라노에 파리 시장은 달라이 라마에게 파리 명예 시민증을 전달했다.

이날 BBC 방송은 천안문 현지 중계방송을 했는데 경찰의 삼엄한 경계하에 민간인 복장을 한 두 남자가 우산으로 카메라를 가로막으며 보도를 방해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프랑스 언론은 중국의 인권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프랑스 정부에게 중국에 대해 압력을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르몽드>는 중국의 인권 변호사들이 정부로부터 해마다 받는 인증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의 민주화는 언제쯤이나 가능할 것이며 그것은 북한 체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사르코지, 독자적 외교정책 상실

6월 6일 오후 3시.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와 찰스 황태자, 캐나다의 스티븐 하퍼 총리가 노르망디 상륙작전 6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콜빌에 있는 미군 묘지에 모였다. 엄청난 무력이 동원되고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를 낸 이 상륙작전에서 성공함으로써 히틀러의 나치정권이 막을 내리게 되었음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이후 전후 처리를 위해 루즈벨트와 처칠과 스탈린이 회동한 포츠담 선언을 통해 남북한이 분단되고 냉전체제의 시작과 함께 남북 분단이 고착되었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남북이 대치한지 반세기 이상이 지났다.

부시 대통령에 이어 집권한 오바마 대통령은 파리에 오기 직전 카이로 연설을 통해 이슬람 국가들과의 화해정책을 천명하면서 서방 국가들에 만연된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없애고 이슬람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기념식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은 터키가 유럽연합 회원이 되는 것에 찬성하는 의사를 표명했다.

다른 한편 드골 대통령에서 시락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외교정책에 일방적으로 동조하지 않던 프랑스의 외교정책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 의해 변화를 겪고 있다. 프랑스는 냉전시기 소련과 동유럽국가들이 만든 바르사와 조약기구에 대응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들이 만들었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회원국이 되기를 거부했으며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면서 파병을 거부했다.

그러나 사르코지 대통령은 프랑스를 나토 회원국으로 만들었으며 미국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날 기념식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사르코지 대통령은 마치 오래된 친구인양 우정을 과시했으며 프랑스 언론은 두 사람은 언제나 전화 통화를 통해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사이라고 보도했다.

이제 프랑스는 미국과는 구별되는 독자적 외교정책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미국 외교 정책의 우산 속으로 들어간 것일까? 이날 기념식은 프랑스 텔레비전 방송은 물론이고 미국의 CNN과 영국의 BBC 방송을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유럽에서는 냉전체제가 종말을 고했는데 한반도에서는 아직도 남북한이 대치하는 냉전체제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9.11 사태 이후 심각하게 전개된 이슬람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을 종식하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두 국가의 공존을 지향하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문명간의 전쟁을 끝내려고 하는 마당에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연 한반도에는 언제나 평화체제가 형성될 것인가?

한국의 대우 그리고 마다가스카르

6월 6일 저녁 11시. 프랑스 퀼튀르 라디오 방송은 한국의 대우기업이 마다가스카르에 광대한 토지를 장기 임대하려는 기획에 대한 현지인들의 반응을 취재해서 내보냈다. 마다가스카르 현지의 시민들은 부패한 구정권의 퇴진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우의 토지 장기 임대계획이 완전히 무산된 것이 아니며 대우가 워낙 많은 비용을 들여 로비 활동을 했기 때문에 새로 들어선 정부도 대우와의 협약을 간단히 물리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국익을 내세워 대우의 입장을 지지할 것인가 아니면 마다가스카르 시민들의 입장을 지지할 것인가?

6월 7일 저녁 10시. 유럽의회의원 선거 결과가 발표되었다. 27개국으로 구성된 유럽연합의 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의 투표율은 40퍼센트에 머물렀다. 폴란드는 27퍼센트, 슬로바키아는 단지 14퍼센트의 투표율을 보였다. 게다가 그 결과는 전 지구적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불신과 비판의 물결에 역행하는 것이었다.

프랑스와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국가에서 보수 정당들이 다수를 획득한 반면 사회당은 열세를 면치 못하였다. 집권당인 우파 민중운동연합(UMP)이 28퍼센트를 획득한 반면 사회당은 17.4 퍼센트의 지지를 받아 2위를 차지했지만 17퍼센트를 획득한 녹색당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1968년 학생운동의 지도자였던 다니엘 콘벤디트가 이끄는 유럽 녹색당은 국내정치와 구별되는 유럽 정치 수준에서 신빙성있는 대안들을 제시하면서 사회당을 육박했고 파리와 주변 지역에서는 사회당을 앞질렀다. 사회당은 마르틴 오브리와 세골렌 르와얄의 당권 경쟁 이후 내부 분열을 겪으면서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참패를 면치 못하였다.

보수정당의 승리와 좌파정당의 고민

다른 한편 공산당과 사회당에서 탈퇴한 장 뤽 멜랑송이 이끄는 좌파연합과 극우 민족주의 정당(FN)은 6.5퍼센트의 득표로 유럽 의회 의석을 겨우 차지한 반면 니콜라 브장스노가 대변하는 반자본주의신당(NPA)과 트로츠키주의 정당인 LU 등 극좌정당은 5퍼센트 획득에 실패하여 발언권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보수정당들이 승리한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좌파정당들은 어떤 대안을 내세워야 할 것인가? 극좌 정당들의 활동은 계속될 것인가? 녹색당은 환경문제를 넘어 종합적인 대안을 내놓고 있는가? 녹색당과 사회당의 통합은 불가능한가?

이날 선거 방송 중간에 아프리카 가봉의 오마르 봉고 대통령이 사망 소식을 알리는 긴급 뉴스가 있었다. 프랑스는 아프리카의 구 식민지 국가들과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봉고 대통령의 사망은 중요한 뉴스가 될 수밖에 없다. 언론인들은 41년간 장기 집권했던 봉고 대통령의 사망이 향후 가봉과 그 주변 국가들의 정세 변화에 어떤 변화를 미칠 것인가를 주제로 논평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기아와 전염병, 정치부패와 정치 불안정으로 허덕이는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유럽 시민사회 관점 눈여겨 봐야

오늘날 <시민사회신문>의 독자들도 세계화의 물결 속에 살고 있다. 한 사회의 ‘시민됨’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과 나의 일상적 삶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으며 정부의 올바른 대외정책의 방향에 자기 나름의 의견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의 구비를 요구한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이라는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한반도는 19세기 후반부터 주변 정세의 변화에 엄청난 영향을 받아왔다. 해방 이후 한국의 외교정책은 미국과의 관계를 위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동서냉전체제가 끝나면서 한국은 러시아와 중국 등 구 공산권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중국과의 무역량은 미국과의 무역량을 넘어선 상태이다. 중국은 북한 정권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라는 점에서 대 중국 외교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어느 나라나 자국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강대국에 더 큰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주요 언론은 주로 워싱턴과 도쿄와 베이징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기존의 고정된 시각을 벗어나 세계정세의 흐름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거리가 필요하다. 파리, 런던, 베를린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관점을 취함으로써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의 관점을 멀리에서 비교적 객관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27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유럽 연합은 ‘유로’라는 공동의 화폐를 사용하며 공동의 정치적 입장을 조율하고 있는 지역연합체다.

한국의 시민사회와 시민운동계가 국지적 관점을 넘어서 전 지구적이며 보편적 관점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유럽 시민사회의 관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신문>을 비롯한 한국의 대안언론들이 세계정세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시점을 갖기 위해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브라질을 중심으로 한 남미와 인도를 중심으로 한 서남아시아, 알제리에서 남아공에 이르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들이 서로 작용하여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종합적 시각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정수복 특파원

정수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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