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폭력에 반대한다”-러셀(2)

철학여행까페[71]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9.06.15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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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은 11살의 나이에 수학과 사랑에 빠져 버렸다. 그는 수학에서 진리뿐만 아니라 아름다움도 느꼈다.

“수학은 진리만이 아니라 조각품처럼 냉철하고 엄격한 아름다움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그 때부터 내 나이 38세에 화이트헤드와 내가 <수학의 원리>를 마칠 때까지 수학은 나의 주요관심사였고, 나의 행복의 주된 원천이었다.”

이동희
러셀.
그는 수학이 행복의 주된 원천이라고 말했지만 이 <수학의 원리>를 저술하는 동안에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도 받았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하도 커서 자살까지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는 매일 10시간 내지 12시간 이상을 이 책을 쓰기 위해 매달렸다.

그는 <수학의 원리>를 통해 논리적 개념과 명제를 기반으로 수학의 기초를 세우고자 했다. <수학의 원리>는 현대 수학의 근본원리를 밝힌 책으로 평가된다. 1900년 7월 파리에서 개최된 국제철학회에서 러셀은 쥬세페 페아노라는 이탈리아 논리학자와 만나게 된다. 페아노는 그때 수리논리학에 관한 독자적인 기호체계를 발전시켜 놓았다.

현대수학의 근본원리를 밝히다

러셀은 페아노의 기초체계 덕분에 수학을 논리학으로 환원시키는 일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페아노의 방법을 받아 들여 수학의 원리를 위한 초석을 정초하기 위해 수학의 기초개념을 분석하였다. 그는 <수학의 원리>에서 “수학과 논리학은 동일한 것”이라는 근본 테제를 견지했다.

이동희
비트겐슈타인.
러셀은 이 테제를 증명하기 위해 <수학의 원리>에 더욱 몰두했다. 그는 이 작업을 위해 옛 지도교수인 화이트헤드의 협력을 받았다. 러셀이 1902년부터 1913년에 걸쳐 써 낸 <수학의 원리>는 <Principia Mathematica>라는 라틴어 제목으로 달고 3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3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을 사람들은 논리학 분야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최고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찬양했다.

그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스승이자 동료였던 화이트헤드의 집에서 아예 거주하기도 했다. 러셀은 화이트헤드의 집에 거주하면서 <수학의 원리> 집필 이외에도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중요한 내적 체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평소 잘 따랐던 화이트헤드의 부인의 죽음이었다.

그는 화이트헤드의 부인이 병상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비한 경험을 한다. 누구나 인생의 결정적인 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이 경험으로 러셀은 평생의 신념인 평화주의자로 변신해 버렸다.

“그녀는 고통 때문에 모든 사람과 모든 것으로부터 차단된 듯 보였는데 바로 그 때, 인간의 영혼은 모두 고독하다는 느낌이 느닷없이 나를 사로잡았다. …갑자기 발 밑에서 땅이 무너지는가 싶더니 완전히 다른 영역에 들어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 5분의 시간에 나를 스친 생각은 이러했다. 인간 영혼의 외로움은 견디기 힘들다. 종교적 스승들이 설파한 것과 같은 지고의 강렬한 사랑 외에는 어떤 것도 그 외로움을 간파할 수 없다. 이 동기에서 나오지 않는 것들은 모두 해로우며 잘해본들 무용하다. 따라서 전쟁은 잘못된 것이고, 사립학교 교육은 옳지 않으며 폭력에는 반대해야 한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각 개인이 가진 외로움의 응어리 속으로 파고 들어가 호소해야 한다.”

평화주의자 러셀

평화주의자로서 러셀은 왕성한 사회적 정치적 활동을 계속해 나가면서도 <수학의 원리> 이후 자신의 철학적 사고를 글로 옮기는 데도 열정적이었다. 그는 철학개론서이지만 독창적인 생각을 담고 있는 <철학의 제문제>(1912)를 썼다. 그리고 자신의 연구 기획을 드러내고 있는 <철학에서의 과학적 방법의 영역으로서의 외부의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1914)를 썼고, <논리적 원자론의 철학>(1914)을 썼다.

이동희
러셀의 평화운동
<수학의 원리>에서 수학에 전혀 빈틈없는 논리적 토대를 제공하려 했던 것처럼 그는 과학을 포함하여 외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대해 논리적 토대를 제공하려 했다.

그는 <논리적 원자론의 철학>에서 명제는 세계와 상응한다고 주장한다. 논리적 원자주의에 의하면, 세계뿐만 아니라 언어도 가장 작은 개별적 구성요소인 ‘원자’로 나누어질 수 있다. 언어는 가장 단순한 명제들, 즉 ‘요소명제들’로 환원될 수 있는 복잡한 명제들로 만들어 진 것이다.

그에 따르면, ‘원자 명제’의 형태는 ‘원자적 사실’의 형태와 동일하다. 가장 단순한 원자명제는 원자적 사실에 대응하여 ‘이것이 희다’처럼 어떤 사물이 어떤 특정 성질을 지니고 있는가를 제시하거나, 또는 ‘이것은 저것 아래에 있다’라는 것처럼 어떤 특정관계에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하나 이상의 원자 명제로 구성된 ‘분자’ 명제는 원자 명제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분자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는 그것이 포함하는 부분 원자 명제들의 참 거짓에 달려 있다. 논리적 원자론에 따르면, 언어는 무수한 원자명제들의 집합이며 원자 명제의 참은 그것이 지칭하는 외적인 대상의 경험적 방법에 의해 정해져야 한다.

그는 ‘기술이론’을 통해 고유 명사가 아닌 명제의 각 부분을 사용하는 데 좀 더 확실한 논리적 언어적 기초를 부여하고자 했다. 러셀의 논리적 원자주의는 그의 천재적 제자인 비트겐슈타인에 의해 <논리철학논고>로 정리된다. 그리고 러셀의 기술이론은 빈 학파 논리실중주의에게 영향을 끼쳤다.

러셀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되자 ‘징병반대 운동’ 등 왕성한 반전 활동을 다시 벌여 나갔다. 양심적인 반전주의자에게 선고된 2년의 중노동 판결에 반대하는 전단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는 “폐하의 군대의 징집과 훈련을 손상시킨다고 생각되는 말”을 했다는 죄명으로 기소되었다. 그는 유죄를 선고받고 100파운드의 벌금과 10파운드의 소송비용을 부담하든가 아니면 61일간의 감옥에 들어 갈 것을 명령받았다.

감옥에서도 왕성한 집필활동

그러나 그는 벌금 내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자 당국은 그의 재산을 차압했다. 그의 사정을 안 친구들은 기부금을 모아 러셀이 차압에서 풀려나게 도움을 주었다. 이 사건으로 러셀은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추방되었다.

그러나 그의 반전활동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독일의 화평제안>이라는 글을 써서 발표하지만 영국과 미국 동맹군을 함부로 비방한 것으로 간주되어 6개월 간 투옥된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은 감옥 속에서도 식을 줄 몰랐다. 그는 이 수감 기간에도 <수리철학서설>(1919) 을 썼고 새로운 저술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다음 호에 계속>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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