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의 월드컵

[이지상의 사람이사는 마을] 이지상l승인2009.06.2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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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23년 9월 1일 일본 도쿄 일원의 관동 지방에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세 차례에 걸쳐 약 15분 동안 이어진 지진으로 도쿄의 3/4이 폐허가 되고, 계엄령이 선포될 지경이었으니 그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약 10만에서 14만2천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3만7천명이 실종되었으며 21만호의 가옥이 파괴되었습니다. 정부의 기능이 마비되었고,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었습니다. 이때 사망한 14만 명 중에는 조선인들도 상당수 포함이 되어있었습니다. 허나 그들은 지진 때문에 죽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지진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사회질서를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려 민심의 이반을 막으려 했던 일본 내무성은 “재난을 틈타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조선인들이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공문을 각 경찰지서에 하달했고, 이는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고 방화 약탈을 자행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되어 일본인들을 자극했습니다.

우리말 지키려던 이유

도쿄에서만 약 1천600여개의 일본인 자경단(自警團)이 조직되었습니다. 죽창과 몽둥이, 농기구들로 무장한 이들은 스스로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조선인들을 찾아내어 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일본어 “아이우에오, 가기구게고 15엔 50전(주엔고주센)”의 발음만으로도 조선인을 구별해냈고 기미가요와 교육칙어를 암송시켰습니다. 지진 발생 후 며칠사이 일본의 자경단에 의해서 죽어간 조선인의 숫자를 재일조선인 사학자 이일만 선생은 약 9천여 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생사를 넘나들던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날 이후 말문을 닫았습니다. 젖 먹던 시절 어머니가 불러주시던 자장가도, 고향땅 밟으며 재잘거렸던 수많은 조선말에 대한 기억도 다 지워야 했습니다. 고향집 주변에 사시사철 피었던 꽃의 이름과 이웃들의 정겨운 말투도 다 잊어야 했습니다. 조선말을 한다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몸서리치게 경험한 그들에게 맘 놓고 조국의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란 잠들기 전 이불을 뒤집어쓰고 속삭이는 가족의 안부 몇 마디가 전부였습니다. 낯선 이국땅에서 모국어를 잃어버린 그들은 그렇게 20여 년을 더 살아 해방을 맞았습니다.

해방이후 재일조선인들이 맨 먼저 한 일이 학교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일본어로만 그리워하던 고향땅의 흙냄새를 잊었던 모국어로 다시 복원해 내는 일이었습니다. 조선말을 쓰면 닥쳐오는 온갖 차별과 냉대 심지어 죽음까지 이르는 한(恨)의 세월을 접고 이 땅에서도 주인으로 살아갈새 지평을 열어 젖혀야 했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조선인 2세들은 고향 말을 전혀 할 줄 몰랐습니다. 언젠가는 돌아가야 하는 조국 땅. 그곳에서도 조선말을 할 줄 모른다면 제대로 된 사람구실 못할 것이 뻔했기에 아이들에게 조선말을 가르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최우선의 과제였습니다. 해방된 1945년 12월에만 일본 전역에 약 560여개소의 국어 강습소가 세워졌습니다.

도요하시에서 만난 김해룡, 김행자 씨 부부는 아이들 넷을 모두 조선학교에 보내고 있습니다. 큰아이는 고급학교, 둘째는 중급, 셋째와 넷째는 모두 초급학교로 보냅니다. 도요하시에는 중 고급학교가 없으니 첫째, 둘째는 인근 나고야에 있는 아이치 중고급학교에 가야 합니다. 아침 6시 반에 집을 나오면 학교까지 2시간이 소요 됩니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9시경, 그때 저녁 식사를 겸해 이야기를 나누고 10시면 잠이 듭니다. 통학시간만 왕복 네 시간이 걸리지만 큰 불만은 없습니다. 자기의 이름을 숨기고도 갖가지 차별을 겪어야 하는 일본학교보다는 같은 또래 비슷한 정체성의 고민을 하는 아이들과 함께 다니는 조선학교가 훨씬 좋기 때문입니다.

해룡 씨 부부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수입의 상당 부분을 지출 합니다. 고급반 아이는 월 3만3천엔, 중급은 1만7천엔, 초급은 1만3천엔 정도를 냅니다. 거기다가 통학전철비가 만만치 않고 점심 급식이 없으니 매일 도시락도 싸줘야 하고, 학교사정이 어려운 걸 뻔히 아는 처지라 각종 행사에 들어가는 비용도 미리 챙겨 두어야 합니다.

“조선학교는 재산목록 1호”

자동차 정비업을 하는 그로서는 때론 감당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도 아이들을 조선학교에 보내는 것이 큰 긍지입니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지만 재일조선인 1세, 2세들이 우리말을 쓰지 못해 가슴 앓아야 했던 억압의 시간이 고스란히 조선학교로 전해져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가르치고있으니 우리말, 우리글의 소중함을 안다면 재일조선인 중에 조선학교를 재산목록 1호로 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어깨를 으쓱댑니다.

시가에 사는 김경연 씨는 아이들의 진학문제를 놓고 큰 고민에 빠졌었다고 합니다. 일본학교를 다녔던 남편은 아이들을 조선학교에 보낼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일본 신문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중고급부 학생들의 자살소식을 전했는데, 자살자의 대부분이 재일조선인이었다는 분석이 나온 뒤에는 남편도 조선학교 진학에 찬성 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숨기거나 그렇지 않으면 집단 따돌림을 당해야하는 재일조선인 청소년들의 절박한 처지는 이미 일본 내 사회현상 중의 하나가 된 듯 했습니다. 지금까지 조선인임을 단 하나의 자랑으로 생각해온 경연 씨는 아이들 셋을 시가 조선 초급학교에 보내고 있습니다.

히가시오사카 조선 초급학교에 다니는 4학년생 상호는 축구선수가 꿈입니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 모두가 참여하는 소조활동에 상호는 축구를 선택했습니다. 정대세(가와사키 프론탈레)나 안영학(수원삼성) 선수처럼 남과 북을 오가며 통일의 다리를 놓는 선수가 되고 싶기도 하고, 박지성이나 박주영처럼 세계적인 구단의 선수가 되어 이름을 날리고 싶기도 합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남과 북이 사상 처음으로 동반 출전하게 되었다는 소식에 상호네 가족은 무척 들떠 있습니다. 동포 할아버지 아저씨들과 ‘사나이 중창단’을 함께하는 아빠는 통일된 조국의 국가대표가 되라고 상호를 격려하십니다. 형제 셋 중 하나는 할아버지의 고향 제주도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엄마는, 이미 한국의 포털사이트 블로그에 동포들의 기뻐하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계십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의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소년은 숱한 모멸의 세월을 넘어 도요하시의 김해룡 씨로, 시가의 김경연 씨로, 히가시오사카 조선학교 4학년생 꿈 많은 소년 한상호로 다시 살아갑니다. 그들의 꿈은 세계 최대의 축구제전에서 오직 ‘하나 된 나라’를 응원하는 것입니다. 남과 북도 사라진 하나의 조국을 맘껏 왕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까운 이웃을 등지고 먼 곳의 이념적 동맹을 쫓아가는 것도 마뜩치 않지만, 핵개발을 해야만 자위권을 유지한다는 사고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나 된 나라 응원하고 싶다”

하나 되어야 할 나라가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을 중단하고, 6.15. 10.4 공동선언을 무력화 시키거나 미사일을 쏘아대고, 무시무시한 핵 실험을 강행함으로 또다시 원수지간이 된다 해도 그들의 꿈이 바뀔 수는 없습니다. 이번 글을 쓰면서 시가의 김경연 씨 그리고 오사카의 상호엄마 이명옥 씨와 메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왜 아이들을 조선학교에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간단한 우문에 심지 깊은 답변을 보내주었습니다

“지난 시기 일본에 빼앗긴 것들을 되찾고 일본에서 지내온 이 긴 시간동안에 재일조선인 1, 2, 3 세대들이 바라고 꿈꾸고 해왔던 일들을 배우며 사랑으로 비판하고 사랑으로 고마워하고, 민족의 한 성원으로서 갈라진 조국을 이어주는 다리가 될 수 있는 능력과 마음을 아주 자연스럽게 키워주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을 배우고 우리 역사를 배울 뿐만 아니라 같은 배경을 가진 아이들을 같은 배경을 가진 선생님께서 이끌어주시는 아이들이 진심으로 편히 지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우리학교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오사카에서 이명옥)


이지상 가수·성공회대 외래교수

이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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