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책과 낡아가는 책

책으로 보는 눈 [89] 최종규l승인2009.06.2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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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첫무렵, ‘부림출판사’에서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 님 책을 손바닥책 열다섯 권으로 펴냅니다. 이곳에서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을 내기 앞서 수많은 다른 출판사에서도 띄엄띄엄 이분 책을 냈고, 이때 뒤로도 갖가지 출판사에서 드문드문 이분 책을 내놓았습니다. <길은 있었네>, <이 질그릇에도>, <빛이 있는 동안에>, <살며 생각하며>, <빙점> 같은 책은 여러 곳에서 다 다른 판으로 옮겨졌는데, 저작권계약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던 지난날 <창가의 토토>를 이곳저곳에서 슬그머니 펴낸 일하고 매한가지입니다. 다만 <창가의 토토>는 2000년에 ‘프로메테우스출판사’에서 새로 펴내며 더욱 널리 사랑받고 있는데,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은 ‘한물 간 낡은 이야기’라고들 여기며 손사래를 치곤 합니다.

헌책방에서 <여인의 사연들>(1984, 박기동 옮김)이라는 자그마한 책을 찾아내어 읽습니다. 처음부터 제가 읽으려고 산 책은 아닙니다. 개신교 모임에서 필리핀으로 어학연수 비슷하게 보내주는 데에 따라가며 한 해 동안 봉사를 한다는 처제가 성경을 읽는다고 하기에 문득 떠올라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이랑 안소니 드 멜로 님 책이랑 채규철 님 책이랑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선사하는데, 이 책은 제가 아직 읽어 보지 않아서 저 먼저 찬찬히 훑고 주려고 빼놓습니다. “하지만요, A 씨, 당신이 결혼한 상대방은 하나님이 아니라구요. 완전하진 못하다구요. 말하자면 평범한 한 사람의 인간인 거예요.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는 인간인 거예요.”(16쪽) 마음이 아프고 힘들고 쓸쓸한 ‘여인’들이 미우라 아야코 님한테 편지를 꽤나 자주 써서 보낸답니다.

이런 편지에 하나하나 답장을 보내 주다가 몹시 많이 쌓이는 편지를 다 삭여내지 못해 잡지에 ‘공개 답장’을 적었답니다. 루이제 린저 님도 ‘마음이 아파 힘들다는’ 줄거리로 편지를 써 보내는 사람이 많아, 처음에는 하나하나 답장을 하다가 너무 벅차 ‘공개 답장’을 아예 낱권책으로 여러 차례 펴낸 적 있습니다. 모두들, 여느 사람들이 여느 삶에서 겪는 마음앓이를 당신 일처럼 곰삭이며 풀어낸 셈입니다. “우리들이 아름답게 되는 길은 화장하는 길밖에 없는 것일까요? 나는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때,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내면에서 풍요로움이 풍겨나오는 그 표정에서 느껴요”(54쪽)라는 말처럼 겉삶이 아닌 속삶으로 우리 모두 기쁘게 어깨동무하자는 뜻을 나누려 했구나 싶습니다.

지난주부터 <동네에너지가 희망이다>(이매진, 2008, 이유진 씀)라는 이야기책하고 <엄마의 밥상>(얘기구름, 2008, 박연 그림)이라는 만화책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보름쯤 앞서 인문사회과학책방과 만화전문책방에서 장만했는데, 이와 같은 책이 지난해에 나온 줄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궁금한 김에 언론 소개글이 있었나 뒤적이니 한두 차례 아주 조그맣게 실린 적이 있고, 꼭 한 번씩 소개글을 써 준 사람이 있으나 널리 읽힐 만한 자리에 실리지 못했습니다. 혜화동 인문예술책방 ‘이음아트’ 큰일꾼은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며 책을 갖추어 놓는다’고 했는데, 이런 책은 작은 책방에든 큰 책방에든 꽂히기 힘들고 우리 눈에 뜨이기도 너무 어려운 나머지 한 해 두 해 더께만 쌓이다 그예 낡아 버리고 말겠구나 싶습니다.


최종규 1인 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 내는 사람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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