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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눈 [91] 최종규l승인2009.07.06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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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 이 나라를 다스리는 분들은 한결같이 ‘토목건설’로 나라살림을 북돋웁니다. 1990년대에도 마찬가지였고 1980년대, 1950∼1970년대에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로 오늘 대통령·국회의원·공무원 자리에 서 있는 분들은 ‘서울과 부산 잇는 물길’을 뚫으려 한다지만, 이 물길이 아니더라도 수없이 많은 고속도로며 아파트며 고속철도며 닦고 세웠습니다. 시골 작은학교를 때려 부수고 도시 큰 학교를 새로 지었습니다. 해마다 보도블록 갈아엎기를 그치지 않는데, 이 일을 나무라는 사람이 많아도 그치지 않는 까닭은 ‘한국 땅에서 일자리 만들기’란 바로 보도블록 갈아엎기와 같은 ‘토목건설 공사’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는 어느새 지하철 9호선까지 냅니다. 지하철을 타는 분들이 몸으로 느끼시는지 모릅니다만 지하철이든 시내버스이든 대중교통이 아닙니다. 이러한 교통 얼거리는 하나같이 ‘토목건설 공사를 하며 일자리 늘리기’를 하려는 발버둥이고, 자꾸자꾸 큰돈 들여 지하철 놓기를 밀어붙이는 까닭 또한 ‘실업률 낮추고 공사비 뒷돈 챙기며 밖으로는 번듯하게 보여주려는’ 꿍꿍이 때문입니다. 참된 ‘교통-환경 정책’이었다면 자가용 흐름을 줄이고 새 찻길을 늘리지 않으며 모든 문화·교육·사회·정치·경제·예술 따위가 서울에만 몰려들지 않도록 골고루 나누면서 서울 한복판에도 논밭을 일굴 수 있도록 했으리라 봅니다.

<희망을 여행하라>(소나무, 2009)를 쓴 ‘이매진피스’ 임영신·이혜영 님은 “하나의 리조트가 생겨날 때마다 몰디브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일자리는 리조트를 건설하는 일용직 노동자, 리조트가 완공된 후에는 객실 청소부, 식당 설거지, 호텔 잡부 같은 단순 노무직이었다. 기술도 필요 없고, 교육도 필요 없는,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50쪽)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말마따나 우리가 나라밖 나들이를 할 때 마주하는 그곳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라 안에서 돈 좀 번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토목건설 일을 하거나 토목건설과 얽힌 일을 하게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바뀌어 갑니다. 나라에서는 일부러 제도권 입시교육을 더욱 단단히 하면서 우리 모두를 ‘생각 안 하고 돈만 벌면 그만인 사람’이 되도록 내몰려 한다고 느낍니다.

<탐라기행>(학고재, 1998)을 쓴 일본사람 시바 료타로 님은 말합니다. “조선조에도 실학은 있었다. 그러나 그 압도적인 주력은 주자학이었는데, 그것은 1그램의 실학성도 없는 사변철학이었다 …지폐 위에 찍혀 있는 이퇴계는 훌륭한 인물임에 틀림없으나, 중국 주자학을 몇 세기 뒤에 전달해 준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 왕조는 도그마에 얽매인 관료들이 고의로 문명을 정체시켰다.”(186∼187쪽)

얼마 앞서 5만 원짜리 종이돈이 새로 나왔습니다. 이 나라 종이돈에는 너나없이 ‘조선 사대부 권력자’만 아로새기고 있습니다. 오늘을 낮은자리 사람하고 함께 살거나 오늘을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길을 내려고 땀흘리는 사람은 안 담습니다. 아무래도 지난날에는 ‘실학이 있기는 했어도 주자학이 내리누르던 삶터’였고, 오늘날에는 ‘참교육과 대안교육이 있기는 해도 대학바라기 제도권 교육이 무시무시하게 억누르는 삶터’이며, 이런 틀을 우리 스스로 벗어던질 마음이 없거든요.


최종규 1인 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 내는 사람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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