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비석’의 시민주권 선언

[편집인 레터] 김주언l승인2009.07.0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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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10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를 맞아 김해 봉하마을 뒷산인 봉화산 사자바위 서쪽 기슭에 세워진 비석에 새겨진 글귀이다. 노 전 대통령의 유언에 따라 너럭바위의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아주 작은 비석’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쓴 ‘노무현 대통령’이란 여섯 글자가 새겨졌다. 돌 받침 바닥면에 신영복 선생이 쓴 노 전 대통령의 어록이다.

대통령 한 사람의 힘보다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민주주의와 역사 발전의 훨씬 중요한 요소로 강조한 이 글귀에는 ‘정치인 노무현의 시대적 가치’, ‘대통령 노무현의 국정철학’, ‘시민 노무현의 시민정신’이 들어 있다.

시민 노무현의 '시민정신'


“저도 다시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특별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사회의 주권자로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존재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민주주의가 완결된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아직도 민주주의가 더 발전해야 할 많은 과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길에는 모든 시민이 동행할 것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지향이 뚜렷하고 각성이 있는 사람은 그 길로 동행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길을 저는 계속 가는 것입니다.”

퇴임 직후 봉하마을로 내려가면서 노 전 대통령은 ‘시민주권시대를 위하여’라는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진보적 시민민주주의’를 우리 시대 최고의 목표로 삼았다. 후손들이 누려야 할 아름다운 세상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자유로운 사회를 꿈꾸었다. 그가 말하는 진보적 시민민주주의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 평화라는 가치를 지향한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인간다운 삶이라는 가치의 실현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지배와 예속이 없는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시민주권운동이다.

노 전 대통령은 특히 ‘시장권력’에 대해 대한 견제를 주문했다. 시장에서 성공한 사람과 성공하지 못한 사람 사이에 지배와 예속이라는 관계가 발생하여 불평등을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자는 사상은 새로운 지배질서를 강화시키는 사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시장 지상주의’와 맞서 나가는 끊임없는 노력의 핵심을 민주주의로 보았다. 또 시장이 사회를 지배하면 약자를 배려하고 연대와 균형을 중시하는 민주주의 가치는 설 땅이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언론이 시장과 결탁해 시장의 논리를 강화하고 시장자본에 봉사하는 상황을 크게 우려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년간 청산과 개혁을 통해 적어도 제도적 민주주의를 공고히 만들어왔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87년 체제’라는 절차적 민주주의는 확보됐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 1년도 되지 않아 ‘87년 체제’는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한국 사회가 20년 전 권위주의 시대로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독재정권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대한 늬우스’가 부활했다. 재래시장을 찾아 떡볶이를 먹는 대통령 사진도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이명박 정부에 시민은 없다. 오로지 ‘강부자’와 대통령이 있을 뿐이다.

이명박 정부에 시민은 없다

이명박 정부는 ‘시민 주권’을 외치던 촛불시민을 강제로 진압하고, 집회 및 시위를 사실상 허가제로 만들어 버렸다. 시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과 검찰이 정권을 지키고 있다. ‘PD 수첩’ 제작진을 기소하고 언론을 장악하려 한다. 미네르바를 구속하고 사이버 모욕죄를 도입해 인터넷마저 봉쇄하려 한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은 졸지에 징계를 받게 됐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는 글자로만 남게 됐다. 더 나아가 자신에 우호적인 신문사에 방송을 쥐어주어 시장권력과 결탁하도록 부추긴다. 또 국정원을 동원해 시민단체들을 옥죈다.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세력은 좌파로 몰려 탄압의 대상이 된다.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세력은 대한민국을 ‘시장 권력’(자본)의 손아귀에 넣어주려 한다. 노 전 대통령이 그토록 우려했던 ‘시장 지상주의’를 받들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경제에서의 경쟁이 그들의 모토이기 때문이다. 교육도 경쟁 제일주의로 간다.


이명박 정부는 ‘부자 감세’에 이어 ‘서민 증세’를 추진하고 있다. 대기업은 감세로 엄청난 돈을 벌어 놓고도 시민을 위한 투자에는 관심이 없다. 게다가 토건세력의 배만 불리는 ‘사실상 대운하’인 4대강 정비사업에 매달린다. 실업자는 늘어나고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배회한다. 치솟는 등록금 때문에 학부모들은 등골이 휜다. 대학생들은 졸지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한다. ‘부자 천국 서민 지옥’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 스스로가 세상을 바꾼다"

정부가 무슨 일을 해야 하고, 어떤 것을 우선해야 할지 결정할 권리는 시민에게 있다. 정부를 선택하고 바꿀 권리도 시민에게 있다. 정부가 시민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할 의무도 시민에게 있다. 시민이 바로 이 정부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세금을 내는 유일한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민단체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을 되새겨 보자.

“주권자가 똑똑해야 나라가 편하지 않겠습니까. 추종하는 시민에서 참여하는 시민으로 스스로의 위상을 바꿉시다. 선택을 잘하는 시민, 그래서 지도자를 만들고 지도자를 이끌고 가는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갑시다. 지도자와 시민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크고 작은 단위에서 많은 지도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지도자가 됩시다.”



김주언 편집인

김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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