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지마라, 막지마라

한동안 논란이 되었던 ‘대한 뉘우스’를 뒤늦게 보았습니다. 독재 정권의 민중지배 방식이 반정부,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무차별적 테러. 세금제도를 통한 민중 재산의 강탈. 그리고 부당한 권력 행사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세뇌’라는 레프 톨스토이의 지적-국가는 폭력이다-과 이명박 정부가 파시즘 초기에 접어들었다는 리영희 선생 발언-인권연대 10주년 기념식 격려사-의 증거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요즘 현 정부의 최대 사업인 ‘4대강 살리기’ 홍보 동영상이 제작되었다는 뉴스가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그냥 무시하려다가 결국 보게 된 것은 문제의 동영상에 출연한 개그맨 양희성 씨 때문 이었습니다.

애청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 CBS-FM의 ‘뉴스야 놀자’가 있습니다. 양희성 씨는 노정렬, 강일구 씨와 함께 ‘정상토론 양양이 간다’라는 코너를 통해 시사 개그의 정수를 보여주는 몇 안 되는 개그우먼입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이 늘 비판의 시선을 놓지 않았던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 홍보에 나섰다는 것이 의아했고, ‘연예인이 다 그렇지’ 따위의 자조 섞인 푸념으로 그 프로그램과 멀어지려 할 즈음 그녀의 정식 사과 방송을 들었으니, 도대체 문제의 홍보 동영상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편에 걸쳐 제작된 홍보 동영상의 핵심은 4대강 주변을 문화, 휴식 공간으로 만든다는 것과 홍수, 가뭄에 대비한 물 관리를 효율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들 중 뉴스나 신문을 보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정부의 주장을 굳이 지난 1994년에 폐지된 대한뉴스의 형식을 빌려 극장에서 상영하는 것이 합당한 일인지, 21세기 시민의 머리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얼마 전 온 국민의 가슴을 울렸던 독립영화 ‘워낭소리’의 최초 상영관이 7개였던 것에 비해 1억8천만 원의 비용으로 전국 190여개의 극장에서 상영하는 추진력을 발휘하는 정부의 능력은 파격에 가깝습니다. 뉴스위크지가 선정한 역대 최고의 도서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선정되었습니다. 제정 러시아를 살았던 위대한 작가가 파시즘의 전철을 밟고 있는 오늘의 한국 상황을 어찌 그리 정확하게 예언했는지 실로 놀라울 뿐입니다

파지만 않으면 좋다

경북 영주에서 안동으로 흐르는 내성천 지류를 따라 낙동강 마지막 나루터가 있었다는 삼강주막에 도착한 때는 오월 하순의 볕이 좋은 한낮이었습니다. 근사하게 복원된 주막 터에는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객들이 모여 들었고 너른 강 언덕 위로는 몇몇의 연인들이 나누는 사랑의 밀어가 개망초 꽃술을 흔들었습니다.

멀리 강 건너편 미루나무 옆에서는 때 이른 고기잡이에 신이 난 듯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강을 가로질러 세워놓은 다리 아래 그늘에선 돗자리를 깔고 누운 평온한 가족의 휴식이 보였습니다. 강변의 모래톱 위에 늦봄의 햇살처럼 흐드러진 발자국은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장난을 친듯하고, 너구리인지 수달인지, 황새 왜가리인지도 모르는 짐승의 발자취도 선명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자갈과 작은 바위를 찰랑대고 넘나드는 강물에 발을 담갔습니다.

손마디만한 송사리 떼가 발가락을 간지르고 강바람을 등지고 선 무릎은 강물의 냉기에 시려 왔습니다. 자전거 도로를 깔지 않아도 시멘트로 만든 벤치를 만들지 않아도 굳이 생태 박물관을 짓지 않아도, 그곳은 이미 대자연의 너른 품으로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시민사회신문DB>

흐르는 물을 막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두고볼 일입니다. 두고볼 일만은 아니라구요? 환경시민사회의 현장순례 모습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의 핵심은 강바닥을 준설하는 것입니다. 내 무릎 아래에서 찰랑대던 강물이 수심 6미터의 거대한 호수가 되어 아이들과 짐승들이 놀던 금모래톱을 빼앗고, 가족이 돗자리 깔고 누웠던 강가의 평온한 휴식을 빼앗는 것입니다. 4대강사업에서 강바닥을 굴착하는 총 준설량이 5억7천만㎡라고 합니다. 폭 100미터, 높이 10미터로 570km의 길이가 되는 양입니다. 경부고속도로가 약 420km이니 그보다 150km가 더 많습니다. 낙동강 구간에서만 굴착하는 준설량은 4억4천만㎡로 폭 100미터 높이 13미터로 350km를 쌓을 수 있는 엄청난 양입니다.

4대강 홍보동영상에서 개그맨 김대희 씨는 ‘가뭄 때를 대비해 물 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강바닥 굴착을 통해 2011년도 예상되는 8억㎡의 물을 확보하겠단 얘기로 들립니다. 언뜻 맞는 말 같지만 유감스럽게도 낙동강 본류주위 지역엔 물 부족 현상이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올해 봄 낙동강의 시원(始源)인 태백지역에 심한 가뭄이 들었었고 백두대간을 따라 경북 영양, 봉화 같은 산간 지역도 해마다 가뭄에 애타는 농심이 있는 지역입니다.

그렇다고 낙동강 본류에 가둔 물을 태백. 봉화에 실어 나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대구지역에 확보된 낙동강의 물은 대구에서만 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많은 물을 가둘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혹여,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끝나고 또 다시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전국의 어디에 있는 물이든 부족한 곳으로 이동 가능한 불가능한 가정을 실행에 옮길 생각이 없다면 이 이유는 타당하지 않습니다. 같은 영상에서 장동민 씨는 홍수 대비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강바닥을 깊이 파면 홍수 때 강의 수위조절이 용이하다는 말입니다.

맨땅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서울 변두리에 사는 우리 집 앞 하수도도 일년에 한번은 막힙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토사가 쌓이니, 반상회비를 거둬서 뚫어주어야 합니다. 하물며 강바닥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홍수가 나면 높은 강바닥은 깎이고 낮은 강바닥은 메워집니다. 높은 사람은 더 높이 가고, 낮은 사람은 더 낮은 곳으로 가야만 하는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삶과는 정반대입니다.

6m 깊이로 강바닥을 훑는다 해도 토사의 근원인 강 주의의 산을 모두 깎아 없애지 않는 한, 엄청난 돈을 들여 파낸 강바닥은 다시 메꿔질겁니다.

막지만 않으면 좋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철에 물놀이 하던 곳은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시멘트로 쌓아놓은 보 위였습니다. 가슴팍 위까지 물이 차올라 헤엄치기에 그만이었지만 가끔 수문을 열 때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물귀신이 될 번한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무릎까지 차는 여울에는 자갈이나 모래가 발바닥을 시원하게 했지만, 보로 막은 개울 바닥은 진흙투성이 여서 가능하면 발이 바닥에 닿지 않도록 헤엄쳤던 기억이 납니다. 폭이 약 30여 미터, 높이 1미터 쯤 되는 그리 크지 않은 보(洑)였습니다.

4대강 본류에 18개의 보가 들어선다고 합니다. 낙동강 본류에만 10개의 보가 들어서고 강 바닥을 6m로 파내니, 수량을 보존하기 위해서 보의 높이는 대략 10미터쯤 될 겁니다. 내 고향에서 가장 큰 저수지의 둑 높이가 5미터가 채 안되는 정도이니, 강 폭 전체를 틀어막고 쌓아놓은 10미터의 시멘트 절벽은 댐이라고 해도 그리 틀리지 않습니다.

4대강 정비 구간인 안동댐 밑으로 약 35km에 하나씩 생기는 꼴이어서 낙동강 정비구간 350여km는 거대한 계단식 호수가 10개쯤 생기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웠던 강의 흐름은 시멘트 돌 벽에 막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여울과 계류는 사라지고 유속이 정체됨에 따라 그 속에 살던 수십여 종의 민물고기와 하천 습지, 식물 군락 서식지도 사라질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 국민 방송 연설을 통해 임기 내 대운하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4대강 프로젝트의 핵심인 수심 6m를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홍수에 대비하고 가뭄에 도움이 된다면 4m면 어떻고 10m면 어떤지, 또한 한강과 섬진강, 임진강, 만경강 그 외의 많은 강들은 왜 그리 안하는지도 설명해야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심 6m라는 수치가 2천500톤급 배가 강을 왕래하는 최소 수심 이라는 것 말고는 딱히 다른 이유가 없는 것 같아, 대운하를 포기 했다는 대통령의 발표를 여전히 믿기 어렵습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에 총 22조원이 투입된다고 하고, 그중에 40~50%는 강을 파내고 막는 비용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강바닥 준설로 인해 파괴되는 환경자원과 댐 건설로 오염되는 강물을 어떻게 복원 할 것인가를 걱정 합니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끝난 지 채 1년도 안되어 벌어졌던 환경 재앙을 국토의 젖줄인 4대강 유역에서 또다시 겪어야 한다는 절망 앞에서 절규에 가까운 구호를 토해 냅니다.

“파지마라! 막지마라!”

전장을 지휘하는 장수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승산 없는 전투에 자신의 수족 같은 병사들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과 때로 물러설 수 있는 지혜는 장수에겐 필수의 덕목입니다. 외나무다리의 염소처럼 물러설 줄 모르는 불굴의 의지는 명령을 받은 일선 소대장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내 눈에는 오직 토건족들 만을 살리기 위한 4대강 프로젝트에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장수들만 보입니다.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와 여당에 속한 모든 사람과 조직이 여기에 매달려 있습니다. ‘돌격 앞으로’만 외치는 지휘관 휘하의 병사들은 이유도 모르는 죽음 앞에서 허망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노랑부리백로가, 저어새가 그런 것처럼.

흰수마자나 얼룩새코미꾸리 같은 민물고기가 그 병사입니다. 강가의 버드나무도 여울의 바위 틈새에 사는 꺽지도, 강둑 위를 거니는 연인들의 밀어도 이유 모르는 최후를 맞이할 것이고, 강에 기대어 살았던 모든 생물들, 그 물을 들이키고 살았던 사람들도 점차 사라질 것입니다

'강이 없으면 사람도 없다'는 단순한 말이 가슴을 내리치는 요즘입니다

‘나는 네게로 가고너는 바다로 갔다/사랑한다, 사랑한다/손 내밀지 못하고 입 안에서만 궁글었던 그/숱한 날의 고백을 뒤로하고/더 많이 외로우면 더 많이 그리울 거라고/나를 등지고 사람의 마을을 등지고/홀로 울며 떠나가는/강아,강아/내 마음의 강아.’(이지상 작 ‘내 마음의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