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톰은 눈물을 흘린다

책으로 보는 눈 [92] 최종규l승인2009.07.2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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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두 해를 살다 떠난 만화쟁이 데즈카 오사무 님은 병원침대에 누운 채 마지막 책 하나를 붙잡고 있었으나 끝내 마지막 책은 마무리를 짓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스무 해 뒤인 2009년, 마무리를 짓지 못한 책이지만 <아톰의 슬픔>이라는 이름으로 글모음이 하나 세상에 나옵니다. 당신이 왜 만화를 그렸으며 당신은 어떻게 만화를 그릴 수 있었고, 당신은 만화에 어떤 뜻과 이야기를 담으려 했는지를 낱낱이 풀어헤친 편지와 같은 글이 알알이 모여 있습니다.

“나는 계속 그렸습니다. 그 맹렬한 비판의 폭풍 속에서도 만화를 그려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로봇의 격렬한 싸움을 그린다 해도 내 만화(아톰)의 주제는 항상 자연에 뿌리를 둔 ‘생명의 존엄’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13쪽) 얼마 앞서 리영희 님이 말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리영희 님은 몇 해 앞서부터 손을 쓰지 못합니다. 입으로 읊으면 누군가 받아 적기를 해 주어야 합니다. 그동안 리영희 님 글을 읽고, 말잔치 이야기를 사람들한테 건너들으면서 생각해 보건대, 리영희 님 생각줄기에는 언제나 ‘목숨을 섬기는 매무새’가 바탕이었다고 느낍니다.

“국가권력이 ‘정의’라는 이름하에 국민들에게 휘두른 폭력의 실상을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기록해 두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그린 작품이 <아돌프에게 고한다>입니다.”(41쪽) 지난 2003년 8월에 세상을 떠난 이오덕 님은 1925년에 태어났고, 데즈카 오사무 님은 1928년에 태어났습니다. 서로 비슷한 때에 태어나 서로 다른 땅에서 태평양전쟁을 겪고 치렀는데, 저마다 ‘전쟁을 일으키는 권력자가 사람들을 얼마나 내리누르고 괴롭히는가’를 몸소 깨달아 이 아픔과 생채기를 뒷사람한테 물려주지 않으려는 매무새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어른들이 자신의 삶에서 발견한 가장 소중한 것을 어린이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세대를 뛰어넘어 같은 인간으로서 꿈을 공유하고 신념을 나누길 바라는 것입니다.”(55쪽) 올해 유월, 국회도서관에 ‘송건호 문고’가 마련되었습니다. 1927년에 태어나 2001년에 세상을 떠난 송건호 님인데, 나날이 당신 이름이 잊혀지고 있음을 헤아리면 다른 정권도 아닌 오늘날 정권 때에 국회에 당신 이름으로 작은 도서관이 마련된 일은 몹시 뜻밖입니다. 그러나 송건호 님이 걸었던 길은 언제 어디에서 누구하고라도 옳고 바른 목소리를 나누려는 몸짓이었음을 떠올린다면, 외려 오늘날 같은 때에 국회도서관에 한 자리를 얻을 만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전국적으로 교통망이 발달해 각지의 간선도로가 그물망처럼 교차하고, 그 결과 지역산업이 발전하지만 모든 지방도시들이 정형화되어 엇비슷한 도시 구조를 지닌 특색 없는 모습으로 변해 갈 것입니다.”(171쪽) 아침에 옆지기가 <2인조 가족>이라는 청소년소설을 읽고는, 책이 아주 재미있으니 저보고 얼른 읽어 보라고 건넵니다. 저는 <아톰의 슬픔>을 눈물로 읽고 있으니 이 책을 옆지기한테 건네면 눈물과 웃음이 반가이 만나겠습니다.

책만 보는 엄마 아빠 옆에서 아기가 저하고도 놀자며 빽빽 웁니다. 우는 아기를 달래어 밥 세 숟갈 떠먹이고 나서 조금 놀다 보니 어느새 곯아떨어집니다. 조용해졌으나 갖은 물건이 널브러진 마루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이웃나라 만화쟁이는 눈물로 아톰을 빚어냈는데 우리네 만화쟁이는 무엇으로 뭐를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눈물만화까지 바라기는 힘들더라도 돈만화만 철철 넘치지 않느냐 싶습니다.


최종규 1인 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 내는 사람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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