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과 조중동의 나라

[편집인 레터] 김주언l승인2009.07.2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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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마감하는 현 시점에서 거대 미디어기업 오너들은 탐욕에 사로잡힌 나머지 끊임없는 수익증대를 모색하면서도 미디어의 질적 수준은 고려대상의 최하위 순위로 밀어냈다.”

지난 17일 92세의 나이로 별세한 ‘뉴스의 전설’ 월터 크롱카이트의 지적이다. ‘미국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불리던 크롱카이트는 미국 TV뉴스의 전성기를 연 인물이다. 크롱카이트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 워터게이트 사건, 베트남 전쟁, 이란 인질 사태 등 주요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신뢰받는 뉴스’와 동의어가 되었다.

1968년 베트남에 다녀온 크롱카이트는 피비린내 나는 현장의 진실을 전하며 “미국민은 지도층의 근거없는 낙관적 전망에 속고 있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협상이다”라고 지적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미국이 이기고 있으며 곧 끝날 것”이라고 선전했다. TV를 보던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고 탄식했다. 베트남전에 대한 여론은 이를 계기로 종전을 요구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존슨 대통령은 재선 출마를 포기했다. 이런 크롱카이트가 거대 미디어그룹의 폐해를 단적으로 꼬집은 것이다.

미디어 그룹의 등장과 민주주의의 후퇴

미디어 그룹의 등장은 민주주의의 후퇴와 직접 연결된다. 미디어 그룹의 소유집중은 공익성을 급속하게 후퇴시킨다. 대중은 민주시민이 아닌 소비자 집단으로 간주된다. ‘부자 미디어 가난한 민주주의’의 저자인 로버트 W. 맥체스니는 “이들 미디어는 정치인들의 팬티를 치실삼아 잇새의 음식 찌꺼기를 긁어낸다”고 비유하고, 이러한 미디어 시스템은 “부유한 투자자와 기업 경영자, 광고주들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유 집중에 따른 과도한 상업주의 미디어가 민주주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올 미디어 그룹의 탄생이 한국에서도 예고됐다. 한나라당이 재벌과 신문의 방송겸영을 허용하는 미디어법을 단독으로 강행 처리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파괴한 행위에 다름 아니다. 미디어법은 대기업과 신문사의 방송 지분한도를 ‘지상파 10%, 종합편성채널 30%, 보도전문채널 30%'로 하고, 2012년까지 신문사와 대기업의 지상파 방송사 경영권을 유보하되 지분 소유는 허용토록 했다. 또한 가구 구독률 20%이상 신문사는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 채널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했다.

대리투표 등으로 방송법의 효력 논란이 일고 있지만, 미디어법의 통과로 재벌과 보수 족벌신문사가 사실상 아무 제한 없이 방송에 진출하게 됐다. 한나라당은 영구집권을 위해 재벌과 조중동에게 방송을 내주어 여론을 독과점하려 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60% 이상이 직권상정을 반대했다. 한나라당은 이러한 여론 따위에 신경쓸 겨를이 없다. 재벌방송과 조중동 방송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조중동의 나라’ ‘재벌의 나라’로 만들려 한다.

여론의 균형추

족벌 신문사가 방송을 소유하면 여론의 균형추는 급격히 보수 쪽으로 기울 게 뻔하다. 민주주의의 기본조건인 여론다양성은 훼손될 가능성이 크고, 서민과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론매체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반면 돈 있는 자의 사회적 지배력은 엄청 커질 수밖에 없다. 크롱카이트의 지적대로 미디어 그룹의 오너들은 저널리즘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돈벌이가 최고이다. 따라서 미디어의 공익성은 사라지고 상업주의가 활개를 치게 된다. 국민은 통치의 대상이자 조작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재벌과 조중동을 위한, 재벌과 조중동에 의한, 재벌과 조중동의 나라’가 될 지도 모른다.

‘미디어 모노폴리’의 저자인 벤 바그디키언은 미디어 독점의 폐해를 이렇게 지적했다. “1980년 이후 몇 년 동안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적인 소득세를 항구히 없애는 일에 확실히 박차를 가하기 위해 ‘정부는 뒤로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통제받지 않는 기업권력을 목표로 삼았다.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그들의 정치적 슬로건과 그런 생각에 동참하는 여러 주장들이 미국 내 주요 뉴스 미디어의 보도와 논평의 대부분을 채웠다. 바로 그때가 ‘소비자를 보호하는 정부’의 역할일 막을 내리고, ‘대기업을 보호하는 정부’의 역할이 막을 올리는 시점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재벌과 족벌신문이 맞장구치는 슬로건과 너무 빼 닮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민 중시와 중도 실용 노선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재벌 중시와 보수 우선 노선을 걷고 있음을 이번 미디어법 파동이 증명해 주고 있다. 말로만 ‘서민’과 ‘중도’를 떠든다고 해서 이명박 정부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국민은 누구보다도 이명박 정부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김주언 편집인

김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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