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가 ‘그러하다’면?

강상헌의 한자 이야기[1]-‘그러할 연’(然) 강상헌l승인2009.07.27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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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 방편을 긴요한 개념 상징으로 ‘창조’
동양문화 정수 안아 우리말글 ‘업그레이드’를


편집자주한자교육 관련 기획기사를 싣습니다. 한자(漢字)가 우리 교육에서 축출된 후 빚어지는 여러 현상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것을 주목합니다. 한자를 공부하거나 않거나 하는 문제는 개개인의 자유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자를 배울 기회가 국가의 교육정책으로 봉쇄되어 있는 오늘의 상황을 결코 자연스럽다 할 수는 없겠습니다. 공사(公私)교육에서의 실험적인 한자 학습이 상당한 성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 일반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독자와 시민사회의 선택을 위한 자료를 성실하게 제공하고자 합니다. 일반기사와 한자문화 관련 칼럼, 한자교육 컨텐츠 등을 다양하게 제공할 계획입니다. 관심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화가 류연복 씨의 목판화 작품 ‘스스로 그렇게’ 연작 중 ‘파’ 1995년 작
오래 전, 수더분하지만 향기 그윽한 화가 류연복 씨의 화실을 찾았을 때 그가 보여준 화집 중 ‘스스로 그렇게’라는 제목이 내 눈길을 잡았던 기억이 났다.

누추하다 싶은 집이 들어앉은 경기도 안성 한 산비탈 부근의 풍경도 그러했거니와, 머리와 수염을 기르고 눈이 반짝거리는 이 예술가의 범상치 않은 모양새가 세속(世俗)과는 좀 거리가 있다고 느꼈기에 ‘자연’(自然)이란 단어를 풀어놓은 그 제목이 또한 신선했던 것 같다.

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한’ 것이 자연이다. 그 화집의 그림들은 과연 방불(彷彿)한 자연이었다. 저마다 자기류(自己流)의 ‘자연’을 들고 흔들어대는 세상, 자연이란 단어의 의미(意味)가 심하게 일그러진 오늘을 그는 이미 오래 전에 봤던 것이다. ‘오래된 미래’인가? 무엇이 스스로 그런 것이냐고 물었더니 말없이 빙긋이 웃어주던 그의 표정이 다시 새롭다.

오래된 미래, 한자·한글의 통섭

한자교육특집 취재를 위해 진태하(陳泰夏) 박사(명지대 국문학과 명예교수)의 강의실을 찾았을 때 그는 마침 그러할 연(然)자의 내력(來歷)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는 학교 말고도 사단법인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에서도 강의한다. 진 교수는 이 단체의 이사장 직(職)을 맡고 있다.

이 강의는 연합회의 강의다. 50~70대 학식과 경륜 두터워 보이는 20여명의 남녀 청중과 때로는 문답(問答), 때로는 토론(討論)으로 노학자는 이 말의 뜻을 풀었다.

‘그러하다’라는 무척 추상적인 개념(槪念)을 표현한 글자로는 참 특이하다. 고기 육(肉), 개 견(犬), 불 화(火) 세 글자를 합친 것이 어떤 뜻일까? 개불고기? 여러분은 이제까지 이 흔하디흔한 단어 중의 이 글자 한자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개는 불에 그슬어 요리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이런 의미로 생긴 이 글자의 옛날 뜻을 문자학(文字學)으로 풀어보면 ‘그슬다’였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하다’의 뜻으로 변했다. ‘개는 역시 불에 그슬어야 제 맛’이라는 말에 ‘그렇지! 그렇고말고’하고 맞장구치는 뉘앙스를 더 해서 생각해보라.

한자는 생활을 함축(含蓄)한다. 이 함축의 퇴적(堆積)이 문화일 터다. 전통적으로 우리 언어문화의 중요한 한 날개인 한자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관한 논의가 여러 부문에서 일렁이고 있다. 3천년 이상 써온 동양문화의 정수(精髓)인 한자를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한글에 자연스레 복속(服屬)토록 하여, 우리 말글의 품격과 기능을 업그레이드하자는 것이다.

노학자의 강의는 연(然)자와 관련한 한자 생성의 연원(淵源)을 뒤진다. 청중들이 무릎을 치고 박수를 보낸다.

추상개념의 의미와 자기화

“우리 선조로 일컬어지는 동이족(東夷族) 말고는 이제까지도 개를 불에 그슬어 먹는 민족이 없습니다. 이 글자를 누가 만들었을 지의 물음에 대한 대답입니다. 은(殷)나라 때의 갑골문(甲骨文)부터 톺아본다면 많은 부분에서 여러분들의 눈이 환해질 것입니다. 제대로 공부해야 동양사와 동양문자의 역사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식(食)생활의 한 방편(方便)을 ‘그러하다’는 매우 긴요한 개념의 상징으로 ‘창조’(創造)해 수천년을 잘 쓰도록 한 오래된 선인(先人)들의 놀라운 지혜도 그러하지만, 그 선인들이 동이족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것은 당연(當然)하다.

이런 사실, 모르는 이들이 많은 것 역시 의당(宜當) 그러하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자연(自然)스러운 이야기일 수는 없다. 우리의 중요한 뿌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르기 때문에 진리(眞理)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한자가 가진 뜻, 이 노학자의 흉중(胸中)에 맺힌 사연들을 우리가 끝내 외면할 수는 없다. 류 화가의 ‘스스로 그렇게’의 미소(微笑)의 뜻이기도 할 터다.

토막해설-‘연’(然)=달 월(月)자처럼 쓰는 고기 육(肉)자, 개 견(犬)자, 불 화(火·부수자와 같이 글자를 이루는 요소로 쓰일 때는 '灬')자의 3자가 합쳐졌다. 자전(字典)에서 이 글자를 찾기 위한 구분(區分)인 부수자(部首字)는 ‘’(불 화자의 다른 글자)자이다. 원래는 ‘(고기를) 그슬다’는 뜻이었지만, ‘그러할’이라는 뜻으로 쓰이면서 그슬다는 뜻의 연(燃)자가 또 만들어졌다. 연료(燃料)와 같이 쓰인다.


강상헌 논설주간·한자교육원 원장

강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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