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출판종사자의 바람

[책권하는 사회] 최윤도l승인2009.07.27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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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소통부재 시대… 양서가 통로 되길
소외된 법을 바라보는 ‘법 밖의 눈’ 기르기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두어 집 건너 한 집에는 ‘못난이 인형 세 자매’가 TV위에 놓여 있었고, 위 벽면에는 ‘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 하라’라는 잠언성 글이 가훈처럼 걸려 있었다.

군대에서 비롯된 이 말은 과거 군사정권에서 새마을운동을 통해 ‘민간이양’된 군대정신이다. 이 말의 영향력은 사회 전반에 미쳤으나 특히 영향력을 받은 세 분야가 있었으니 바로 건설, 서예 그리고 공부다.

황량한 대지에 건물과 도로가 생기고 이역만리 중동에서는 불굴의 정신으로 무장한 건설 노동자들이 소금을 한 움큼씩 먹으며 ‘외화벌이’를 했다. 동네 화방에서는 ‘하면 된다’라는 글귀가 여러 가지 크기의 고급 액자에 담겨 심심치 않게 팔리는가 하면, 학생들은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마다 벽에 걸린 이 ‘잠언’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고 안경 사이로 미간을 찡그려가며 엉덩이에 땀띠가 나도록 앉아서 책을 팠다.

‘하면 된다’ 그 독한 추억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향수 어린 이 ‘잠언’이 이명박 정부에 와서 부활했다. 건설인 출신 이명박 정부에서 이 말이 ‘사상적 토대’로 기능한다는 황당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정부의 법치주의가 법률 만능주의와 동의어가 되는 기이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용산 참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건만 정부는 ‘법과 질서’라는 미명 아래 쌍용차 노조에 공권력을 투입해 또 한번의 강제진압을 준비하고 있다. 불법이기 때문에 전기, 수도 심지어 음식물 공급까지 차단하는 정부의 ‘법대로(법치)’ 한다는 말 앞에서 국민들은 딱 부러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다.

심지어 “파업을 하더라도 법을 어기면서까지 해야 하느냐”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쌍용차 사태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계약(법)에 따라 심장을 도려내되 피 한 방울도 흘리지 말라”라는 판결을 진짜로 심장만 도려내면 된다는 말로 알고 들이대는 꼴이다. 법치주의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부지런한 바보’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하면 되는 줄 아는’ 이명박 정부가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현실과 맞지 않는 법치주의의 모순과 법 일반에 대해 궁금해 할 만한 질문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법을 보는 법-법치주의의 겉과 속>(개마고원)은 법규범이 우리 일상 속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영화, 소설, 철학서의 여러 흥미로운 사례를 들어가며 풀어낸다. 정작 법치를 말하면서 법을 어기는 사람들이 법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현실을 독자 스스로 판별할 수 있도록 서술하고, 정치작용으로 전락하는 법의 맹점을 들추며 법치주의의 본질에 대한 한층 심화된 지식을 전해준다.

법은 누구를 위해 있나

저자는 이 책에서 2008년 이른바 ‘야간집회 금지논란’과 관련해 서울중앙지법 법원장 신영철 법관이 촛불 시위 가담자들에 선고 유예를 여러 판사들에게 이메일로 지시한 사례를 들고 ‘법률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한다.

“속으로는 법적 판단을 지배하기 위해 온갖 정치를 다하면서도 겉으로는 재판이 마치 판사들의 ‘성향’과 무관하게 진공상태에서 기계적으로 진행되는 순결한 메커니즘인 것처럼 보이려는 언설에 무기력하게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라고 또한 말한다.

“무미건조한 법전에 마음을 적셔주는 빗물이 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모든 법과학자, 법조인 그리고 법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 모두가 각자 판단해야 할 문제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법은 ‘법을 보는 눈’만으로는 결코 보이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법을 보는 눈’은 ‘법 밖을 보는 눈’에 의해서만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법을 보는 법’이다.”(본문 중)

현대 사회에서 법에 의해 판단되는 가치와 반가치 판단은 모든 현실 문제에 명확한 선을 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설령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의 옳고 그름의 문제 앞에서는 누구나 무기력해 질 수 밖에 없다.

추상적인 법은 현실의 감각을 더하지 않고서는 만인에게 당위적인 규범이 될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의 마지막 단락은 음미해볼 만하다.

나만의 착각이길…

이명박 정권은 ‘잃어버린 10년 이상’으로 점점 더 공안정권으로 회귀해가고, 경찰청장은 자신이 무슨 전쟁터에 출격하는 장군이라도 된 양 “최소한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라는 무책임한 출사표를 시위현장에서 남발하고 있다.

사회 공론의 장으로서 최전선에 있는 언론도, 언론악법이 날치기로 통과되면서 자유롭게 서로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광장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혼란스러움 속에서 분별력을 상실하기 쉬운 지금의 시대상황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회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올바르게 판단하려는 노력이다.

이것은 무엇보다 많은 책읽기를 통해 가능한 일일 것이다. 지난 독재정권시절 출판문화가 공론과 소통의 장이 되었던 것처럼 다시금 책읽기가 활발해졌으면 하는 것이 출판 종사자로서의 소박한 바람이다.

얼마 전 다시 못난이 인형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무슨 상관이 있을까마는, 당시 사회 분위기와 지금의 분위기가 못난이 인형 세 자매처럼 점점 닮은꼴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껴지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최윤도 두리미디어 기획팀장

최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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