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현대적 민주주의의 출발은 프랑스혁명이라고 한다. 프랑스혁명의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는 오늘날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절대 가치이다. 브라질의 사회학자 베라 아라우조는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프랑스 혁명의 3대 슬로건 중 ‘자유’와 ‘평등’은 어느 정도 실현되었지만 ‘박애’ 곧 ‘형제적 사랑’은 역사에서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고 진단했다. ‘자유’와 ‘평등’은 나를 찾고 획득하는 것이지만 ‘박애’는 나를 내어 주는 것이기에 실현하기가 더욱 어려웠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그 본래의 목적에 맞게 발전하려면 잃어버린 ‘형제애’의 개념을 찾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그녀의 말에서 하나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공동체의 발전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랑, 바로 ‘형제애’에서 출발해야 온전할 수 있다. ‘형제적 사랑’이 없는 ‘자유’, ‘형제적 사랑’이 없는 ‘평등’은 약육강식의 다른 표현이 되어버릴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정의와 평화의 개념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공동체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최근 유럽에서는 몇몇 정치학자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민주주의의 근본가치를 학문적으로 돌아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들은 ‘보편적 형제애’를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영국의 정치학자 앤소니 기든스가 주창한 ‘민주주의의 제3의 길’이라 보고 함께 연구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정치학은 민주주의가 아닌 것에서 민주주의로 넘어 온 과정들을 연구했다. 그러나 이제 정치학 이론에서는 더 이상 이에 대한 연구는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현대 사회가 당면한 문제는 질적으로 어떤 민주주의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질적인 민주주의에서는 방법, 내용, 목적 이 세 가지가 다 좋아야 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들이 ‘보편적 형제애’를 연구의 주제로 삼는 이들로 인해 새삼스러운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형제애’를 단지 윤리적인 요청으로만 본다면 이는 ‘방법’에 해당하겠지만 ‘방법’뿐만 아니라 ‘내용’을 이야기해야 한다. ‘방법’과 ‘내용’ 안에 ‘형제적 사랑’이 녹아있어야 ‘목적’의 정당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질 좋은 민주주의가 되려면 시민들이 자유와 평등 면에서 만족해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가 온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
양극화의 심화와 약자들의 고통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우리나라도 이제 민주주의의 질을 위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비록 현재의 생활이 힘들더라도 나만 억울하게 고통 받고 있다는 부당함까지 느끼지 않도록, 공평한 과세원칙과 예산집행의 공정성을 믿을 수 있도록, 노인과 장애인을 비롯한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가 당연한 일상이 되도록, 나도 법으로부터 보호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국민 모두의 생활이 안정을 찾아가야 한다.
모든 권위는 그 권위의 주체가 책임과 의무를 다했을 때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인정받는 길은 위임받은 권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다. 국가로부터 배척당하고 있다는 의식이 더 이상 깊어지지 않아야 한다. 다른 이들의 소리를 들을 줄 알고 고통에 같이 아파할 줄 아는 마음이라야 사람을 움직인다. 그 공감이 모여야 사회를 움직이게 한다. 현실정치를 바꿀 수 있는 힘은 권력이 아니라 사랑이다. 사랑이 결여된 민주주의에 온기를 넣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오늘의 과제인 이유이다.
최성주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
최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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