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공무원’ 원하는가

[편집인 레터] 김주언l승인2009.08.1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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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국민의 공복’이라는 소신과 원칙을 버리고 정권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공무원을 비아냥거린 말이다. 이명박 정부로서는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일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을 되뇌이며 과거 정권과의 단절을 꾀해온 이명박 정부는 ‘영혼 있는’ 공무원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무원들이 모두 영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교조와 공무원 노조를 중심으로 수천명의 공무원들이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부의 국정 쇄신과 언론자유 및 인권 보장, 부자 정책 중단 및 서민 살리기 정책 시행, 4대강 정비사업 중단 등을 요구했다. 정부의 손발이 되어야 할 공무원들이 집단적으로 정부의 실정을 꼬집고 대대적인 국정쇄신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명박 정부로서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 대통령이 최대의 치적으로 추진하는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반기를 든 것은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와 공무원들을 무더기로 중징계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자신에 반대하면 모두 ‘좌파’로 몰아 탄압하는 이명박 정부의 속성이 공무원이라고 해서 바뀌지는 않을테니까.

행정안전부는 7월 서울역 광장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공무원 16명을 검찰에 고발하고, 이들을 포함한 105명을 소속 기관에 중징계 하라고 요청했다. 이에 앞서 교육과학기술부는 2차 시국선언을 주도한 교사 89명에 대해 파면·해임·정직 등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교과부는 앞서 1차 시국선언을 주도한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 등 88명을 검찰에 고발,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들이 “공무원으로서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하고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본분을 망각했다”며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의 ‘집단행위 금지’ 규정과 성실의 의무, 복종의 의무, 품위유지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무원노조는 “공무원이 휴일에 합법 집회에 참석한 것을 징계하겠다는 것은 징계권 남용”이라며 “행안부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말했다. 전교조도 “시국선언은 역대 정권에서 처벌되지 않았던 합법적 운동이고, 교과부조차 법리를 검토한 뒤 처벌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며 “부당한 탄압에 맞서 교과부 장관을 고발한 데 이어 시도교육감 고발과 부당노동행위 제소 등 법적 투쟁을 계속하는 한편 국제인권위 제도 등 국제적인 연대활동을 통해 부당성을 입증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공직자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은 지속적으로 이뤄져왔다. 법으로 보호받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탄압도 거리낌 없이 이어졌다. 지난해 5월 ‘4대강 정비계획의 실체와 비효율성’에 대해 양심선언을 한 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박사는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아야 했다. 올해 5월 ‘나는 지난 여름에 국세청이 한 일을 알고 있다’라는 제목으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정치적 목적 세무조사와 관련한 비판 글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나주세무서 김동일 계장이 파면당했다. 이밖에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 조치는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던 박지웅 군 법무관도 직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마치 불 낸 자는 그냥 두고 119에 신고한 사람을 잡아간 격이다. 아니, 불을 낸 자가 화재신고자를 잡아 처벌한 것이다. 소방 업무를 맡은 사람이라면 화재신고를 한 사람에게 감사하고 우선 불을 끄고 난 뒤 화인을 규명하여 방화범을 처벌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불이야”라고 외친 사람을 잡아다가 벌을 주고 민주주의의 근본 기틀을 불태우고 있는 ‘악의 불길’은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공무원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표현의 자유’를 어떤 이유로도 침해받을 수 없다. 공무원들 역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예외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국가공무원법 규정을 들어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을 징계하고 공무원들을 징계하려 한다.

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의 선거 개입이나 정당 결성 등 최소한의 범위만을 제한적으로 금지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공무원의 시국선언이 정치적 중립성을 위배하지 않는다. 더구나 시국선언은 국가의 민주질서가 훼손되는 데 대한 의견 표명으로 공익적이기 때문에 공익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의 판례를 보더라도 시국선언은 국가공무원법상 금지되는 집단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는 공무원에게 왕조시대나 있었을 법한 무조건적 충성을 요구한다. 영혼만 없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는 로봇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재벌 CEO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은 공무원을 ‘MB 회사’의 회사원 쯤으로 여긴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공무원들에게 급여를 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공무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살아간다. 따라서 대통령이 아닌 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


김주언 편집인

김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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