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의 후손들이라니…

강상헌의 한자 이야기-[2]오랑캐 이(夷) 강상헌l승인2009.08.1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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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선조를 ‘오랑캐’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자신을 스스로 ‘오랑캐’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동이족(東夷族)의 후예(後裔)로 일컬어지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한자 급수(級數) 깨나 받았다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에게 물어보라, 우리의 먼 선조(先祖)라는 ‘동이족’의 말뜻이 무엇인지. 알만한 성인(成人)에게도 마찬가지다. 바로 답 떨어진다. “동쪽 오랑캐”

오랑캐가 무엇인가? 이번엔 사전(辭典)과 의논하자. 첫 번째 뜻은, 예전에 두만강 일대 만주지방에 살던 여진족을 멸시하여 이르던 말이란다. 두 번째 뜻은 이(異)민족을 낮잡아 이르던 말. 누구를 겨눴던지 간에 ‘멸시(蔑視)의 언어’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동이족이 오랑캐라니, 당신 오랑캐 후손 맞아?

동이족을 풀어보자면

혹자(或者), 이렇게 말하리라. “그건 중국이 우리를 부를 때 쓰던 말이야. 정치적으로 이해하라고.” 딴죽 걸지 말고 그냥 넘어가자는 얘기인가. 작은 것으로 [以小(이소)] 큰 것을 섬겨야 했던[事大(사대)] 시절 얘기니까, 나름 상황에 맞는 필연(必然)의 낱말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겠다.

그러나 한자(漢字)는 스스로 제 뜻을 퍼뜨린다. 이(夷)가 무엇인가? 사전은 사람이 활을 들고 있는 모양을 본떴다고 한다. 갑골문(甲骨文) 연구가이기도 한 문자학자 진태하 박사는 고(古)문자 모양을 들어 활과 화살을 상형(象形)한 것이라 설명한다. 글자 모양만으로도 큰[大] 활[弓(궁)]이다. ‘큰 활’은 멸시를 위한 이미지일 수 없다. 보고도 모르는가?

우리 자전(字典)의 풀이는 ‘오랑캐’, ‘동방(東方)종족’ 말고도 몇 가지가 있지만 정작 활과 관련한 것은 없다.

제 나라 역사를 연속극에서나 주섬주섬 챙기는 우리네 삶과 교육에서 그나마 활 잘 쏘는 주몽(朱蒙) 이야기 퍼뜨린 것은 방송의 착한 역할이겠다. 아들 머리위의 사과를 쏘아 맞춰 큰일을 이룰 수 있었다는 스위스 역사의 빌헬름 텔 전설(傳說)이 세계적으로 더 유명하기는 하겠지만, 주몽은 우리에게 다른 여러 의미와 함께 활의 이미지를 더 깊게 각인(刻印)했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대답은 하나다. 세상에서 제일 활 잘 쏘는 나라는 어디인가? 단연 한국이다. 양궁(洋弓) 스포츠 챔피언으로서의 우리의 모습과 주몽, 동이족의 이(夷)를 연관시켜 생각하지 못할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夷자가 ‘오랑캐’란다. 진 박사는 ‘활 잘 쏠’ 이 자(字)라고 훈(訓)을 바꾸자고 한다. 또 정작 한자를 만들어서 오래 써 온 대륙의 저 사람들의 뜻도 그 것(오랑캐)이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동방예의지국 소화(小華) 금수강산(錦繡江山) 등이 그네들이 본 우리 모습이었다. 지레 스스로를 멸시함으로서 사대(事大)의 미덕(美德)을 극대화한 우리 역사의 못생긴 모습을 언제까지 방임할 것인가, 노학자는 노기(怒氣) 숨기지 않고 묻는다.

중화적 인식의 왜곡·오류

이만융적(夷蠻戎狄), 동이(東夷) 남만(南蠻) 서융(西戎) 북적(北狄)이라고 했다 한다. 중국은 가운데[中]의 꽃[華]이어서 중화이고, 외곽 사방(四方)에 사는 ‘오랑캐들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남쪽은 벌레가 많다고 하여, 서쪽은 긴 창[장과(長戈)]을 잘 쓴다 하여, 북쪽은 이리가 많다고 하여 각각 그 지역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명명(命名)한 것이라고 중국 자료들의 뜻을 진 박사는 설명한다. 영광과 오욕(汚辱), 전쟁과 평화, 침략과 수탈(收奪)의 다기(多岐)한 역사가 휘몰아친 동아시아의 역사가 이런 여러 이미지를 크게 왜곡(歪曲)했다는 것이다.

다른 종족, 다른 나라를 멸시하는 단어인 오랑캐와 이런 차별의 마음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축출(逐出)해야 한다. 또 버릴 수 없는 ‘동이족’이란 단어의 이(夷)자의 훈도 바꿔야 한다. 사전 자전에서 바뀔 것 기다릴 이유 없다. 우리 마음에서 지금 바로 바꾸자.

△토막해설-이(夷)
무의식적으로 ‘오랑캐 이’라고 말하곤 하는 이 글자는 현재 형태로는 큰[大] 활[弓]이란 뜻의 합자(合字)다. 대(大)자가 사람의 모습을 그린 글자여서 활을 든 사람의 모습을 본 뜬 회의(會意)문자라고 풀이한다. 활대에 걸어서 켕기는 줄인 시위를 풀어 느슨하게 한 활의 모양을 상형(象形)해 궁(弓)이란 말을 만들었다. 고문자로 풀어 활과 화살[矢(시)]의 합자라고도 한다.

강상헌 논설주간·한자교육원 원장

강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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