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기실현의 가능성을 갖는 존재"-하이데거(2)

철학여행까페[76]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9.08.1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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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젊은 강사일 때부터 하이데거는 이미 스타였다. 학생들은 ‘사실’에 육박해 가는 새로운 스타일의 강의에 빠져 들었다. 가다머는 그때 하이데거의 강의를 들은 경험을 이렇게 증언한다.

“칠흑 같은 문장의 구름들이 함께 몰려와서 그 구름 사이로 번개가 번뜩이면 이 번개는 우리를 반혼수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1920년에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교수 자리에 결원이 생겼다. 후설의 강력한 천거와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는 프라이부르크 대학 교수로 임용되지 못했다. 그 대신 니콜라이 하르트만이 교수가 되었다.

이동희
하이데거와 장 보드레

그는 2년 뒤에 정교수는 아니지만 정교수 대우를 받는 원외교수로서 마르크부르크 대학의 초빙을 받았다. 이곳에서도 그의 소문은 퍼져 있었다. 학생들은 하이데거를 “숨겨진 철학의 제왕” 또는 “메스키르히에서 온 마법사”로 불렸다.

학생들은 그의 말투와 몸짓을 흉내 낼 정도였다. 이때 학생들 중에는 <생명의 원리>를 쓴 한스 요나스도 있었고, <전체주의의 기원>를 쓴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도 있었다. 한나 아렌트는 당시 18살의 어린 여학생으로서 하이데거의 강의를 들었다. 어리고도 총명한 이 한나 아렌트에 하이데거는 사랑을 느꼈다. 누가 이 총명하고도 매력적인 여인을 거부할 수 있을까.

이내 한나 아렌트와 하이데거는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두 사람의 관계는 1924년부터 1928년까지 4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아렌트는 기혼자인 하이데거와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고 괴로워했다.

그녀는 하이데거의 소개로 하이델베르크의 야스퍼스에게 갔다. 아렌트는 결국 야스퍼스에게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야스퍼스는 1920년 프라이부르크에서 하이데거를 알게 된 후 그와 의기투합하여 강단 철학에 대항하는 철학적 동지 관계를 형성했었다.

이동희
하이데거의 묘지명
‘철학의 제왕’ 하이데거


유대인인 아렌트는 하이데거가 나치에 가담하면서 그에게 크게 실망하고, 그와의 관계를 단절했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서 아렌트는 1933년 프랑스로 도피했다가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하이데거는 하르트만이 쾰른 대학으로 옮겨가고 난 후 공석이 된 프라이부르크 대학 교수 자리를 얻기 위해 <존재와 시간>을 집필했다. 이 저서는 1927년 4월에 후설이 편집하는 <철학과 현상학연구를 위한 연보>의 제8권으로 발간되었다. 이 책에는 “존경과 우정으로 에드문트 후설에게 바침”이라는 헌사가 실려 있었다.

그러나 나치 시대에 그는 이 책이 출간되지 못할 수 있다는 출판사의 요청으로 후설에 대한 헌사를 지워버렸다. 비록 각주에 표시를 했다고 했지만, 그의 행위는 일종의 배신으로 여겨졌다.

하이데거는 원래 존재와 시간을 두 권으로 완성할 생각이었으나 제1권 밖에 쓰지 못했다. <존재와 시간>은 미완성작품이었다. 미완성작품이었지만, 이 책은 하이데거에게 당대의 가장 대표적인 철학자라는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이 책에서는 ‘불안’, ‘걱정’, ‘배려’, ‘죽음’ 등과 같이 철학에서 오래 전에 사라진 주제들이 새롭게 등장했다. <존재와 시간>은 독자에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자기의 실존을 의식적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강렬한 요구이자 외침을 담고 있다.

<존재와 시간>은 존재의 물음을 새롭게 문제 삼으며 ‘기초 존재론’이 되고자 한다. ‘기초존재론’의 출발점은 현존재로 파악된 인간에 대한 분석이다. 인간은 나무나 돌과 같이 단순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존재를 문제 삼는 유일한 존재다. 이런 의미에서 하이데거는 인간을 현존재라고 부른다. 그는 인간이라는 현존재를 통해 ‘존재’를 이해하고자 시도한다. 인간은 존재의 일부이며 인간의 자기 이해 속에는 이미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이해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존재방식에 회의를 품으면서 진정한 존재방식을 희구한다. 인간은 그러한 존재를 실현하기 위한 가능성을 본질로 갖고 있다. 자신의 본래적인 존재가능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인간을 그는 ‘실존’이라 부른다. ‘실존’은 존재를 사물의 배후나 바깥에서 찾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래적인 자기실현 속에서 찾는다.

“실존은 스스로를 실현시켜 ‘본래성’의 양태로 있거나 자신의 선택을 남에게 맡겨 ‘비본래성’의 양태로 있다.”

그런데 인간의 자기실현은 인간 현존재의 근본구조와 관련이 있다. 하이데거는 인간 현존재의 근본구조를 ‘세계-내-존재’라고 요약했다. 인간은 세계 속에서 사물들 그리고 다른 인간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세계는 인간과 독립된 객관의 대상이나 관찰의 대상이 아니다. 세계는 인간이 그 안에 들어 가 살고 있는 친숙한 세계이자, 인간이 자신의 의미를 획득하는 의미 연관의 전체이다.

이동희
한나 아렌트
아렌트와의 짧은 사랑


인간은 그러한 세계 속에서 자기실현을 꾀하기도 하며, 적당히 묻혀 살기도 한다. 이 점에서 하이데거는 본래적 그리고 비본래적 존재 방식을 구분한다. 비본래적 존재방식은 하이데거가 중립적인 인간을 뜻하는 ‘das Man’(세인, 世人) 라고 했던 익명의 대중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비본래적 존재방식이란 대중이 행하는 바에 따라 자신을 이해하고, 대중의 평균성과 일상성 속에서 살아감으로써 타인이 자신의 존재를 떠맡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비본래성을 ‘대중으로의 타락’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는 인간은 이러한 비본래적 존재 방식에서 벗어나 자기실현을 위한 ‘본래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본래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죽음에 대한 앞 선 의식을 통해서다. 죽음은 누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 인간은 대중 속으로 숨을 수도 없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홀로다. 그는 자기 자신과 직명하게 된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불안이라는 근본적인 기분을 통해 자신이 죽음에 내던져져 있다는 것을 체험한다고 한다. 불안을 통해 삶이라고 하는 자명한 사실이 흔들리고, 죽음의 가능성과 무가 나타난다. 그러한 불안 속에서 인간은 자신이 죽음을 향한 존재라는 것을 경험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러한 경험 속에서 인간은 진정한 자기 자신과 만나게 되며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하이데거는 죽음에 대한 의식이 우리 자신의 실존을 파악하게 하고 세인, 인습들, 사소한 것에 매달리지 않는 자기 자신만의 삶을 기획하고 결단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는 ‘양심의 부름’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양심은 자신의 고유한 존재 가능성을 깨닫게 하는 내면의 소리이기도 하다.

이동희
하이데거의 단행본 중 짧지만 오늘날까지 많은 영감을 주는 ‘들길’(Feldweg)이 유명하다. 존재의 통찰을 위해 그는 철학의 길에 서 있었다.
‘존재와 시간’ 실존을 묻다


하이데거는 시간성에 의한 현존재의 자기 이해로부터 존재의 물음을 규명하고자 했다.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존재 또는 변하지 않으며 시간에 의존하지도 않는 척도를 지향하는 삶은 그에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와 ‘시간’은 밀접하게 연관을 맺고 있다. 그러나 <존재와 시간>에서는 존재와 시간의 연관이 정확하게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지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을 다음과 같은 물음과 함께 중단했기 때문이다.

“어떤 길이 근원적인 시간에서부터 존재로 인도하는가? 시간 자체가 존재의 지평으로 나타나는가?”

인간의 자기실현을 외치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실존철학을 이론적으로 기초하고 있는 이 작품은 무엇보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장 폴 사르트르는 <존재와 시간>의 영향을 받아 <존재와 무>를 썼다. 사르트르가 행했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강연은 유럽에서 실존주의를 커다랗게 유행시켰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휴머니즘에 관한 서한>에서 자신의 철학은 존재 철학이지 실존주의가 아니라며 강하게 불만을 표시했다. (다음호에 계속)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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