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바다 위 무대에 오르며

[내인생의 첫수업] 노정렬l승인2009.08.1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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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28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한국군의 이라크파병에 반대하는 700여명의 시민들 속에 나도 함께 있었다. 한낮이라 촛불대신 왼손에는 빈 병에 파를 꽂고 있었고, 오른손에는 ‘내가 아메리카를 발견하지만 않았어도-콜럼버스’라 씌여진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이라크에 파병을 하려거든 음료수나 파같은 식량을 제공하라는 의미였고, 독재자 사담 후세인 축출과 대량살상무기 파괴를 명분으로 이른바 ‘선제적’ 공격을 감행한 미국의 침략적 호전성에 신대륙 발견자 콜럼버스의 이름을 빌어 반대를 표한 것이다.
 

2002년 대선에서 노란풍선의 선거혁명으로 당선된 참여정부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파병이라는 형태로 참여하는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던 나는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참여정부가 ‘전쟁참여 정부’의 굴레를 뒤집어 쓰는 순간이었다. 숱한 역경과 고난 속에 핀 대선승리의 꽃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나는, 명분은 없지만 한미동맹이라는 국익을 위해 파병을 할 수 밖에 없다는 노 대통령의 국회연설을 보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배신당했다. 속았다’의 눈물이 아니었다. ‘반미면 어떻습니까’라고 했던 ‘노통’이 한 국가의 원수로서 명분과 국익사이에서 고뇌했을 그 실존적 아픔이 떠올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대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시사개그를 하는 방송인으로서 파병반대의 깃발을 들고 서 있어야만 하는 그 상황이 너무도 서글퍼서 흘린 눈물이었다.

결국 그렇게 국군이 이라크에 파병이 됐고, 그 여파로 고 김선일 님의 희생이 있었고, 미국은 9.11테러와의 연관성도 밝히지 못하고, 대량살상무기도 찾지 못한 채 수십만명의 사상자를 내고 이제는 이라크에서 발을 빼고 있다. 과연 이라크파병으로 우리가 얻은 국익은 무엇이었을까?

이때부터 나는 참여정부와 애증의 관계를 이어갔다. 노동자와 농민의 아픔을 더 잘 헤아리길 바랐던 나! 주류기득권세력이 온존하는 상황에서 개혁과 진보의 속도와 강도를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했던 참여정부! 이해는 했으나 박수를 칠 수는 없었다. 나는 나대로 나의 길을 가야만 했다. 임기 말 한미FTA타결에 이르기까지 소위 ‘좌측 깜빡이 넣고 우회전’하는 참여정부에 나는 풍자와 개그로, 때로 직설화법으로 제동을 걸 수 밖에 없었다.(물론 지금 MB정부의 ‘저탄소녹생성장 한다면서 4대강을 죽이는 삽질’과 참여정부의 개혁 진정성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2003년 3월 국회의사당 앞에서 사회인으로서의 내 인생 첫 수업이 시작된 것이다.

“섭외? 돈? 양심에 맡기자”

대학에서 풍물패와 연극반 동아리활동으로 문예운동을 한 것은 아마추어였다. 학생 신분으로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일생을 살아갈 지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그맨으로 방송인으로 공적인 사안에 대해 내 입장을 밝힌다는 것은 나의 이름과 인격과 삶의 일부를 건 프로로서의 선택이었다.

나름 시사풍자개그를 하겠다는 내가 촛불을 들 자리에서 들지 않고 먼 발치에서 관망한다는 건 비겁함으로 다가 왔다. 비굴함으로 다가 왔다.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자문하곤 했다. ‘뭐가 두려워서 망설이고 있는 거야. 섭외? 돈? 편파성시비?’ 때로 그러한 실존적 고민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지만 그 때마다 나를 지탱하고 일으켜 세우고 뚜벅뚜벅 걷게 하는 건 양심의 소리였다. ‘그래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다 옳을 수는 없다. 그래도 사익의 유불리를 가지고 내면에서 들려오는 양심을 저버리지는 말자!’

이 원칙 하나를 부여잡고 지금까지 사회적 발언과 시사개그를 해 왔다. 공중파 3사에서 하기 어려운 시사개그가 시민광장에서 상연되었다.

2004년 4월에는 탄핵무효의 촛불을 들었다. 탄핵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국해(國害)의원들의 의회쿠데타였다. 정족수만을 믿고 벌인 폭거였다. 총선을 앞두고 국민이 시비를 판단할 일을, 흠결 많은 하자투성이들이 벌인 저질 난장판이었다.

몇 가지 티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차떼기당, 지역감정당들이 나무랄 계제가 아니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었다. 그래서 광장에 모인 촛불들은 소리 높여 웅변했다. ‘너흰 아니야!’라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시민들의 그 형형한 눈빛

그 해 4월 촛불의 바다에서 네 번 무대에 올랐다. 두 번의 사회를 보고 두 번의 자유발언을 했다. 6만명이 넘는 촛불의 함성은 그 어떤 책과 자료와 이론에서 배웠던 것보다 더 큰 울림으로 내게 민주주의를 가르쳐 주었다. 민주주의를 그렇게 현장학습으로 터득했다. 촛불 든 시민들의 눈빛은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타른 목마름으로 진정한 민주주의를 갈망하고 있었다. 진실했고 절실했다. 촛불은 진실을 밝히는 나와 우리의 양심의 등대였다. 진실은 어둠을 물리치고, 달지 말아야 할 금배지를 잘 못 단 협잡꾼, 모리배들은 4월 총선에서 뒤안길로 사라졌다.

2004년 12월에는 국가보안법철폐의 촛불을 들었다. 탄핵정국의 여파로 열린 우리당이 원내 제1 당이 됐지만 당내 화합과 리더십의 부족,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수구신문과 한나라당의 발목잡기로 개혁의 발걸음은 순탄치 않았다. 그래서 시민들은 또 양심의 횃불을 들었다. 반백년동안 이 땅의 양심세력의 입에 재갈을 물려 왔던 국가보안법을 이제 보내드리자는 것이었다. 국보법을 철폐하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자는 촛불들의 외침은 그 차디찬 아스팔트를 녹이는 열정을 안고 있었다. 국보법의 조종(弔鐘)을 선언하면서 촛불들은 진정한 해방과 자유로움을 만끽했다.(그러나! 수구기득권은 국보법을 온존시켰고 2009년 여름 현재 여전히 건재하다!)

2008년 봄에는 대학등록금 반값공약을 이행하라는 호소의 마이크를 잡았다. 1년에 1천만원이 넘는 등록금으로 국민들의 고통이 심각한데도 정부야당이 외면하고 있는 데 대한 항의였다. 선거 때 그토록 가능하고 꼭 이행하겠다더니 당선되고 나서는 나 몰라라하는 무책임한 정치행태의 전형이었다. 여전히 묵묵부답이어서 올 해 5월에는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까지 하게 되었다. ‘청년실신’(청년들 실업자 되기 전에 신불자되게 생겼다)라는 피켓을 들고 경고했다. 4대강 살리는데 23조씩이나 쓰지 말고 반값등록금, 비정규직문제, 무상급식, 청년실업문제 해결에 쓰라고! 단군이래 최대 삽질 하지 말고 말 그대로 ‘실용적’으로 살라고!

지난해 5월에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 철회의 촛불사회를 맡았다. 수만명의 촛불들은 ‘미친소 너나 먹어’라며 MB아웃을 외쳤다. 검역주권을 뒤로하고 ‘가는 정권’ 조지 부시에게 뭐가 그리 급하다고 광우병 위험있는 소고기를 통째로 사들여 오려는 지 국민들이 ‘노’라고 외친 것이다. 촛불에 크게 데였는지 MB는 두 번이나 사과를 하면서도 1년이 지난 현재 유모차 부대를 소환하고 PD수첩을 갈갈이 찢으려 하고 있다.(MB도 이른바 ‘4대악법’ 개정에 반대하는 촛불을 들었었는데 촛농이 뜨거운 줄 그 때 알았나!)

“평생 수업 갈지 모르겠다”

정부여당에서 촛불이 선동됐다느니, 배후세력이 있다느니 하는 말을 하는데, 맞는 말이다. 촛불은 선동(善動)이다. 청와대와 금배지들이 못하는 일들을 대신해 자발적으로 나서는 ‘굿 액션’이다. 옛날 정치꾼들이 전세버스로 일당주고 동원했던 허수아비들이 아닌 살아있는 양심들이다. 진짜 선량한 선량들이다. 현장에 와 본 사람들은 안다. 촛불 한번 안들어 봤으면 얘기를 하지 말라! 굳이 배후가 있다면 싫다는 것 억지로 들여와서 나도 모르게 먹이게 하려던 미국과 ‘어메리카 프렌들리’한 정부가 배후세력이다. 가만히 공부하고 연애하고 살림하고 직장다니는 사람들을 촛불 들게 하고 거리로 내몰았으니 말이다. 자신들이 배후인줄 모르고 배후를 얘기하다니! 촛불은 충고한다. ‘너 자신을 알라.’

그리고, 노통의 서거로 내 인생의 쓰라린 수업은 계속되고 있다. 평생 갈 지도 모르겠다!


노정렬 방송인

노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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