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길은 사유하는 자의 발걸음에 항상 가까이 있다-하이데거(3)

철학여행까페[77]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9.08.17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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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경에 하이데거는 사상적 전회를 한다. 그의 전회는 <진리의 본질에 대해서>를 기점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존재와 시간>에서 존재의 이해를 현존재의 자기이해로부터 출발해 이해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접근 방식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전회를 한다. 그는 전회 이후에 존재 자체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존재를 이해하고자 한다. 그는 존재가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고 감추는가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존재를 통해 인간과 유한한 전체 현실을 고찰하고자 한다.

“존재가 나타나는지 어떤지, 존재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어떻게 신과 신들, 역사와 자연이 존재의 빛으로 들어가며 어떻게 현존하고 부재하는 지는 인간이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자의 도래는 존재가 역사적으로 보내진 것에 기인한다.”

이동희
하이데거
존재와 존재자의 구분


그렇다면 존재란 무엇인가? 그는 존재와 존재자(존재하는 것)을 구분한다. 존재를 존재자처럼 대상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존재자는 개별적 존재자가 아니라 모든 존재자의 지탱하는 근거, 모든 것을 지배하는 존재의 의미이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빛에 비유한다.

“존재 자체는 빛인 반면, 그 빛으로 현존재를 나타나게 하는 것은 ‘존재자’이다.”

존재의 빛이 없으면 당연히 존재자는 드러날 수가 없다. 하이데거는 존재는 각 시대마다 다르게 드러난다고 한다. 존재자가 나타나는 방식은 존재의 역사가 진행되면서 변모된다. 존재가 어떻게 빛을 비추느냐에 따라 존재자의 진리가 드러나며 또한 가려지기도 한다.

“이러한 빛만이 우리 인간에게 존재자로 가는 통로를 선사하며 보증한다… 이러한 빛의 덕분으로 존재자는 어느 정도 변화하더라도 은폐되어 있지는 않다.”

존재는 각각의 역사적 시기마다 존재자와 인간을 상이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그리스인들이나 중세인들은 존재를 현대인과 다른 어떤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전회 이후 하이데거의 작업은 시대마다 드러난 존재의 역사를 파악하는 존재사 탐구가 주된 작업이 된다.

하이데거는 존재자의 진리인 존재를 ‘비은폐성’으로 파악한다. 하이데거는 존재로 가는 길은 언어를 매개로 열린다고 한다.

그는 <인도주의에 관한 서한>에서 언어란 “존재로 하여금 스스로 빛을 발하면서 말을 하도록 하는 매개체”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그는 언어를 이렇게 정의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하이데거는 현대를 ‘존재 망각’의 시대라고 한다. 그는 횔덜린의 시구를 인용해 ‘현대’를 ‘신이 멀리 떠나 버린’, ‘세계의 밤’이라고 비유한다. 여기서 신은 세계의 의미를 밝혀 주던 근거이자 빛이었으나 이제 그러한 신이 떠나자 세계는 캄캄해져 버린 것이다.

이 말을 좀 더 쉽게 설명해 보자. 소중한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죽었을 때, 우리는 삶의 의미를 상실할 것이고, 환한 대낮일지라도 세상이 캄캄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것은 그러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우리의 존재의 의미를 밝혀 주고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세계의 밤’의 시대에 시인에 주목한다. 시인은 촉수가 예민한 곤충처럼 어둠 속에서 신의 흔적을 더듬으며 찾아간다. 그렇게 시인은 의미를 발견해 우리에게 시로 전달해 준다.

“언어에서 존재의 현존은 무엇보다도 ‘시’의 근원적인 말함에서 드러난다.”

이동희
하이데거의 70회 생일.

시인이 존재의 부름에 귀를 기울여 그것을 시라는 언어를 통해 나타낸다면, 철학자는 그러한 시를 해석하고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는 자이다. 실제로 하이데거는 횔덜린의 시의 해석을 통해 그러한 작업을 했다.

하이데거는 현대는 존재를 망각하고, 존재 이해방식을 ‘기술’로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과 모든 존재자들은 기술의 지배 하에 놓여 있다. 인간과 모든 존재자들은 기술에 의해 닦달 당하며 생산과 사용을 위한 에너지 자원으로 전락된다. 그는 <기술과 전향>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기술에 지배당한다

“우리는 어느 한 지역을 석탄과 광석을 캐내기 위해 도발적으로 굴착한다. 지구는 이제 한낱 채석장으로, 대지는 한낱 저장고로서 탈은폐될 뿐이다. 농부들이 예전에 경작하던 밭은 그렇지 않았다. 그때의 경작은 키우고 돌보는 것이었다. 농부의 일이란 농토에 무엇을 내놓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씨앗을 뿌려 싹이 돋아나는 것을 그 생장력에 내맡기고 그것이 잘 자라도록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농토 경작은 자연을 닦아 세우며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경작 방법 속으로 흡수되어 버렸다.”

하이데거는 기술 지배의 시대에서 기술의 본질을 인식하고, 인간의 위험을 직시했다. 그는 존재와의 해후를 ‘섬광처럼 번뜩이는 사건’이라 말한다. 그는 인간이 일상적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 참다운 존재의 소리 들을 태세가 되어 있다면 이러한 존재 망각의 시대는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이데거의 후기 사상은 신비적이기도 하고 또한 모호한 측면도 많다. 포퍼는 하이데거처럼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여 명료한 이해와 분명한 반박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부정직한 짓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존재의 이해’를 통해 우리 시대의 본질과 우리가 잃어 버렸던 원래의 존재 의미를 일깨워 주고자 했다.

하이데거는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6년 강의를 금지 당했다. 그러나 연구는 계속할 수 있게 했다. 1947년 프랑스 군정당국은 하이데거와 나치의 관계를 ‘복종없는 동행자’라고 결론지었다.

이동희
하이데거의 장례행렬

하이데거는 토트나우베르크의 산장에서 보내며 계속 철학적 작업을 진행했다. 1951년 하이데거는 바덴 주 당국에 의해 복권되었다. 그는 수많은 강의와 강연을 했고, 다량의 책을 썼다. 그가 죽기 직전에 시작된 전집 간행은 100권 이상이 될 것으로 예고되었다.

하이데거는 죽기 직전 슈피겔과의 대화에서 나치와의 관계가 잘못된 것이라고 후회했다. 그리고 스승 후설을 돕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용서를 구했다고 밝혔다. 사상으로서는 거인이었지만 하이데거 역시 인간으로서 흠결 많고 약한 존재였다.

1976년 5월 하이데거는 프라이부르크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말은 속삭이듯 내뱉은 ‘감사한다’라는 말이었다.

하이데거는 ‘들길’을 통해 자신의 사유를 어떻게 해왔는지 시적인 문제로 밝힌 적으로 있다. 그것은 겸허하게 들길의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마지막 말은 ‘감사한다’

“들길은 호프가르텐 성문에서 시작하여 엔리트쪽으로 뻗어 있다. 성의 정원에는 고령의 보리수가 서 있다. 들길은 부활절 즈음에는 피어나는 싹들과 깨어나는 목장 사이에서 밝게 빛나고, 성탄일 즈음에는 눈보라 속에서 가장 가까운 언덕 뒤로 사라진다.

이동희
호프가르텐 성 정원에 있는 가로수.

그러나 보리수는 언제나 성벽 너머로 들길을 바라본다. 들길에는 십자가가 서 있고 들길은 이 십자가에서 숲 쪽으로 구부러진다. 들길은 숲자락을 지나면서 거기 서 있는 키 큰 떡갈나무에게 인사를 한다. 떡갈나무 밑에는 거칠게 만든 긴 의자가 있다.

그 의자 위에는 가끔 위대한 사상가들의 이런 혹은 저런 글이 놓여 있었고, 젊은 시절 나는 곤혹스러워하면서 그들에 담긴 수수께끼를 풀려고 애썼다. 수수께끼들이 몰려들어 어떠한 출구도 보이지 않을 때 들길이 도와주었다. 들길이 넓게 펼쳐진 거친 들판을 통과하는 구불구불한 좁은 길 위에서 조용히 발길을 인도했기 때문이다.

글을 읽든 홀로 사색을 하든 사유하는 자는 항상 들판을 통과하면서 이어지는 좁은 길 위를 걸었다. 아침 일찍 풀을 베러가는 농부의 발걸음에 가까이 있었던 것처럼, 들길은 사유하는 자의 발걸음에 항상 가까이 있었다.” (하이데거 전집 13, 사유의 경험으로부터, 박찬국 번역)

<하이데거 편 끝>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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