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다르게 각인된다

[이지상의 사람이사는 마을] 이지상l승인2009.08.1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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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 4가에 있는 광장시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시장입니다. 180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1905년에 한성부에 공식 등록되었다고 하니 그 역사가 100년은 훌쩍 넘었습니다. 두세평 정도 되는 작은 음식점들이 길게 늘어선 먹자골목에는 칸칸이 안주거리로 가득해서 술잔이 한 순배씩 돌 때마다 지글대는 안주 굽는 냄새와 왁자지껄한 얘기들, 거기에다 막걸리 한잔 뒤에 나오는 “크으~ 좋다”같은 추임새까지 합하면 시장은 너 나 없이 평온한 흥을 발산하는 광장이 되곤 합니다.

그곳에는 연주경력만 50년이 넘은 베테랑 아코디언 연주자 박 노인이 계십니다. 취기 적당한 손님들 옆에서 흘러간 옛 가요를 연주하면 흥에 배기지 못한 취객들은 일어나서 춤을 추거나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운 좋게 시장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까지 어우러지는 날이면 바흐도 작곡하지 못한 ‘대한민국 민중 칸타타’를 여기서 듣는 듯 한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만들어진지 50~60년도 훨씬 지난 옛 가요를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따라 부르며 회한에 젖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속에 대못처럼 박힌 노래 하나가 사람의 기억을 얼마나 풍성하게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에”로 시작하는 비 내리는 고모령에서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 마는”같은 애수의 소야곡. “가~랑잎이 흩날리는 전선의 달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등등 끊이지 않고 애간장 녹이는 박 노인의 아코디언에 좌중은 부딪히는 술잔 소리로 화답하고, 서로가 그렇게 어우러져 광장시장의 백열등 불빛은 시들 줄 모릅니다.

혈서지원과 혈청지원가

박 노인이 연주하는 레퍼토리의 반쯤은 한국 대중음악의 뿌리이자 기둥으로 불리웠던 박시춘 선생(1913~1996)의 작품입니다. 위에 소개한 노래 외에도 ‘이별의 부산정거장’, ‘신라의 달밤’, ‘가거라 삼팔선’ 등 무려 3천여 곡을 발표했으니 40~50년대 한국 대중음악 비중의 반쯤은 그의 것입니다.

1961년 한국 연예협회 창립 때는 초대 이사장을 지냈고, 1982년엔 대중가요 작곡가로는 최초로 문화훈장 보관장을 서훈받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후 나름 한 가닥씩 하셨다는 분들 대부분이 그렇듯 박시춘 선생도 친일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태평양전쟁시기에는 가장 많은 일제 부역 군국가요를 작곡하기도 했는데 ‘아들의 혈서’, ‘목단강 편지’, ‘결사대의 안해(아내)’ 등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혈서지원’이라는 노래입니다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일장기 그려놓고 성수만세 부르고/한 글자 쓰는 사연 두 글자 쓰는 사연/나랏님의 병정 되기 소원입니다. (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목적가요로써 갖추어야할 선동적 파토스(pathos)와 형상성이 두드러지는 이 곡은 일제가 조선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해군 지원병을 모집하기 위해 제작한 노래로 1943년에 작곡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곡은 2006년 5월 국가보훈처가 제작한 군가 모음곡집 ‘Remember-U’에 ‘혈청지원가’라는 제목으로 수록 되었는데, 이때는 가사가 일장기는 태극기로, 일본 천황을 상징했던 나랏님의 병정은 대한민국 국군으로 바뀌게 됩니다.

일제 강점기 만주에서는 일제경찰이 그림자 밟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던 의열단 단장이자 광복군 군무부장 약산 김원봉이 해방 후 서울의 그의 집 화장실에서 의복도 추스르지 못한 채 친일고문 경관 출신인 수도경찰청 수사과장 노덕술에게 끌려갔던 슬픈 역사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애교로 봐야할 수준이지만, 지금은 인기그룹이 된 ‘V.O.S’가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이 노래를 불렀던 모습을 떠올리면 정리되지 못한 과거사의 질곡은 다른 형태의 잘못된 미래를 필연적으로 잉태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합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당시 가장 많이 불린 군가 순으로 선정했다니, 국가 보훈처도 딱히 잘못했다고 보기는 어렵겠습니다. 그러나 일제시대 ‘천황과 황국신민’이란 단어를 신줏단지처럼 모시며 온갖 영화를 누렸던 이들이 해방 후 ‘반공과 친미’로 용어를 바꾸어 역사의 주인 노릇했던 우리의 기형적 현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적 증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일장기 앞에서, 태극기 앞에서

미당 서정주 시인의 10주기 기일에 맞추어 생전에 기거했던 봉산산방을 약 12억원의 예산을 들여 현대식 복합 문화공간으로 조성 한다고 합니다. 미당은 생전에 이미 대한민국 사람이면 모를 리가 없는 시를 썼고, 그의 작품이 빠지면 교과서가 아니요 그가 심사하지 않으면 문학상이 아니고, 자유문학상, 대한민국 예술원상, 금관 문화훈장 등은 젊어서부터 두루 섭렵했으니 해방이후 문단영향력의 반쯤은 그의 것이라고 해도 그리 틀리지 않습니다.

미당의 친일 논란에 관한 얘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정작 그가 어떤 친일 작품을 썼는지에 대해선 익숙하지 못합니다. 그의 작품 ‘오장 마쓰이 송가’는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박용우, 이보영 주연)의 동방의 빛 환송회 장면에서 들을 수 있지만 ‘일장기 앞에서’같은 시는 친일작품 11편이 함께 전시되어 있는 미당시문학관에서도 볼 수 없습니다.

이날은 대성전기념일도 축제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받은 깃대에 국기를 한번 꽂아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나는 오히려 땀까지 흘려가며 벽장 속에서 국기를 꺼내어 그 깃대에 매었다/탄탄한 깃대에 비해서는 벌써 장만한지 해가 겹친 국기의 깃폭은 낡아 보였다/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왜 뒷집에서 깃대를 주려고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나는 거기에 맞추어야 할 새로운 깃폭을 준비할 생각은 하지 못하였던 것인가/나는 깃대에 꽂힌 국기를 방 아랫목에 세워두고 한참동안 합장을 하고 있었다. (일장기 앞에서 전문)

가끔 이시의 제목을 ‘태극기 앞에서’ 로 바꾸어 낭송해 볼 때가 있습니다. ‘이날은 광복절도 개천절도 아니었다. 나는 깃대에 꽂힌 태극기를 방 아랫목에…’ 같은 식입니다. 놀랍게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비장한 한편의 애국시가 탄생합니다. 해방 후 이승만의 전기를 지었고, 5공 때는 대통령 탄신 축시까지 지어 바친 그의 정치적 행보를 감안한다면 혈서지원의 일장기가 혈청지원가의 태극기로 바뀐 것처럼 일장기 앞에서가 태극기 앞에서로 바뀌지 않은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할런지도 모를 일입니다.

거세 되지 않은 반역의 역사

우리는 일본의 괴뢰정부였던 만주국 출신인사를 두 분씩이나 대통령으로 모셨고, 그 중 한분은 그의 따님을 통해 여전히 막강한 정치력을 행사하고 있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임명되는 관료들의 옵션이 최소한 위장전입에 부동산 투기혐의인 것처럼 해방 후 적어도 유신 때까지 관료의 조건에 친일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친일 행위자 재산 환수위가 총 106명의 일제 부역자 재산 1천600억원 상당을 국고에 환수한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환수위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뭔가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환수의 규모가 아직 적은데다 여전히 진행 중인 반역사적 작태에 경종을 울리는 소식을 1년에 딱 한번 광복절에 즈음에서야 들을 수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광장시장에 앉아 박 노인의 아코디언 연주를 신기해하며 지나간 옛 노래의 정취에 빠져들 즈음 옆 좌석에 있는 백발성성하신 노인이 술잔을 건넵니다. 그분은 나라걱정이 태산입니다. “요즘 나라가 개판이라 말이야, 우리 젊은이들이 나서서 나라를 바로 잡아줘야 해” 간곡한 듯 말씀하시지만 눈빛에 서린 핏발은 그분의 취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어떻게 김일성으로부터 지켜낸 자유인데…”라는 말로 당부를 갈음하시는 그 노인의 손에는 조선일보가 들려져 있습니다.

잘못된 역사에 기생하며 세상을 쥐락펴락 했던 무리들이 없었다면 저 연세 지긋하신 노인은 굳이 지금껏 결기 어린 눈빛을 간직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거세되지 않은 반역의 역사는 언젠가 당신의 목덜미에서 복수의 칼날을 겨눌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명박 정부 들어 이 말의 실제를 목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지상 가수·성공회대 외래교수

이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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