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집안에 있던 이유

강상헌의 한자 이야기[3]-집 가(家) 강상헌l승인2009.08.17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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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꿀꿀거리는 곳이 ‘집’이라고? 한자의 집 가(家)자를 보면 그렇다. ‘집(가옥) 아래 돼지’가 글자 모양으로 본 집(가정)의 뜻이다. 옛 사람들, 돼지를 애완용으로 집 안에서 키웠을까나? 집과 돼지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한문학자 진태하 교수가 집을 뜻하는 옛 그림문자를 본떠 직접 그린 가(家)자
한자의 원래 모양과 그것이 상징하는 바를 좇다 보면 절로 무릎을 치게 된다. 피카소 추상화(抽象畵) 작품의 상징보다 더 절묘(絶妙)한 묘사력(描寫力)을 한자를 그려 만든 옛 사람들은 구사했던 것이다. 하긴 아프리카 토속미술과 동양문자 한자에 대한 원초적(原初的) 시각(時角)을 가지지 못했더라면 피카소도 별 힘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자전(字典)은 ‘집[(면)]에서 돼지[豕(시)]를 기른다는 뜻’에서 집을 가리키는 것이 됐다고 풀었다. 그러나 이 정도의 풀이로는 만족스럽지 않다. 이 글자의 원형인 옛날 그림문자에도 집 안에 돼지가 그려져 있다. 그러나 오랜 역사 속에서도 이 글자 형성(形成)의 뜻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내로라하는 중국 문자학자들도 풀지 못한 ‘숙제 중의 숙제’였다는 것이다.

요즘엔 ‘흑돼지’라고 살짝 돌려 이름을 부르는 제주도의 똥돼지를 아시는지? 지금은 민속관광시설에서나마 그 형태를 볼 수 있고, 불과 30~50년 전까지만 해도 일상(日常)의 생활 모습에서도 가까운 ‘동반자’였던 똥돼지를 말하는 것이다. 대변(大便) 누는 틀 바로 아래가 돼지가 사는 곳이었다. 똥을 먹고 산다해서 붙여진 이름이었고, 이런 형태는 남해안 지방에서도 비교적 흔했다. 중국 문자학계에 진태하 교수가 던진 집 가(家)의 뜻은 나름 충격이었을 것이다.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세상 건너는 두 번 째 중요 단계인 ‘집[家]’의 본원(本源)에 관한 명쾌한 설명이 한국의 학자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대륙의 옛 사람들에게, 가족끼리 모여 사는 집의 가장 큰 위협 요소는 뱀이었다. 그 무서운 뱀을 보자마자 집어 먹어버리는, 뱀의 치명적인 천적(天敵) 돼지를 집 안에서 키우는 동이족(東夷族)만의 풍습을 힌트로 삼은 해법(解法)이었다. 그 종족 말고는 이런 생활양식이 없었다는 것이다. 뱀의 위협에서 비로소 벗어난 옛 사람들에게 ‘집 안의 돼지’는 집의 상징(象徵)이었다.

이 글자가 동이족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주장의 근거(根據)다. 진태하 교수는 저서에서 집 가(家)를 이렇게 풀었다. ‘뱀이 많던 때, 뱀만 보면 잡아먹는 돼지를 집안에 기르면 편안히 살 수 있으므로 집안에 (사람이 아닌) 돼지를 그려 [집]의 뜻을 나타냄.’ 이제 집의 뜻, 한자의 상징성이 머리에 집히시는지? 상형문자(象形文字)인 한자의 출발점이 ‘그림’이라고 하여, 현재의 한자 모양으로 그 뜻을 온전히 상상해 보겠다는 것은 무리다. 그 그림과 지금의 한자 사이에는 역사의 두께 만큼 모양의 변화가 있다.

그러나 이런 상징성이나 변천 등과 함께 글자의 형성, 곧 조자(造字)의 원칙 등을 다소간이라도 익히면 한자는 절로 우리 뇌리(腦裏)에 그림으로 비쳐진다. ‘뜻을 모은 글자’라는 뜻으로 회의(會意)문자라고 한다. (면)과 豕(시)를 모은 것이다. 해[일(日)]와 달[월(月)]을 모아 밝다는 뜻의 명(明)자를 이룬 것과 같은 원리다. 이때의 ‘그림’은 구상(具象)이 아닌 고도의 추상 회화(繪畵)다. 추상화를 즐기는 데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한자공부를 추리소설 읽기로 비유하는 이도 있다. 외우지 않고 가슴으로 봐야 한자는 제대로 보인다. 지금 우리 학생들, 한자를 거꾸로 배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토막해설-가(家)

부수(部首)자 갓머리[(면)] 아래에 돼지[豕(시)]를 두어 집, 가족, 문중(門中) 등의 뜻으로 쓰이는 글자, 뜻이 확대되어 ‘전문가’ ‘학파(學派)’의 의미로도 쓰인다. 여기서 ‘갓머리’라는 말은 오래 전 서당 훈장(訓長)들이 꼬마들 알기 쉬우라고 만든 속칭이 굳어진 것으로 ‘집 면’이 바른 훈과 음이다. 우(宇), 택(宅), 궁(宮), 실(室) 등이 가(家)와 같은 부수를 쓰는 비슷한 뜻의 글자들. 당(堂), 옥(屋), 호(戶) 등도 ‘집’의 뜻이다.


강상헌 논설주간·한자교육원 원장

강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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