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와 역사의 심판

[편집인 레터] 김주언l승인2009.08.31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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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좌파정권은 지난 10년간 입법 사법 행정부의 요직을 반미친북세력으로 모조리 갈아치웠음. 이 여세를 몰아 대한민국의 인민공화국화 작업을 가속화하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를 강요해 왔음. 이를 통해 6.15 선언의 마무리인 고려연방제 통일이 목전에 당도했음.’ 경찰이 초중학교에 배포키로 한 안보 홍보만화의 제작을 위해 업체에 보낸 ‘안보 홍보만화 제안 요청서’의 일부이다.

#2. 행정안전부 중앙공무원교육원은 연수중인 행정고시 수습사무관들을 포항의 해병대 훈련 캠프에 입소시켰다. 신임 공무원의 해병대 입소는 지난 1967년 행정관 훈련과정 개설 이후 처음이다. 사무관들은 화생방 각개전투 유격훈련 등과 북한 문제 등에 대한 안보교육을 받는다.

#3. 기무사의 사찰대상이었던 엄 모 씨는 “소름과 경악과 공포를 느낀다”며 “아무 상관없는 집사람까지 사찰해 집 사람이 너무 무서워한다. 이명박 정권은 가정파괴범인가”라고 비판했다. 민주노동당이 공개한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동영상을 보면, 엄 씨가 작업실 앞에서 쓰레기를 버리고 담배 피우는 모습과 그의 부인이 약국에서 일을 보고, 출근하면서 약국 문을 여는 장면도 찍혀 있다.

군사독재시절로 회귀?

이명박 정부가 과거 군사독재시절로 회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사례들이다. 이명박 정부는 민주화 이후 사라졌던 국정원과 기무사 등 2대 정보기관을 이용해 민간인 사찰을 재개했다. 또한 교육현장과 공직사회에 ‘반공 이데올로기’와 ‘획일적 군사문화’를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불과 20년 전 벌어졌던 독재정권의 음험한 인권침해 행태가 다시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권력기관의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은 간헐적으로 알려져 왔다. 독재정권 시절 ‘나는 새도 떨어 뜨린다’던 무소불위의 국정원은 한반도 대운하반대 교수모임 사찰, BBK 사건 담당 재판부 압력, 시민사회단체 후원기업 자료요구 등 광범위하게 민간인 사찰을 해왔다. 여기에 군 기무사가 민간인에 대한 불법적인 감시와 사찰을 해왔다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집회 시위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는 데 이어 구시대의 망령인 정보기관에 의한 정치사찰이 부활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와 다를 바 없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공무원들의 군부대 입소훈련은 공무원들을 ‘사병’(私兵)으로 전락시켜 공직사회에 ‘시키는 대로 하라’는 군사문화를 심으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안보 홍보 만화’를 배포하는 것은 박정희 정권이 ‘이승복 동상’을 교정에 세워 ‘반공정신’을 주입시켰던 획일적 교육방식을 그대로 빼닮았다.

이명박 정부는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10년 동안 이룩해 놓은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켰다. ‘미네르바’ 구속과 ‘PD수첩’ 기소로 대표되는 표현의 자유 침해, 정부가 자본의 편에 서서 ‘공권력에 의한 살인’을 저지른 용산 참사, 쌍용자동차 농성 노동자들의 과잉진압, 법으로 보장된 1인 시위마저 탄압하는 집회 및 시위의 자유 침해, ‘독립적 국가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의 강제적 축소 개편이 상징하는 인권 후퇴 등 열거하기도 힘들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가 이룩해 놓은 절차적 민주주의는 확고한 제도로 정착됐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참여정부 시절 학자들은 ‘87년 체제’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해 논란을 벌였다. 그러나 ‘87년 체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파시즘 체제’ 논란으로 회귀했다. 리영희 선생이 인권연대 강연에서 “지금은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 파시즘 시대 초기”라고 단정한 뒤 이명박 정부를 둘러싼 파시즘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학문적 논란을 떠나 이명박 정부가 독재시절로 역주행하고 있다는 데 대해 많은 사람들은 동의한다. 그러나 정작 이명박 정부는 많은 독재자들이 그러했듯이 ‘독재’라는 말을 극도로 싫어한다. 행정안전부가 “50년 동안 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가 위태로워 매우 걱정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며 이명박 정부를 성토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연설을 담은 동영상을 국회 분향소에서 상영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한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많은 시민들이 동의하고 있다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2009년 1월 16일)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2009년 1월 17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후 공개된 일기에서 이렇게 썼다. 이명박 대통령이 독재자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기원한다.


김주언 편집인

김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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