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고난의 길 위에 있다”

[내 인생의 첫 수업] 박원순l승인2009.08.3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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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면-A라는 친구에게 돈을 빌리려고 전화를 걸다.

박 : 아, 요즘 참여연대라는 단체에서 내가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데, 내일 모레가 월급날인데 월급을 못줘서 말이야.
A : 아니 무슨 단체라고?
박 : 그… 시민단체야. 경실련 하고 비슷한 데야.
A : 얼마나 필요한데?
박 : 한 몇 백만 원만 있으면 되는데
A : 요새 나도 어려워서 말이야. 돕고는 싶은데
박 : 알았어. 또 전화할 게

1994년 참여연대가 만들어진 이후 초창기, 이 때 만 해도 참여연대라는 이름은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월급날은 다가오는데, 사무실 통장에는 돈이 별로 없다. 그냥 월급날을 넘길 판이다.

이리 저리 전화를 돌려본다. 전화 신호음이 몇 번 가기 전에 용기가 나지 않아 스스로 끊어버린다. 의외로 신호음이 한번밖에 안 갔는데 상대방이 받아버렸다. 안부만 묻다가 차마 돈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한 채 전화를 끊는다.

용케 전화를 받아 그렇게 돈 이야기까지 하는데 만 6개월은 더 걸렸다. 그나마 저렇게 퇴짜를 당하기 일쑤였다. 세상인심을 다 알만하였다. 나는 많이들 빌려주고 그랬는데….

#제2장면-B라는 교수님께 전화를 걸다.

박 : 교수님, 이번에 책 내셨잖아요. 잘 팔리나요?
B : 요즘 무슨 책이라도 어디 잘 나가는 법이 있나? 안 팔려.
박 : 교수님, 그 책 가지고 출판기념회 하면 어때요? 그 수익금은 참여연대에 기부한다고 하시구요.
B : 아니, 교수가 책 내는 것은 밥 먹는 것 하고 꼭 같은 것인데, 무슨 출판기념회를 다 한단 말인가?
박 : 교수님, 아니 그게 교수님 위해서 하는가요? 참여연대를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하시는 건데 사람들이, 제자들이 다 이해하지 않겠어요.
B : 알았네. 정 그러면 그렇게 한번 해 보지.

빠듯한 살림을 꾸려나가느라고 안 해 본 일이 없던 시기였다. 교수님을 팔아 출판기념회를 열어 간단한 다과 차려놓고 한 3만원씩 받으면 1~2천만원씩 남겼다. 심지어 출판기념회에 오지도 않는 제자들에게도 거의 강매하다시피 하였다. 몇 분 교수님이 이런 억지 행사에 그래도 응해주었다.

사실 혈액형이 A형인 나는 누구 앞에 나서는 것이 몹시 두려웠던 사람이었다. 더구나 누구에게 돈 부탁하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싫었다. 어쩌자고 사무처장이라는 직책을 맡아서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월급 못 주어 자살하였다는 중소기업 사장의 심정이었다. 비굴하고 좌절스런 세월이 오래 지속되었다.

당시 참여연대 사무실은 용산역 앞에 있었다. 쥐들이 많아 아침에 출근하면 책상 위에 쥐똥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늘 몸이 가려웠다. 책상이 모자라 외출하고 돌아오면 다른 사람이 자기 책상에 앉아 있곤 하였다.

사정이 이러하니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일일호프를 하느라고 어느 맥주회사에 맥주 얻어오던 일, 서화전을 열어 전국의 친지들에게 강매하던 일, 명사 캐리커쳐전을 벌여 1인당 30만원씩 받아내던 일이 그런 사례였다. 돈 씀씀이를 줄이는 것도 크게 돈 버는 일이라는 것을 또한 그 때 깨달았다.

어느 땐가부터 내 사전에는 유료로 무엇을 사오는 법이 없었다. 물건을 기부 받았던 것이다. A4용지, 볼펜 등 문방구는 말할 것도 없고, 나중에는 아예 ‘날개를 달아주십시오’라는 캠페인을 벌여 어떤 청소회사가 우리 사무실의 니스 칠을 깨끗이 공짜로 해 준 사례도 있었다. 이러면서 내 머리도 하나씩 벗겨지고 희어져갔다.

그 후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를 거쳐 지금은 내가 모금의 최고 전문가가 되었다. 그래서 과거보다는 훨씬 전화도 잘 걸고, 넉살도 떨고, 잘 받아내기도 한다. 심지어 모금전문가 학교를 열어 그 학교의 교장이 되기도 하였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하는 법이다.

시민운동가가 된다는 것은 온갖 영역에서 팔방미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돈도 벌어 와야 한다. 이런 이중고에서 해방되기가 어렵다. 월급은 없거나 작게 받는다. 그야말로 풍찬노숙의 길을 걸었던 독립운동가나 다름이 없다.

그 당시 한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나는 이렇게 하소연하였다.

“시민들이 회원도 안 되어 주고 관심도 없으니, 우리도 모두 시민단체 문 닫고 잘 먹고, 잘살러 가겠습니다, 이렇게 기자회견이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 많이 듭니다.” 이 기사 보고 5명이 참여연대 회원이 되어 주었다. 그러니 어찌 문을 닫을 수야 있겠는가. 그냥 푸념으로 해 본 소리인데 그래도 5명이나 회원이 되어 주셨으니 감사할 수밖에.

지금은 그런 모든 일이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우리 후배들에게도 되풀이되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아름다운재단도 만들고, 지역재단도 만들도록 부추기고 있다.

돈 걱정에서 해방되도록 하고 싶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서는데, 돈 걱정으로 머리를 아프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쉽게 되지는 않는다.

여전히 나는 그 고난의 길 위에 서 있다.


박원순 변호사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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