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과 서울은 돌고 돈다

[책권하는 사회] 최윤도l승인2009.09.0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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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있다. 역사는 바로 인간의 행위이고 그 행위는 인간본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역사가 되풀이 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인간 본성이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천성이라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이집트의 어느 피라미드에는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상형문자 기록이 있다는데, 그렇게 멀리 가지 않더라도 역사가 돌고 도는 것임을 보여주는 책이 있으니 식민지 시절 경성의 사회상을 그린 <경성리포트>(최병택·예지숙, 시공사)다.

<경성리포트>는 사학자들의 개념어를 쓰지 않고 당시의 다양한 사료들을 인용해 읽는 내내 지루함 없이 식민지 시대를 회상할 수 있게 한다. 당시의 사회상은 지금의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삶의 가치관을 보여주고, 그 일면으로 하여금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아래는 책 속에 소개된 결혼에 관한 기사다.

「1934년대의 이상적 신랑형은 어떤 것인가? 이 의구심을 풀기 위하야 본사에서는 서울 시내의 중류 이상 규수가 가장 많이 다닌다는 모某 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반 학생에게서 화답을 받았다. 대답을 쓴 서른 명의 여학생 중 열두 명은 은행이나 회사에 다니는 ‘사라리맨’을 희망하였다. “시집간다는 것은 결국 한 평생 살아갈 길을 찾는 것인즉 가난과는 싸우기 싫어요” 라는 이유로 회사원이 좋다고 용감하게 고백하는 여학생도 있고, “지금 세상에 천만장자나 백만장자를 바라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인즉 차라리 어려운 꿈을 구하기보다 50~60원이라도 일정한 수입이 있는 이가 좋아요”라고 하는 이도 있었다.
그 다음이 의사인데 이는 여섯 분이 선택했다. 인술仁術을 베푸는 높은 존재를 동경하여 제 남편으로 삼으려 함이 아니라 아마 이것도 수입이 비교적 좋으니까 그런 것이다. 그 다음이 상인인데 네 사람이 답변하였다. 장사하는 사람의 아내가 되면 이 역시 의식衣食의 근심없이 살 수 있어 그런 것이 아닐까? 그리고 교사, 신문기자, 변호사가 각각 두 명씩 있었다.」(<삼천리>7권 1호, 1935년 1월자 본문 중)

지금으로 최고의 신랑감을 뽑는다면 의사, 변호사, 공무원 등일 것이다. 그런데 왜 당시에는 ‘사라리맨’(샐러리맨)이 최고의 신랑감이었을까?

‘사라리맨’이 최고 신랑감

「문 : 교사라면 안정적인 월급에 사회적 명망까지 갖춘 직업인데 그 좋은 직업을 마다하는이유가 무엇인가요?
답 : 교사는 너무 딱딱한 사람들이어요. 청춘의 ‘로-맨스’를 이해해줄 것 같지 않아요.
문 : 그렇군요. 그렇다면 변호사를 마다하는 것도 같은 이유인가요?
답 : 네에. 변호사는 입만 벙긋하면 자꾸만 ‘법률, 법률’하니까 저희 같이 순진하고 나이어린 여성의 가슴에는 공포심만 안겨준답니다.
문 : 그럼 사라리맨은 로-맨스를 이해해줄 것 같다는 말이군요.
답 : 그럼요. 보통 월급쟁이라고 하면 고리타분한 분들이 아니잖아요. 집안에 월부 피아노한 대쯤 들여놓고 퇴근 후에 다정스럽게 음악도 즐길 줄 아는 분들이 월급쟁이 아닌가요.」

예나 지금이나 의식(衣食)의 걱정 없고, 청춘의 로맨스도 아는 남자가 최고의 신랑감이다. 그 ‘사라리맨’이 바로 지금의 의사나 변호사 또는 공무원인 것이다.

그렇다면 경성의 교육관은 어떠한가? 지금의 대학 입시를 방불케 하는 1920년대 보통학교 입시일의 풍경이다.

「이 학교에서는 입학시킬 정원이 150명인데 지원자는 685명에 달하여 그 중 535명은 그대로 비참히 돌아갈 것을 모르고 시험장으로 설치된 강당으로 모여 시험을 보게 되었다…
강당 밖 유리창에는 자기의 아이들이 입학이 어찌 되었나 하여 사방에 몇 겹씩 학부형들이 에워싸고 근심스러운 얼굴로 들여다보는 것은 참으로 가이없이 보였다….」(<동아일보> 1922년 3월 27일자 본문 중)

당시의 교육바람 역시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교육에 힘써 실력양성에 주력해야 한다는 민족주의적 감성보다는 공부하면 돈을 벌고 출세할 수 있는 개인의 출세욕구가 당연시 되는 사회분위기가 만들어 만든 현상일 것이다.

교육관과 결혼관 외에도 서민들의 꿈이었던 20평 남짓한 ‘문화주택’과 조선 청년들의 취직난까지 책속의 경성은 지금 서울의 모습과 닮은꼴이다.

식민지 시대도 ‘개발바람’이 있었다.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경성은 주택난으로 몸살을 앓았고, 돈이 있어도 집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빈민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경성의 빈민들은 공터에 움막이나 움집을 만들어 살았다고 한다. 이런 움막이나 움집들을 토막(土幕)이라고 하는데, 경성 주변엔 이러한 토막촌이 곳곳에 형성되었다.

토막민들의 생계라는 것은 인력거꾼, 공사장 인부, 행상과 지게꾼 등 사회의 하층민들이었다. 이 시절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책이 있을 리는 만무하니 일본인 관리들이 토막민들에 대해 하는 일들이란 재개발로 집 값 상승을 노린 일본인들을 위해서 강제철거와 집단이주를 시키는 일들이었다.

본문 중 사료에는 당시의 철거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무너진 집 속에는 산산이 부서진 가구가 있고 가족들은 언덕으로 올라가서 인부들을 향해 고함을 치고 울고 있었다… (집을 잃은)50여명 중 열 살 미만의 아이들은 열아홉 명이나 되는데 철모르는 어린애들은 무너진 정든 집을 내려다보며 어른들을 따라 울어 곡성이 높아졌다. …양편에는 살기가 등등하였으며 집을 잃고 가구를 잃어 부인들이 땅을 치고 울며 하소연하는 참상은 측은하기 짝이 없어 보였으며 무너진 집과 깨어진 그릇이 참담하기 이를데 없었다.」(<동아일보> 1933년 8월 31일자 본문 중)

당시 주민대표는 “이런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사람이 들어 있고 가구가 그대로 있는 집을 마구 헐어버렸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어린애들하고 오늘 잘 곳이 문제입니다. 못 벌어먹을지언정 이 집은 헐지 못하겠다하니까 인부들이 마구 욕을 하고 헐어버렸습니다. 인정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까”라고 호소했다.

대통령에게도 권한다

근대화된 도시로 발전이 시작되면서 경성은 휘황찬란한 ‘신마치’(新町)의 네온과 고급 상점들의 ‘패쑌’ 그리고 번쩍이는 건물이 들어서며 마치 조선인들의 지향점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철저한 식민주의자들의 이해관계가 관철된 억압과 차별의 시대였으며 인간소외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숨가쁜 변화가 시작되고 사회 곳곳에 ‘바람’이 일어 근대도시의 면모를 갖추어 가는, 그러나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철저히 이뤄진 곳. 소외된 자들에게 냉혹했던 식민지 시기와 했을 때 현재 우리 사회는 어떤가. 혹시 그 시대와 크게 다를 바 없지는 않은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없는 서울은 21세기의 경성이다.

어두운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인간의 본성이 가진 방향성이란 것이 역사를 돌게 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성립된다면 말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개인의 편협한 경험을 넘어서는 역사적 경험을 군주에게 제공하기 위해 쓰여 졌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군주론을 읽지 못했다면, <경성리포트>라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최윤도 두리미디어 기획과장

최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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