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만물을 담은 글자

강상헌의 한자 이야기[5]-될 화(化) 강상헌l승인2009.09.0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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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들은 최근 두 분 전(前) 대통령을 슬픔 속에서 보냈다. 미소 예쁜 한 여배우의 죽음도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목숨 가진 모든 것은 죽는다. 생명이 죽음으로 변한다. 주검이 되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 죽지 않는 것은 생명이 아니다.

화(化)의 옛 글자로 사람[人]이 누워있는 모습을 상형한 것
되다, 변화하다의 뜻으로 쓰이는 화(化)라는 글자에는 죽다, 망하다의 뜻도 포함되어 있다.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일어나고 스러지는 생멸(生滅)의 이치를 이 문자는 매우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글자의 모양은 매우 간단하지만 수만 마디 말로도 다 설명하기 어려운 천지만물의 변전(變轉)의 법칙, 자연의 엄연(儼然)한 조화(造化)를 너끈히 포괄하고 있는 점이 이 글자의 매력(魅力)이다.

이 글자의 초기 모습은 더 간단하다.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사람 인(人)의 옛 글자를 뒤집어놓은 모양만으로 ‘변한다’는 의미를 가지는 ‘화’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보는 화(化)자는 세월이 지나면서 옛 ‘화’자 앞에 바로 선 사람을 뜻하는 부수자 인()자가 더해진 것이다.

글자 모양으로는 오른쪽이 부수자(部首字)로 쓰이는 비수 비(匕)자이지만 뜻은 비수와 상관없이 아파 누워있는, 또는 죽은 사람을 그린 것이 변한 것이다. 서있는 사람과 누워 있는 사람을 한 글자로 합쳐 되다, 또는 변화하다라는 글자로 그려낸 것이다. 한자가 가지는 추상화(抽象化)의 묘미다.

다른 것, 같지 않은 종류를 낳는다는 의미로 설명되기도 한다. 화(化)는 같은 류(類)가 아닌 것을, 산(産)은 같은 종(種)을 낳는 것을 말한다고 한 문헌(文獻)은 설명한다.

사람(人)이 모양을 바꿔 다른 사람(匕)이 된다는 뜻을 합한 글자로 '되다'를 뜻한다는 것이 자전(字典)의 설명이다. 요즘 글자 모양(해서체)으로만 본다면 사람이 모양을 바꿔 날카로운 칼이 된다는 것이다. 비(匕)는 날카로운 칼, 비수를 뜻하는 부수자다. 사람과 칼이 모여 ‘되다’는 뜻을 구성한다는 다소 무책임한 설명이다. 자전의 이 설명으로 이 글자의 의미가 온전히 전달이 될까?

한자의 부수자 지정(指定), 부수의 분류 중에는 의미와는 상관없이 모양만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대의 한자에서는 ‘사람이 누워있는’ 이 화자(사람 자가 붙지 않은 글자)도 매우 많이 쓰여, ‘설문해자’에서는 따로 부수자로 분류되기도 했으나 화(化)로 변한 다음에 점차 쓰임새가 줄어 소멸됐다. 대신 모양이 비슷한 비(匕)자가 누워있는 사람을 뜻하는 모양으로 화(化)자에서 쓰이게 된 것이다.

문명한 상태로 나아간다는 뜻의 문화(文化)처럼, 대개는 천지(天地) 자연의 운용과 변화(變化)의 법칙을 따르는 바뀜의 뜻으로 쓰이는 이 ‘화’자의 ‘실질적 파워’는 정작 다른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적(的)’ ‘주의(主義)’라는 단어와 함께 이 ‘화(化)’자가 무수한 파생어를 만들어내 우리말을 비대(肥大)하게 하는 재료(?)가 되고 있음을 이르는 것이다. 우리보다 서양문물을 먼저 받아들인 한자문화권 일본의 강력한 영향력에 의한 것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민주적(民主的), 민주주의(民主主義), 민주화(民主化) 등으로 활용되는 것을 말함이다. 개념어(槪念語) 뒤에 붙여 이런 단어들은 마치 만능열쇠처럼, 마술과도 같은 조어(造語)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정통성을 강조하는 한글연구가들은 이런 현상을 오용(誤用) 또는 남용(濫用)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정작 변화의 현상을 천착(穿鑿)하는 학문인 화학(chemistry)과 그 언저리에서 보다 다른 여러 분야에서 우리가 이 글자를 더 자주 만나게 되는 연유(緣由)다.

*<시민사회신문> 한자교육원 홈페이지(www.yejiseowon.com)

토막해설-화(化)

6서(六書)로는 회의자(會意字)로 분류된다. 부수자 비수 비(匕)자의 부수에 속하나 생성 당시 모양과 뜻은 날카로운 칼과 상관이 없다. 대표 훈(訓)과 음(音)은 ‘될 화’이지만, ‘잘못 와’의 훈과 음도 있고, 잘 못 전해지다는 뜻의 ‘와전(訛傳)’에 쓰이는 ‘와’자의 옛 글자다. ‘천지 자연(自然)이 만물(萬物)을 생육(生育)하는 작용’ ‘천지의 운용(運用), 변화의 법칙’을 뜻한다. 자연히 ‘죽음’의 뜻으로도 쓰였다. 생사(生死)를 함께 보듬은 글자인 것이다.


강상헌 논설주간 한자교육원 원장

강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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