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가을식탁을 위하여

[이지상의 사람이 사는 마을] 이지상l승인2009.09.2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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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동네에는 유난히 아카시아가 많았습니다. 시오리나 되는 길을 걸어 다녀야 했던 초등학교 시절, 딱지치기나 오징어 잡기, 비석치기, 가방 들어주기로 이어지는 등교 길에는 언제나 입안 한 가득 환한 봄날의 아카시아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늘 아카시아 꽃 많이 먹고 체하면 똥물 마시는 것 외에는 약이 없으니 조금씩만 따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참 많이도 먹었지만 체한 적도, 똥물을 실제로 먹었던 적도 없었습니다. 간식거리가 충분치 않았던 시절에 그래도 혹시 모를 탈을 걱정하셨던 거겠지요.

학교 운동장가에나 교사 뒤편의 잘 가꾸어진 화단엔 고운 새악시의 빠알간 입술마냥 선홍빛 꽃물을 담뿍 품은 사루비아 꽃이 한가득 피었습니다. 주로 체육시간이면 화단에 난 잡풀들을 뽑고는 했는데 운동장에 나가 공을 차야 하는 시간에 텃밭에 김매기 하듯 하는 사역은 지루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 지루했던 풀 뽑기가 끝나면 선생님의 눈을 피해 꼭 대 여섯 개씩은 사루비아 꽃술을 따서 먹기도 하는데, 그러다가 선생님께 들키는 날엔 손바닥에 착착 달라붙던 회초리가 왜 그리 굵었던지요.

무지개를 쫓아간 적도 있었습니다. 6월 하순쯤이면 마지막 장마비에 농익은 살구가 장독대위로 툭툭 떨어지곤 했습니다. 살구가 익는 계절에 동네 아이들은 너나없이 바구니를 들고잘 익어 떨어진 살구를 주우러 다녔습니다. 산타클로스가 굴뚝을 타고 성탄 선물을 줄거라 믿었던 때니까 내가 아주 어렸던 어느 해 이겠지요. 하루 종일 내리던 비가 오후에 잠깐 그치고 울 뒤에서 살구 이삭을 줍다가 그만 동산 위에 길게 걸쳐진 무지개를 본 겁니다.

그놈을 잡겠다고 겨우내 연날리기를 했던 언덕을 넘어 얕은 개울도 건너고 일제시대 때 금을 캤었다던 폐광에까지 꽤 먼 길을 뛰어갔었습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무지개는 고사하고 장마비에 웃자란 풀에 쓸린 생채기만 잔뜩 달고 돌아왔지요. 볼이 잔뜩 부어 툴툴대는 나에게 어머니께서 그러셨습니다

“무지개가 니꺼냐 이놈아!”

내가 왜 무지개를 잡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어머니께서 명쾌하게 답을 해주신 겁니다. 먹을 것이 참 없었던 때이기도 했지만 또 지천으로 먹을 것이 널렸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당장 구름 속에 감춰진 밤하늘에 몇 개의 별이 떠있는 줄 모릅니다. 뒷동산에 선 소나무의 이파리가 몇 개인지도 모르고 비 내리는 날, 내가 받은 우산위에 몇 개의 빗방울이 떨어졌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내가 걸었던 발걸음이 몇 발자국이었는지도 심지어 내 몸에 몇 올의 머리카락이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도대체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무지개를 잡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 삶에 그 많은 것들을 헤아리지 못하는 이유도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것으로 삼자면 헤아릴 수 없는 이 많은 것들을 수치로 환산하여 값을 매기고 그걸 돈 주고 사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지나치면 집착하게 되고 그것을 우리는 탐욕이라고 부릅니다.손안에 쥔 돈이 없으니 내 것으로 만들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니 밥을 먹는 횟수의 반쯤은 끼니를 거르는 일도 흔했지요. 그러나 봄날의 아카시아 꽃은, 사루비아나 진달래, 살구나 앵두는 굳이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것, 곧 자연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교육희망 유영민 기자
구리 한강시민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지난 12일 가을정취를 촬영하며 활짝 웃고 있다.

대체로 사람이 만든 것 중에 셈할 수 없는 게 거의 없습니다. 사람이 지은 집이나 거기에 들어간 벽돌의 개수, 혹은 자동차, 길거리의 상점. 그 상점에서 파는 물건의 개수까지도 물리적으로 셈이 가능합니다. 소유를 전제로 한 상품은 모든 물량을 셀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사람의 것, 내 것이 됩니다. 그러니 사람은 상품을 제조하는 기계와도 같습니다.

자연의 것 중에는 셈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습니다. 당장 손에 들고 있는 커피 잔의 최소 입자가 무엇인지 또는 그 입자를 몇 개쯤 모아야 커피 잔을 완성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헤아릴 수 있는 것이라면 고작해야 전 세계 인구가 몇 억명 쯤 된다더라 정도일 겁니다.

모든 사람이 무드셀라 증후군(moodcela syndrome)의 환자인 것처럼 나도 어릴 적 기억을 좋은 추억으로 담고 있습니다. 무지개를 쫓던 날의 바람 냄새를 지금도 간간이 기억합니다. 패랭이, 개망초, 나리꽃 지천이던 언덕도 기억하고 장마비에 얕은 여울을 넘쳐흐르던 황톳빛 물결도 기억합니다.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었음을 지적해 주신 어머니의 말씀 한마디를 기억합니다.

제대에 이은 복학 후 일 년 내내 꼬깃꼬깃 찌든 때물든 군복만 입고 다니며 세상을 어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무척 많이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읽지도 않는 〈철학의 기초이론〉이나 〈역사란 무엇인가〉, 〈해방신학의 이론과 실천〉 등 전공과는 무관한 책을 가방에만 넣고 다니며 그해 늦가을을 맞았었습니다. 낙엽의 쓸쓸함 마저 긴 소매 끝의 찬바람으로 들어와 뜻모를 외로움에 빠져들었던 그 가을의 어느 저녁, 나는 내가 다니고 있던 학교의 전철역사 끝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식탁을 보았습니다.

이미 지하철 내에서도 마주친 적이 있는 맹인 부부가 그 역사의 끝을 찾아와 보따리를 풀고 거기서 도시락을 꺼내 서로의 고단함을 달래주듯 한입 두입씩 서로에게 먹여주는 모습이었지요. 어떨 땐 밥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입가에 묻거나, 몇 개 안되는 반찬이 흘러 바지에 떨어져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서로의 손과 얼굴을 더듬으며 확인하고 밝게 웃던 그 아린 사랑의 식탁. 마치 세상이 끝나는 지점을 찾아와 마지막 간절한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 같은 그들만의 성스러운 식탁을 보며 나는 그 자리에서 10분도 넘게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역사 위로 노을이 찾아들고 그들의 도시락에 저녁햇살이 반사 되었습니다. 사람도 사랑하면 저리 아름다운 모습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게 그 즈음입니다


이지상 가수·성공회대 외래교수

이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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