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동양적 상상의 실타래

한자이야기[6]-보일 시(示) 강상헌l승인2009.09.2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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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는 상상력으로 읽을 때 묘미가 산다. 훈(訓)과 음(音)이 ‘보일 시’인 示자와 이를 포함한 여러 글자들은 신(神), 귀신(鬼神)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읽으면 대개 뜻이 통한다.

왜 그럴까? 염정삼 번역의 <설문해자주 부수자 역해(譯解)>는 이를 친절히 가르쳐준다. ‘설문해자’는 기원후 100년경 중국 후한(後漢)의 학자 허신(許愼)이 쓴 문자해설서다.

허신은 부수자(部首字)인 시(示)의 뜻을 ‘하늘에서 상(象)을 내려주는 것인데 이는 길흉(吉凶)을 보여 사람들에게 제시(提示)하려는 것’이라고 보았다. 글자의 모양에서 세 줄이 내려져 있는 것은 해, 달, 별이다. 이것으로 천문을 관찰하고 시간의 변화를 살펴서 신이 하는 일을 보여 준다. 해, 달, 별의 힘(빛)으로 모양을 보여주는 것은 곧 신의 영역(領域)일 터다. 게다가 길흉까지 제시하는 신통력이라니.

갑골문의 그림을 토대로 진태하 교수가 그린 보일 시(示)자.
보일 시(示)자는 갑골문에서부터 등장하는 중요한 글자다. 돌 나무 따위를 세워 신주(神主)를 삼거나 고인돌과 같은 영험(靈驗)한 돌을 표현한 도화(圖畵)글자에다 햇빛 달빛 별빛의 세 줄기 빛을 내려 그어 사람들이 사물을 인식할 수 있음을 나타낸 것.

‘보이다’라는 현상이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한계(限界)을 지나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 까닭을 알게 되면 한자가 가지는 풍부한 상상의 세계를 가늠할 수 있다. 동양과 서양의 사고(思考)의 차이의 일단(一端)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점도 주목할 부분.

제물을 차려 놓은 제단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제물을 신에게 보여 준다는 의미로 '보이다'를 뜻한다고 푼 자전(字典)의 설명도 이같은 ‘상상력(想像力)’의 범주(範疇) 안에 든다고 할 수 있겠다. 복 복(福)자, 제사 제(祭)자, 토지신 사(社)자, 빌 기(祈)자, 재앙 화(禍)자 등의 의미에서 이런 ‘신령스러움’을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다.

한자를 만든 방법을 말하는 6서(六書), 즉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 중 이 시(示)자는 학자들에 따라 조자(造字) 방법의 구분을 달리하는 글자로 자주 인용된다. 갑골문과 금문(金文)의 자형이 설문해자의 해설과 다른 점이 이런 논란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문자학자 진태하 교수는 설명한다.

설문해자의 풀이로 보면 이 글자는 지사의 원리에 의해 지어진 것이다. 지사는 ‘일[事]을 가리킨다[指]’는 문자의 뜻대로 동작이나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다. 이 글자 윗부분의 ‘二’는 ‘위 상(上)’의 고문(古文)으로 순전한 의미의 지사(순체지사)인데 아래에 세 줄기의 획이 덧붙여져 증체(增體)지사에 의한 글자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 글자의 갑골문과 금문 등 도화 형태의 고문의 모양을 신을 숭배하던 탁석(卓石) 즉 고인돌[dolmen]로 보고 허신의 설문해자의 해설을 부정하는 주장에 의하면 이 글자는 상형자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사가 ‘일을 가리키는 것’을 그린 것처럼 상형은 ‘물체(物體)의 모양[形]을 그리는[象] 것’을 말함이다.

진 교수는 경우에 따라 동류(同類)의 문자에 있어서도 획일적으로 6서의 구분을 하는 것에 작지 않은 무리(無理)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 부분을 대할 때는 그 중 어느 것이 더 타당(妥當)할까 하고 택일(擇一)을 애써 궁리하는 것보다는, 다만 문자의 초기 모습들을 다양하게 톺아 그 글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으로 보람을 삼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설(異說)이나 논란(論難) 자체에 뜻이 있다고나 할까.

또 이런 과정이 다른 진리를 좇을 수 있는 상상력의 열쇠를 제공하는 미덕을 가지는 점을 생각한다면 상형자로서의 示자, 지사자로서의 示자 공히 의미 있다. 또 한자를 익히는 작은 재미 중의 한 부분이다.

*<시민사회신문> 한자교육원 홈페이지(www.yejiseowon.com)

토막해설

‘보이다’의 의미로는 음이 ‘시’지만, ‘땅 귀신’의 뜻으로는 ‘기’로, ‘두다’의 뜻으로는 ‘치’로 각각 읽는다. 그러나 발음을 표기하는 반절법 상으로 이 글자를 신지절(神至切)로 적어 중심되는 음(音)이 ‘시’임을 명확히 했다. 3줄이 내려졌다는 부분을 작을 소(小)의 의미로 ‘분해’하려는 시도도 있으나, 이는 한자의 역사성에 대한 무지(無知)의 발로(發露)로 봐야 한다.

강상헌 논설주간·한자교육원 원장

강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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