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민주주의, 점진·공조 실행을

인터뷰-제3회 WFDA 참가자를 만나 김레베카l승인2009.09.28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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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시민사회의 희망미래 일군다

지난 9월 16일부터 18일까지 서울에서 제3회 ‘아시아 민주화 세계 포럼(World Forum for Democratization in Asia, WFDA) 비엔날레’가 열렸다. 총 150여명의 국내외 참가자들이‘아시아 민주화의 지속가능성-사회경제적 정의의 도전’이라는 전체 주제 아래 빈곤, 교육불평등, 여성/아동문제, 인권, 언론, 투명성과 책임성, 삶의 질 등 아시아 지역 각국의 실질 민주주의의 현황과 정도를 비판적으로 가늠하고 향후 2년 동안의 ‘행동과제(Framework of Action)’를 도출해낸 이번 대회가 지닌 배경과 의의를 좇았던 지난호 기사에 이어, 참가자들의 대회 뒷얘기를 싣는다. /편집자

“중국 시민사회 참여 논의를”
메이싱 양 대만 민주주의 재단 부회장


-WFDA 프로세스와 대만 민주주의 재단에 대해 말해달라.

“2002년 남아공 더번에서 있은 세계 민주주의 운동(World Movement for Democracy, WMD)이 그 시발점이었다. 동북아 세션에 한국 일본 대만 등이 있었고, 북한 인권 문제 논의도 있었다. 동남아에서는 버마 라오스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등이 참가국이었다.

모두들 중국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다. 아시아와 ASEAN(동남아시아 국가연합)에서 가면 갈수록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시아에만 지역 인권 메커니즘이 없기 때문에 아시아 전체를 커버하면서 민주화를 촉진하는 프로세스를 만들자는 논의가 생겨났다.

대만 민주주의 재단은 2005년에 생겼다. 내 개인적 배경을 얘기하자면, 일본에서 나서 2차대전 이후 대만에 돌아와 대학 졸업 후 미국에 가서 공부했다, 1970년대 초였다. 당시 대만 사정이 무척 어두웠다. 대만은 계엄령 치하였고, 유엔에 탈퇴당하기 직전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민주주의 개혁을 위한 운동에 참여했고, 나 역시 열심히 했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국내에 있기보다는 미국, 유럽에 가길 원했다. 미국에서 베트남전을 비판하는 데모를 하거나 닉슨 대통령을 비판하는 걸 보고 많은 대만인들이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냐고 놀라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더 심각한 것은, 당시 대만 여당은 중국 본토를 대표하고자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민중의 반발을 억압했다, 자유선거를 못하게 한다든지, 중국에서 완전히 독립하면 그때 선거하게 해주겠다고 했다. 사람들이 민주주의 운동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1984년 대만-미국인연합회 뉴욕지부 회장 일을 했고, 2년 뒤 미국 전체 연합회 회장이 되었다. 미국에서 대만 반정부 민주주의 운동을 열심히 했다. 당시 미국에 온 고 김대중 대통령도 직접 뵈었었다. 1992년 대만에 돌아와 야당에 들어가 일했다. 그러다 미국보다는 본국에서 활동해야한다는 결정을 남편과 내렸다.

6년간 일했던 민진당이 2000년에 여당이 되었다. 나는 외무부 연구계획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일했다. 그때 미국의 NED(국립민주주의기금)가 접근했는데, 한번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그래서 2005년에 대만 민주주의 재단이 생겼다. 남한에 민주주의기념사업회가 있듯이. 재단이 사무국 역할을 하기로 한 WFDA 프로세스는 2005년에 타이페이에서 제1회 비엔날레 회의를 여는 것으로 정식 출범했다.

재단에서는 중국 민주화를 위한 사업을 한다. 2008년 이전에는 문제가 없었다, 첸수이벤 당시 대통령이 아예 내놓고 공언했다. 대만은 중국의 민주화를 지원하겠노라고. 그런데 현 마잉조 정부 들어서면서 모든 상황이 불리하게 바뀌었다. 현 정부 정책은 완전 친중국 노선이고, 어떤 식으로든 중국 정부 비위를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 반민주적인 요소로 비근한 예가 두가지 있다. 하나는 최근 달라이 라마가 대만에 입김으로 인해 중국에 입국을 못한 적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 8월 남대만에 태풍 마로꼿 때문에 큰 피해가 발생했을 때 곧바로 미국, 일본이 지원 손길을 내밀었는데 대만 외무부가 ‘우린 지원 필요없다’고 거절했다는 것이다. 마잉조가 처음에는 오리발이었다. 나중에 거절 서신이 드러나고 다 들통나니까 그제서야 외무부 장관, 총리 등 관련자들을 해임했다. 6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숱하게 더 많은 사람들이 이재민이 돼 난리가 났는데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신속하게 돕기 위한 지원을 정부가 나서서 거절하는가. 대만 사람들이 그때는 폭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중으로부터의 압력은 그만큼 중요하다. 달라이 라마를 어쩔 수없이 초청할 정도였다. 어쨌거나 태풍 마로꼿이 왔을 때 마잉조 지지율이 순식간에 16%로 곤두박질쳤다.

마잉조도 대통령 되기 전에는 중국에 꽤나 비판적이었는데 되고 나서는 180도 바뀌었다. 중국에 사적인 실질적인 이해관계도 있다. 마잉조의 형제, 부인 등 가족들이 중국에 큰 사업체를 거느리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가 나빠지면 불이익 당할 것은 뻔하다. 탈중국자들을 돕는 프로그램을 정부가 대놓고 비판은 못하니까 재단이 어디서 돈을 받았는지, 그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식으로 거짓 비방을 한다. 또 북한 인권을 위해 남한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것도 대만 정부는 우리가 미국 돈을 받았다고 떠든다. 마이애미에 있는 한 쿠바 인권단체가 운영하는 청년 교육 프로그램 지원 역시 비판받는다. 중국 입장을 곤란하게 할 만한 것은 뭐든 비판당한다. 대만 매체에 관련 기사를 쓰면 확 줄여서 왜곡한다. 나는 고소하겠다고 대응한다.”

-당신이 하는 일은 사실 특정 국가나 단체의 정치적 맥락 너머에 있는 일이다.

“맞는 말이지만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이나 우리가 지원하는 프로그램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갖고 있어야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서구 선진국, 유럽의 경우를 생각해보라. 정부와 우리 재단, 말하자면 시민사회가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서 상호 보완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더건 아이사라고 대만에는 2년 전에 왔고 여기 이 대회에 오려다가 한국 공항에서 붙잡혀 입국을 못하고만 위구르계 독일인이 있다. 신장에서 위구르 운동의 대모인 제비아의 비서로 일하고 있다. 이런 경우를 보면 더더욱 인권 문제와 관련해서 일국 정부가 맡아야할 역할이 어떤 것인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것 하나로 한국의 인권상황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가 한국에 들어오질 못했었다는 것도 나는 이해가 잘 안간다. 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모두 민주정부를 표방했었지 않나.”

-문제는 그 두 대통령조차도 일종의 달라이 라마 취급을 당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재임시 여전히 한국 사회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보수세력에 의해 강력한 압박을 받았다. 지난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하자마자 여당인 한나라당에서 나온 대변인 성명이 “호남지역의 큰 정치인” 운운이었다.

“나 역시 현재 대만 정부에 대해 불만이 많다. 우리 재단에 대해서도 마잉조는 “민주주의의 횃불이 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를 수출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등의 시민사회에서 우리 재단을 “횃불”이라고 치하한 것을 정반대로 비꼬아서 말이다.”

-그래도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나.

“그렇다. 그래서 미국이 지금 걱정이 많고, 대만 정부가 ‘중국-대만 관계’를 내세워 늘 그렇게 재단을 헐뜯는데 차라리 미국 직접 지원을 받는 게 낫지 않나라는 생각도 가끔 할 정도이다.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이야말로 우리 재단 같은 시민사회조직의 인권 활동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

대만 민주주의 재단과 WFDA의 미래에 대해서는, 유사 과제를 안은 관련 네트워크들이 모여 당면 문제들을 숙의하고 상호 신뢰를 높여가면서 서서히 아시아 지역 다른 네트워크들도 합류하게 하는 것이 당분간 필요할 것이다. 이번에도 아프카니스탄 참가자가 하나 있었는데, WFDA 프로세스에 정식으로 초청받지 못한 것을 문제 삼았고 우리는 흔쾌히 앞으로의 참여를 요청했다. WFDA는 아시아 지역에 대한 자체 역량을 지속적으로 높여가면 앞으로 희망이 있을 것이다. 대만 민주주의 재단은 지원 중심이지만 WFDA가 같은 프로세스의 사무국 역할을 하는 등 시민사회단체 교량 역할을 충분히 잘 해나가리라 본다. 현재 중국의 참여도를 높이자는 의견이 내부에서 높다."

“거버넌스의 위기를 고민한다”
사와르 바리 파키스탄 파탄발전기구 코디네이터

그는 재난 구호, 거버넌스 관련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파키스탄 등 동남아 국가의 거버넌스는 처참한 수준이다. 풀뿌리를 조직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고, 전국 24개 지역에서 일하고 있다. 거버넌스, 선거, 지방 정부 등을 연구 조사하는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주로 하는 사업은.

“데모, 시위모임 등의 방법과 조직력을 동원해서 현재 지방정부 시스템 관련 새 법안에 반대하는 청원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지방정부 시스템을 다 바꿨는데, 새 시스템에서는 가령 여성 비율이 현저히 낮아진다든가, 시민참여가 방해 당한다든가 하는 문제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영역은 내부 이주민 문제이다. 한 예로 많은 이주자가 탈레반 주요 거점지인 사밧트 벨리 지역에서 생겨났다. 이들은 테러리즘 전쟁 등으로 숱한 피해를 당한 이 지역을 지난 5월에 떠나야만 했는데, 이들이 탈레반에 쫓겨난 이후 다시 돌아오고 있고 우리는 귀환을 도우면서 재건구호 사업을 진행 중이다. 또 이 지역은 탈레반이 오랜 시간 장악했기 때문에 주민 대부분이 마드라사(종교학교) 등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테러리즘 문화에 길들여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주민 교육사업, 특히 청년 평화교육을 조직하고 운영 중이다."

“행동과제 실천공유 더 필요”
얍쉬성 태국 포럼-아시아 사무총장


-이전에 말레이시아 인권단체 수아람(SUARAM)에서 일하다가 현재 포럼-아시아로 옮겨간 걸로 알고 있다. 포럼-아시아는 WFDA의 주요 운영위 단체 중 가운데 하나이다. 처음부터 참여했나.

“아니다. 나는 2007년 마닐라 제2회 비엔날레부터 참여했다.”

-마닐라 대회와 이번 서울 대회를 비교할 때 더 나아간 점이라든가 중요 이슈의 이동 등과 같은 차이가 있는가.

“이 프로세스가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2007년에는 사람들이 서로 친밀도는 높았지만 공유 이슈들에 대해서는 약간 낯설어한 점이 있었다. 이번 세 번째 대회에서는 상호간의 이슈와 과제, 입장들에 대해 좀 더 정확한 이해를 갖게 된 듯하다. 그로부터 일정한 공통 시점을 점차 형성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다음번 대회에서는 이슈 토론보다는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과 행동과제로 좀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마닐라 선언이나 서울 선언이나 내용만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고 하겠다. 이슈들에 대한 이해와 지역발전 계획 등 서울 선언은 괜찮다. 이제껏 세 번 비엔날레를 통해 논의되었던 것들을 전부 다 담고 있다. 덧붙여 참가자와 단체들이 어느 정도 공통적인 시점을 담고 있다. 중국을 두고는 의견이 아직까지도 매우 분분하고 차이를 공유하기가 힘든데, 이번에 중국 본토인 참가는 그래서 내부 사정을 좀 더 잘 알게 해주고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행동과제’는 아직 좀 더 논의가 진행되어야 윤곽이 확실해지겠다. 이점이 사실 WFDA의 한계이기도 하다. ‘선언’ 작성에 이르기까지 토론과 공유를 위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더 긴밀한 네트워킹이 필요해질 것이다."

김레베카 기자

김레베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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