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다-칼포퍼(2)

철학여행까페[81]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9.09.28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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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퍼(사진)는 논리학과 과학이론의 문제를 접어 두고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책인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쓰기로 했다. 그러나 그러한 책을 쓸 수 있는 여건은 매우 열악했다. 뉴질랜드로 함께 가져 온 책도 많지 않았고, 대학 도서실의 책도 많지 않았다. 게다가 대학 당국은 포퍼에게 매우 비협조적이었다.

대학 당국은 외국인 강사인 포퍼가 강의 이외에 연구 활동을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전쟁 중에 종이가 귀해지자 포퍼가 가져가는 종이에 대해 값을 지불하도록 했다.

포퍼가 강사 생활로 받는 돈은 생활하기에도 빠듯했다. 집을 얻기 위해서는 빚을 져야만 했다. 유럽에 있는 사람들과 교신하면서 국제 우편 요금과 전보에 많은 돈이 들었다. 그 때문에 그는 난방, 의류 그리고 심지어 음식까지 모든 것을 절약해야 했다. 그는 돈이 없어 대학 구내식당에서 식사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텃밭에서 나오는 쌀과 당근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그것도 안 되면 ‘식이요법’으로, 다시 말해 굶어야만 했다.

그런 궁핍한 생활을 해나가면서도 그는 저술을 계속 해 나갔다. 항상 부족한 수면, 영양 결핍으로 우울증 증세가 심해졌다. 계속 건강은 악화되었고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만 했다. 한쪽 눈밖에 뜰 수가 없는 상황이 종종 있었고 농양으로 인해 9개의 이를 잃기도 했다.

이렇게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는 모든 열정을 책을 저술하는데 쏟았다. 그리하여 그는 1942년에 <열린사회와 그 적들> 제1권을, 그리고 1943년 2월에 제2권을 완성하였다. 책은 그의 엄청난 열정을 반영하듯 1천 쪽 분량이나 되었다.

굶으며 쓴 <열린사회와 그 적들>

책은 완성되었지만 출판이 문제였다. 유럽과 미국의 여러 출판사에 문의해 타진해 보았지만 관심을 보이는 출판사가 거의 없었다. 여러 가지 곡절을 겪은 후에 <열린사회와 그 적들>은 1945년 영국에서 출판되었다. 전쟁은 이미 몇 달 전에 끝난 상태였다. 그러나 이 책은 출판되자 영어권에서 곧바로 주목을 받았고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포퍼는 일약 열린 사회이론의 주창자가 되었다.

이동희
칼 포퍼
‘열린 사회’라는 개념은 포퍼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것은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이 쓴 개념이었다. 그것을 그는 차용해 왔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두 권으로 이루어졌다. 1권은 국가 유토피아를 최초로 주장한 플라톤 철학에 대한 비판이었다. 2권 <거짓 예언자>는 헤겔과 맑스 그리고 역사주의에 대한 청산이었다.

포퍼는 플라톤, 헤겔, 맑스 이 세 명의 사상가 모두를 전체주의의 선구자로 간주했다. 그는 이들 사상가들을 비판하면서 전체주의 사상과 대결했다. 그는 전체주의적 독재가 지배하는 사회를 닫힌 사회로 보았다. 닫힌 사회는 마술적 금기나 독단이 지배하는 억압된 사회이며 전체주의적 사회이다. 그는 닫힌 사회의 대안으로 열린사회를 내세웠다.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열린사회의 대표적 인물로 페리클레스를 내세운다. 그는 페리클레스의 말을 인용해 열린사회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단지 소수만이 정치적인 구상을 계획하고 관철시킬 수 있지만, 우리 모두는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열린사회는 도그마를 허용하지 않으며 유토피아적 거대 기획이나 어떤 종류의 역사적 예언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열린사회는 한 사람 또는 소수의 현명한 지도자가 이끌고 가는 닫힌 사회와 달리 시민 각자가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고 책임을 지는 사회이다. 그리고 비판과 토론이 허용되는 사회가 바로 열린사회다.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로 현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이론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물론 포퍼의 열린 사회이론에 대해 그것은 보수적이고 기존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옹호라는 비판도 있었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유명한 책을 쓴 역사학자 E. H. 카도 그런 비판을 했다.

이동희
포퍼 부부
자본주의 옹호 비판도


포퍼는 사회 혁명과 거대한 약속으로 자본주의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현재 눈앞에 벌어지는 구체적 문제부터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혁명 보다 점진적 개혁을 옹호한다. 그리고 제도는 시민의 자유와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45년에 포퍼는 런던 정경대학(LSE)의 전임강사로 초빙되었고, 1949년에 전임교수가 되었다. 그는 과학철학 그룹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했다. 그는 1959년에 <과학적 발견의 논리>, 1963년 <추측과 논박>, 1973년 <객관적 인식>을 내는 등 왕성한 연구 활동과 저작 활동을 계속해서 펼쳤다.

그의 지적 호기심과 탐구는 지칠 줄 몰랐다. 그는 일상생활 속에서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했지만, 학문적 입장이나 정치적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토론에서 얼버무리는 것을 결코 참지 못했다.

그가 비트겐슈타인과 벌인 논쟁은 유명하다. 1946년 10월 26일 포퍼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철학과 교수와 학생들의 토론서클인 대학 모럴 사이언스 클럽 초청을 받고 강연을 했다. 그가 선택한 주제는 ‘철학적 난문제’이었다.

포퍼가 이 주제를 선택한 것은 다분히 비트겐슈타인을 겨냥한 것이었다. 포퍼는 ‘철학적 문제가 실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철학의 문제가 언어의 혼란을 해명하기 위한 것이라면 자신은 철학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을 했다. 화가 난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문제란 언어적 유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설전은 윤리학의 문제로까지 넘어 갔다.

비트겐슈타인은 그때 벽난로 옆에 있었다. 흥분한 나머지 그는 부지깽이를 들어 허공에다 흔들며 자신의 주장을 내뱉었다. 그는 포퍼에게 윤리학의 지위에 관한 질문을 던지면서 도덕적 규범의 예를 하나 들어보라고 요구했다.

포퍼는 ‘초청 연사를 부지깽이로 위협하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대답에 격분한 비트겐슈타인은 부지깽이를 내동댕이치고 문을 쾅 닫으며 방을 나가버렸다. 10분 정도에 걸친 둘 사이의 설전은 부지깽이 때문에 여러 소문을 낳았다. 훗날 포퍼는 그 일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이동희
포퍼와 달라이 라마
“놀랍게도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비트겐슈타인과 내가 부지깽이를 들고 치고 받았다는 데 그게 정말이냐는 편지가 뉴질랜드에서 날아 왔다.”

포퍼는 논쟁에서 굉장히 공격적이었다. 그는 자유로운 정치적 견해를 가지긴 했지만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관용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전체주의적 자유주의자’라는 별명을 붙여 주기도 했다. 포퍼는 항상 “비판적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태도를 요구하였다. 그가 이렇게 논쟁에 공격적인 것은 우리가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전체주의적 자유주의자’

포퍼는 LSE에서 정년퇴임한 뒤에도 연구를 멈추지 않고 세계에 대한 이론을 내놓는다. 그는 세 종류의 세계를 구분한다. 세계1은 물질의 세계이며 세계2는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의식의 세계이고 세계3는 우리의 사고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우리의 사고와 독립되어 초시간적으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상, 언어, 윤리, 과학, 예술 등이다.

포퍼는 1965년에 그동안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여왕에게서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는 1969년에는 공로훈장을, 1993년에는 오토 한 평화 메달을 수여 받기도 했다. 포퍼는 2주 동안 병을 앓은 다음 1994년 9월 14일에 런던에서 사망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저술을 했다. 화장한 후 포퍼의 유골은 비인으로 보내져 부인이 묻힌 공동묘지에 함께 안장되었다.

포퍼가 최후로 무슨 말을 남겼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가 쓴 <추측과 논박>의 서문을 보면 그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다.”

<포퍼 편 끝>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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