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책 읽어 무얼 하나

책으로 보는 눈 [99] 최종규l승인2009.09.28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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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달에 걸쳐 <탐라기행>(학고재,1998)이라는 책 하나를 읽어 냅니다. 책을 다 읽을 무렵, 이 책을 쓴 일본사람 시바 료타로 님 다른 책 <한나라 기행>이 함께 우리 말로 옮겨져 있음을 알아챕니다. 아침저녁 전철길로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가운데 <탐라기행>과 더불어 <까마귀의 죽음>(소나무,1988)을 겹쳐서 읽었습니다. <나무를 안아 보았나요>(아르고스,2005)하고 <문명의 산책자>(산책자,2009) 또한 겹쳐서 읽고 있습니다. 어느 책이든 한달음에 읽어치우기에 너무 아깝기 때문입니다. 서른 쪽을 읽어도 ‘이런! 오늘 너무 많이 읽었잖아?’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스무 쪽 안팎만 조금조금 읽고 다음 책을 읽어 주고 싶은데, 사람들이 낑기고 찡기고 밟히고 밀리는 지옥철에서는 가방에서 다른 책을 꺼낼 수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쉰 쪽도 읽고 백 쪽도 읽습니다. 그러다가 읽기를 멈추고 책 앞뒤 빈자리에 글월 몇 줄을 짤막하게 적바림하기도 합니다. 책을 읽고 나서 느낌글 쓰기를 즐겨하고 있다 보니, 이 책들 말고도 요 한 달 남짓 전철길에서 ‘읽어치운’ 책들이 살림집 책상 맡에 잔뜩 쌓여 있습니다. 읽기는 끝없이 읽어댈 수 있는데, 느긋하게 책상 맡에 앉아서 느낌글을 갈무리할 겨를이 없습니다. 옆사람을 이웃으로 여기지 않는 고단한 전철길에서는 책이라도 쥐고 있어야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 책은 자꾸자꾸 읽는데, 어쩌면 이렇게 읽기만 되풀이하면서 외려 내 마음을 제대로 못 다스리지는 않느냐 싶습니다. 오늘은 아침길에 모처럼 자리를 하나 얻어서 앉는데, 제 옆에 앉은 젊은 사내가 팔짱을 굳게 끼고 당신 옆으로 몸을 부풀리며 혼자만 넓게 가려고 합니다. 이런 불쌍한 사람한테 한 마디를 할까 하다가 괜히 짜증 묻은 말이 나올까 싶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선 채로 갑니다. 그렇지만 옆사람을 들볶는 이 젊은 사내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합니다. ‘어차피 서서 가더라도 말 한 마디라도 해 주고 일어서야 했구나’ 하고 뒤늦게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아침저녁 출퇴근 또는 통학에 나서는 사람들은 사람을 사람 아닌 짐짝으로 여길 수밖에 없도록 시달리고 억눌리면서 사람사랑이나 사람믿음을 조금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새삼 느낍니다. 그런데 이런 악다구니 같은 도시에, 더구나 서울에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북적북적 모여 있습니다. 한손에 ‘진보’를 들든 ‘보수’를 들든 ‘중도’를 들든(요사이는 거짓 ‘진보-보수-중도’를 드는 사람이 퍽 늘었습니다), 저마다 좋아하거나 바라는 옳은 생각을 따르자면 도시 아닌 시골에 살 노릇이요, 평화와 안정과 민주와 복지와 통일을 헤아린다면 이 또한 도시 아닌 시골일 텐데, 아니면 도시살림을 시골살림처럼 가꾸어야 할 텐데, 아니 도시이고 시골이고를 떠나 두레를 하는 매무새와 어깨동무를 하는 마음가짐이어야 할 텐데, 왼쪽에서고 오른쪽에서고 넉넉함이나 느긋함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저부터 서울에 매인 주제에 이런 말을 늘어놓을 구실이 없다고 하겠는데, 고향 인천 골목동네에서 조용히 이웃과 어울리면서 살고플 뿐이지만 인천시는 2025년 도시계획을 새로 내놓으며 저처럼 아파트에서 안 살거나 못 살 사람은 다 내쫓으려 합니다. 이제는 아예 수도권에서 떠나 버릴 꿈을 꿈 아닌 삶으로 이루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20년을 안심하고 산다는 아파트’가 아닌 ‘200년을 걱정없이 살 작은 집’이 그립습니다.


최종규 1인 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 내는 사람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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