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쌀 대란’ 해결책

[편집인 레터] 김주언l승인2009.10.1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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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뜻하는 한자 ‘미’(米)는 벼 이삭을 본뜬 상형문자이다. 흔히 ‘米’자는 ‘八十八’로 파자(破字)된다. 노동집약적이며 잔손질이 많이 가는 벼농사의 특성을 표현한 글자로 풀이하기도 한다. 쌀을 생산하는 데 88번의 손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88세가 되면 미수(米壽)를 누렸다며 축하하기도 한다. 아무튼 쌀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식품의 하나이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대부분 지역에서는 쌀을 주식으로 한다. 과거에 쌀은 화폐 대용으로 쓰여 급여로 지급되기도 했다. 쌀은 한국인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예부터 ‘밥은 하늘’이라고 했다.

요즘 들어 또 다시 쌀이 문제다. 쌀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쌀이 남아돌아 값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쌀의 소비가 갈수록 줄어들고 수확량은 늘어나 이제는 쌀 과잉시대에 접어들었다. 1인당 연 평균 쌀 소비량은 10년 전 106㎏에서 지난해에는 75㎏으로 3분의 1 정도 줄었다. 쌀 수확량은 지난해 484만톤으로 평년(457만톤) 보다 훨씬 많았고, 올해에는 465만톤이 예상된다. 게다가 쌀 시장 개방을 유보하면서 매년 의무적으로 30만톤 이상의 쌀을 수입해야 한다. 연 평균 42만톤에 이르던 대북 쌀 지원도 이명박 정부 들어 뚝 끊겼다. 이처럼 쌀이 남아도니 쌀값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남는 쌀을 보관하는 데 1년에 2천~3천억원이 들어간다.

전국의 산지 쌀값은 지난해보다 10~30% 떨어졌다. 지난달 15일경부터 조생종 벼가 출하된 전북 남원과 순창에서는 벼 40㎏이 4만5천원으로 지난해 5만1천원보다 10%이상 떨어졌다. 강원 철원농협도 오대벼 ㎏당 수매가격을 지난해 1천650원보다 10%가량 낮은 1천530원으로 책정했다. 충북에서는 지난해 한 가마에 19만~21만원 하던 조생종 쌀값이 올해에는 13만5천~14만원으로 30% 이상 폭락했다. 농민들은 생산비도 건지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쌀값 폭락에 항의하는 농민의 분노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볏가마를 쌓아 놓고 쌀값 대책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아예 수확을 앞둔 논을 갈아엎으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여주군 농민회 소속 농민 60여명은 경기도 여주군에서 쌀값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논 2300여㎡를 갈아엎었다. 한국농업경영인 전남 연합회소속 농민 100여명은 전남 나주 남평읍에서 피땀이 배인 농토 2000여㎡를 갈아엎었다.

농민 단체들은 ‘대북 쌀 지원 재개’가 남북관계 회복과 화해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으며 남쪽의 쌀 재고량을 해소하고 쌀값 안정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민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식량을 안정적으로 담보하는 것이 농민의 과제”라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북한에 차관형태로 연 평균 42만톤의 쌀을 지원해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단 한 차례도 지원하지 않았다.
실제로 북한의 식량난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천400만 북한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식량난으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반 총장은 유엔 총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식량난과 헝클어진 보건 체계, 위생적 식음료 부족 등으로 북한 사람들의 인권 달성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유엔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의 공동 보고서는 올해 북한 인구 가운데 900만명이 식량 부족으로 기근에 시달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의 문제 해결 접근법은 다르다. 북한에 대한 쌀 지원은 아예 꿈조차 꾸지 않고 있다. 장태평 농식품부 장관은 쌀 막걸리, 쌀 국수, 쌀 라면, 쌀 케이크, 쌀 건빵 등 쌀 가공식품을 늘려 쌀 소비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가롭기는 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다양한 쌀 소비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맞춰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은 ‘쌀 막걸리’ 타령과 ‘설렁탕 국수 쌀로 대체’ 운운했다고 한다. 문제의 본질은 제쳐두고 곁가지만을 훑고 있는 셈이다.

대북 쌀 지원은 북한의 식량난 해결이라는 인도적 차원과 남한의 쌀 재고 해소라는 경제적 차원이 결합한 ‘상생의 길’이다. 농민들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책으로 상생의 길이 막힘으로써 ‘쌀 대란’이 촉발되었다며 대북 쌀 지원 재개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여권 지도부는 대북 쌀 지원을 놓고 연일 다른 목소리를 내며 집안싸움을 벌였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대규모 식량 지원은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을 벗어나는 범위”라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이명박 정부는 실효성 없는 ‘그랜드 바겐’과 ‘원 샷 딜’만을 되뇌인다.

누런 가을 들판은 풍요롭지만 농민의 시름은 이제 시작이다. 혹한을 맞는 북한 동포들도 ‘고난의 행군’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는 대북 쌀 지원이 남한의 농민과 북한의 동포를 돕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쌀을 뜻하는 미(米)자는 아름다움(美)도 함축하고 있다.


김주언 편집인

김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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