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과 책읽기

책으로 보는 눈 [100] 최종규l승인2009.10.1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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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거나 덜 읽는다는 소리가 높으면서도 새로운 책은 꾸준하게 쏟아집니다.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면 새로운 책을 쏟아낸다 한들 책을 팔기 어려울 텐데, 크고작은 출판사에서는 새로운 책 빚어내는 일을 그치지 않습니다. 바쁘고 힘들고 돈이 없다는 여러 가지 까닭으로 책을 안 읽거나 덜 읽는 요즈음 사람들인데, 새로 쏟아지는 책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더없이 싱그럽고 훌륭한 책이 있는 가운데 돈맛을 노리고 있는 ‘얄딱구리’하고 얕은 책이 있습니다.

어린이책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선배가 ‘얼마 앞서 나온 새책’이라면서 한 권을 선물로 줍니다. 고맙게 받아들이며 전철길에 읽어 봅니다. 줄거리는 괜찮고 짜임새 또한 알뜰하다 싶으면서도 ‘이쯤 되는 눈높이 책을 굳이 한국말로 옮겨야 했는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지난날 우리 나라에는 ‘읽을 만하거나 읽힐 만한 어린이책이 드물었다’고 하겠으나, 오늘날 우리 나라에는 ‘나라밖 훌륭한 작품이 거의 빠짐없이 옮겨지기도 했으나, 나라밖 고만고만한 작품마다 거의 훑어가면서 옮겨내고’ 있기도 합니다.

바쁜 틈을 내어 헌책방 마실을 합니다. 고작 이삼십분밖에 둘러보지 못하는데,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책이 눈에 뜨입니다. 몇 달쯤 앞서 ‘가벼운 입놀림과 몸놀림’ 때문에 적잖이 말썽거리가 된 황석영 님이 1993년에 낸 책입니다.

예전에 이 책을 읽은 적이 있으나, 잘 들고 다니며 읽다가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고는 그만 놓고 나와서 잃어버려 없기에 이참에 새로 장만합니다. 이분 책을 다시 읽고픈 마음은 없었으나, 문득 궁금했습니다. 열 몇 해 앞서 황석영 님은 어떤 말마디로 우리 앞에서 기나긴 이야기를 풀어 놓았을까 하고. 이분 삶은 예전과 오늘이 얼마나 다른가 하고. 어쩌면 먼 지난날부터 속없는 짓을 일삼았는데 우리들이 제대로 느끼거나 깨우치지 못한 대목이 있지 않은가 하고.

만화쟁이 박희정 님의 ‘첫 번째 짧은만화 모음’인 <만화가네 강아지>(1996)를 읽고, 어린이놀이를 살피는 편해문 님 ‘첫 번째 사진작품 모음’인 <소꿉>(2009)을 읽습니다. 만화도 읽고 사진도 읽습니다. 저로서는 그림도 읽고 글도 읽습니다. 글만 읽지 않습니다. 만화도 읽어내야 한다고 느끼고 사진도 읽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이 아니라 속에 담아 놓은 속말과 속삶과 속알맹이를 차근차근 읽어내야 비로소 책읽기다운 책읽기를 하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엊저녁 사진잡지 일꾼과 어린이책 출판사 일꾼하고 어울리며 술을 한잔 걸치고 느즈막하게 집으로 돌아옵니다. 거의 막차라 사람이 엄청나게 붐볐는데, 사람물결에 휩쓸리다가 그만 엉뚱한 역에서 내려야 하고 맙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차가 끊어질까 걱정입니다. 집에서 홀로 아기를 보는 옆지기가 근심입니다.

아주 고단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옵니다. 두 식구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습니다. 옷을 훌렁 벗습니다. 씻을 기운은 없으나 이튿날 아기와 옆지기가 먹을 죽을 끓일 쌀을 씻어서 불립니다. 가을날이 쌀쌀하다지만 저는 알몸이 되어 이부자리로 파고듭니다. 밤나절 아기가 퍼뜩 깨어 아빠 머리를 붙잡고 옹알이를 오래오래 합니다. 한참 옹알이 주고받기를 하다가 스르르 잠이 듭니다. 집살림과 아기보기도 책읽기입니다.


최종규 1인 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 내는 사람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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