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대한민국’의 눈물

[편집인 레터] 김주언l승인2009.10.1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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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두환 신군부는 1980년 언론사상 최악의 폭거인 언론사 통폐합을 마무리하면서 11월 30일 고별방송을 하게 되어 있던 DBS와 TBC에 ‘고별방송에 관한 지침’이라는 희한한 지침을 내려 보냈다. 단순한 고별인사만 하고 감상적 내용을 배제하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이러한 지침에도 불구하고 TBC TV의 고별 프로그램에서 가수 이은하 씨가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라는 노래를 부르다가 울어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이은하는 그 이후로 3개월간 방송출연을 정지당했다.

#2. 그로부터 30여년 가까이 흐른 2009년 10월 12일. KBS로부터 축출당한 방송인 김제동씨가 KBS TV의 ‘스타 골든벨’ 마지막 녹화에서 끝내 눈물을 흘렸다. 프로그램 녹화가 끝난 뒤 공동 MC 전현무씨는 침통한 목소리로 “그동안 토요일 저녁이면 함께 했던 김제동 씨가 오늘로 마지막 방송을 하게 됐다”며 꽃다발을 건넸다. 김제동 씨는 잠긴 목소리로 “4년간 함께 해준 제작진과 시청자들에게 감사하다”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고정패널 정주리 씨와 MC 이채영 씨 등이 눈시울을 붉히면서 녹화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거의 30년을 사이에 두고 나타난 ‘슬픈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전두환 정권은 물리적 폭력을 앞세워 언론사 통폐합을 통한 방송장악을 완성했다. 이명박 정부는 물리적 폭력을 들이대는 대신 우회적인 방식으로 방송을 장악하려 한다. 정부에 비판적인 발언을 하거나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은 방송인을 솎아내 ‘MB 방송’을 만들겠다는 속셈이다. 이명박 정부에 코드를 맞추려는 공영방송사 고위간부들은 ‘너무 오래해 식상하다’,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등의 ‘말도 되지 않는’ 이유를 들어 방송프로그램 진행자들을 일방적으로 교체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공영 방송사들의 프로그램 진행자 일방 교체는 줄을 이었다. 이병순 사장 취임 이후 KBS는 ‘문제있는’ 진행자를 교체했다. 지난해 가을개편 때 시사평론가 정관용 씨가 ‘심야토론’과 ‘열린 토론’에서 하차했다. 정 씨가 진보적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의 이사를 맡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가수 윤도현 씨도 ‘윤도현의 러브레터’와 ‘윤도현의 뮤직쇼’에서 물러났다. 윤 씨는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반대집회에 참석하는 등 비판적 성향을 보였다.

MBC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 정책을 따끔하게 꼬집는 클로징 멘트로 시청자들의 인기를 모았던 ‘뉴스데스크’ 앵커 신경민 씨가 4월 그만둬야 했다. 일부 보수단체에서 편향적이라며트집 잡고 있는 ‘100분 토론’의 손석희 씨도 11월 가을 개편 때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 라디오에서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진행자 김미화 씨도 촛불시위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퇴진 압박을 받고 있다.

김제동씨도 마찬가지였다. 김 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 추모공연의 사회를 맡았고 ‘노무현재단 출범 기념 콘서트’에 무대에 올랐다. 또 자신의 트위터에 ‘이란과 쌍용을 잊지 맙시다. 우리 모두가 약자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맙시다’라는 글을 올리는 등 사회문제에 적극적이었다. KBS는 교체이유가 김 씨의 비판적 성향 때문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지만, 대다수의 국민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며 정치적 보복임을 믿고 있다. 두 방송사 노조도 정치적 외압이 작용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들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은 하나 같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었다. 인터넷에서는 이들의 진행이나 발언에 공감을 표시하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이들이 또 어떤 언행을 보일까 두려웠던 것이다. 국민의 인기를 끄는 이들의 발언은 전파력이 크고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진행자들에 대한 일방적 교체는 다른 방송인이나 연예인들의 비판적 성향을 무디게 하려는 의도도 있다. 방송사의 일방적 결정에 저항할 힘이나 조직이 없는 이들은 ‘자신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떨며 언행을 조심할 수밖에 없다. 방송에서 정치적 반대 목소리를 없애 이명박 대통령을 찬양하기만 하는 ‘MB방송’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KBS가 이병순 사장 취임 이후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됐다. ‘신뢰도 1위’ 자리를 MBC에 내주었다. 이제 이명박 정부는 엄기영 MBC 사장의 목에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친여인사 일색인 방송문화진흥회는 ‘시사매거진 2580’, ‘PD 수첩’ 등 비판적 성향을 가진 프로그램의 통폐합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손석희 씨와 김미화 씨의 교체 움직임은 엄 사장이 방문진 이사들의 요구에 휘둘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이다.

이에 대해 MBC노조는 ‘진행자 교체는 결국 권력에 대한 굴종이요 눈치 보기’라고 비판했다. 한 누리꾼의 지적은 정곡을 찌른다. ‘옆집 구봉숙네가 MB정부에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마봉춘이도 따라 하다니… 청기와 사는 영감님들만 무서운 게 아니란 걸 아셔야죠.’ 공영방송은 정권의 소유물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재산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급락하고 있다.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발표한‘세계 언론자유 지수’에서 한국은 2007년 39위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인 2008년엔 47위로 8계단이나 떨어졌다. 한국을 방문해 이명박 정부의 대언론 실태를 조사한 RSF의 뱅상 브로셀 아시아 담당국장은 “조만간 발표될 세계 언론자유 지수에서 한국은 몇 단계 더 하락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의도를 외국인들이 더 잘 알고 있는 셈이다.


김주언 편집인

김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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