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부러운 ‘내 인생의 첫 수업들’

[울림있는 책] 강상헌l승인2009.10.26 15:04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시민들에게 보내는 기억과 대안
울림있는 책 <내 인생의 첫수업>

그 열혈(熱血), 하마터면 델 뻔했다. 겨우 자기 앞가림이나 하고 사는 주제가 부끄러웠던 탓이다.

안온(安穩)한 학창, 어버이를 기쁘게 하고 싶었던 얌전한 대학 새내기의 상식이 군홧발의 폭력에 뒤집어지던 그 날을 그는 끝내 잊지 않고 살고 있었다. 아마 회갑 나이 부근에 이르렀을 그가 여태 지니고 산, 붉고 뜨거운 피를 뿜어 올린 심장의 용솟음을 읽은 그날 밤을 필자는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그날 새벽이 되어서야 풀려나와 내 작은 자취방에 돌아와 펑펑 울었다. 내가 한갓 군홧발에도 자근자근 짓밟힐 수 있는 나약하고 하찮은 존재라는 것이 너무 슬퍼서, 그 비참함에 울었다. 나라란 나를 지켜준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배운 첫 수업이었다. 정부도 군대도 경찰도 나를 짓밟는 무서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배운 거였다.’

이런 ‘배움’을 그는 어떻게 자신의 삶에 적용(適用)하였던가.

‘…나는 다짐하였다. 권력이 부당하게 국민을 짓밟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그 새벽 나는 처음으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 뒤로 오늘까지 사람이 온전하게 대우받는 세상을 향한 미완의 꿈은 오늘도 내가 살아가는 중요한 존재 이유이다.’(‘군홧발 아래서 배운 민주주의’ 이학영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시민사회를 위한 절대적인 헌신(獻身)으로 삶의 뜻을 삼는 이들을 이 책은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사회 디자이너’라고 정의했다. 박원순 씨가 자신을 소셜 디자이너라고 칭한 것을 염두(念頭)에 둔 것이리라.

명칭이 어떤 것이던 간에 이들에게 우리는 빚을 지고 산다. 이 책은 그 빚의 구체적인 명세표인 셈이다. 시민운동과 시민운동가들에 대한 우리 사회 일부의 비뚤어진 시각과 험구(險口)에 대한 경쾌한 대답이라고나 할까.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들의 삶의 모습은 들여다보니 또 새로운 경지(境地)였다. 서너 명도 아니고 53명이나 되는 그 빚쟁이들을 감당하기가 어찌 쉬운 일이었을까, 책을 들고 내내 속으로 ‘고맙소’, ‘참 고맙소’를 연발(連發)해야만 했다.

처음 들어보는 스승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 얘기는 그 때를 짐작할 수 있는 나이인 이 제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독일어를 더 잘하게 된 이유가 가난 때문이었다니, 또 당신이 세상에 진 빚이 얼마나 큰 것인지 등을 토로(吐露)하는 낮은 목청에서 대한민국의 생명농업과 환경을 새롭게 디자인한 동력(動力)을 새삼 다시 읽었다.

‘…그 때 오종근 한문선생님이 오시더니 근처 당신의 댁에 가서 사모님께 쪽지를 전해달라고 하셨다. 눈물을 훔치며 달려간 나에게 사모님은 돈을 담은 누런 봉투를 주시며 얼른 서무과에 가서 의무금을 내라고 하셨다. 내 인생은 이렇게 빚을 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돈을 못내 못 본 독일어 시험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험을 다 볼 수 있었다.’(‘아직도 갚지 못한 인생의 빚’ 김성훈 환경정의 이사장)

자신의 병(病)을 터전으로 고달픈 모두를 돕는 역할을 해 낸 이 인사의 위무(慰撫)와 노고는 ‘동료’ 환자들에게 참 큰 힘이 됐겠다.

‘…병은 내게 가장 강력한 첫 수업이었다. 이 병은 나를 질병의 ‘당사자’로 만들고 시민운동을 구체적인 삶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환자의 ‘관점과 입장’을 만들게 했다.’(‘백혈병에서 살아남기’ 강주성 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

언젠가 나이 지긋한 택시 운전사가 라디오 뉴스를 들으며 “박원순이란 사람, 대통령 하고 싶어서 저러는 거 아니요?”하고 물었다. 이런 질문, 특히 택시에서의 이런 대화를 싫어하는 성격인데도 필자는 대뜸 “그 양반, 뜻 그릇은 큰데 욕심 그릇이 적어서 대통령 쯤은 생각조차 안 할 거요”하고 답해줬다. 허망한 취객(醉客)이라고 여겼겠다. 그 ‘문제의’ 박 변호사가 이 책에서 직접 대답했다.

‘…시민운동가가 된다는 것은 온갖 영역에서 팔방미인이 되지 않으며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돈도 벌어 와야 한다. 이런 이중고에서 해방되기가 어렵다. 월급은 없거나 작게 받는다. 그야말로 풍찬노숙의 길을 걷던 독립운동가나 다름이 없다.’(‘고난의 수업은 계속된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풍찬노숙(風餐露宿), 바람을 반찬 삼고 한데서 잔다는 말이 ‘대통령 생각 하는지도 모르는’ 명사(名士)에게 가당키나 한 표현인가? 박원순은 ‘뻥’이 센 사람인가? 뜻은 곱지만, 얼마나 배고프고 식구들 자손들 못살게 하는 것이 독립운동 아닌가. 참 못 믿을 쪼잔한 사람일세. 이런 생각이 어쩌면 일반 시민들에게는 가능할 것이다. 생각의 차이, 그 괴리(乖離)는 심각할 수 있다.

시민사회운동의 여러 모습을 꽤 오래 지켜봐온 고참기자의 생각으로는 이런 ‘대중(大衆)’들의 생각에 운동가들 스스로의 탓도 없지 않다. 민초(民草) 풀뿌리 인구들과 부대끼며 그들의 동의와 사랑을 얻어내고, 그 토대에 굳건하게 선 것이 아닌 이상 지금의 ‘이름’이 사상누각(砂上樓閣)은 아닌지 저어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더 많이 자신의 상황을 알리는 노력도 부족하다는 느낌을 오래 가져왔다. 이 부분 변화는 여전히 없고. 이 책의 출간은 그들도 스스로 이런 ‘부족’을 보완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인가. 구차한 느낌 들 정도로 솔직한 고백이 마음을 흔들기도 했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이 인사(人士)가 있어서 내심 안심이 된다는, 좀 비겁하고 엉큼한 생각을 가능하게 해주는 이들, 특히 전두환 정권의 언론 보도지침을 폭로한 <시민사회신문> 김주언 편집인이나 ‘파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과 같은 언론 동네 ‘동업자’들의 얘기도 반가웠다. 어찌 그들뿐이랴?

그들 삶의 전환점(轉換點)이 된 귀한 수업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축복이었겠다. 그 수업의 교훈(敎訓)을 내내 지니고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더 큰 축복이었겠다. 그러나 가장 큰 축복은 이 사회 디자이너들의 헌신으로 행복(幸福)을 누리는 필자를 비롯한 우리 시민들의 몫이다. 이 책 <내 인생의 첫 수업>은 우리 사회의 시민운동가들이 그들의 언덕인 시민들에게 보낸 유쾌한 인사다.

강상헌 논설주간.한자교육원 예지서원 원장

강상헌  @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상헌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회장·논설주간 : 강상헌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