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대학에서 신입생이나 졸업예정인 학생들에게서 동문회비를 걷고 있습니다. 연세대와 이화여대는 졸업증이나 학위증을 담보로 동문회비를 강제로 걷고 있고, 올해 초 서원대에서는 신입생의 등록금에 동문회비를 포함했다가 총학생회의 반발로 무산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06년 경기대에서 신입생에게 동문회비를 거두는 것이 불법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고, 현재 경기대에서는 졸업예정자들로부터 자율납부로 걷고 있습니다.
지금 고려대 등록금에는 ‘필수납부’와 ‘선택납부’ 영역이 있으며 전자에는 입학금, 수업료, 보건비 등과 함께 교우회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후자엔 의료공제비와 학생회비, 교지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필수납부’ 영역에선 그 어떤 항목도 제외하고 등록금을 납부할 수 없으며 ‘선택납부’ 영역에선 학생이 원하는 항목만을 선택하여 납부할 수 있습니다.
왜 등록금에 교우회비가 포함되어야 하는 겁니까? 졸업예정자는 졸업을 앞둔 ‘재학생’이지 아직 졸업생도, 교우회(동문회, 동창회)의 회원도 아닙니다. 재학생이 학생회비 내는 것은 ‘선택’이고, 교우회비 내는 것은 ‘필수’라는 것은 넌센스 중의 넌센스입니다.
왜 특정한 목적을 갖고 있는 단체(교우회)에 가입하는 것이 졸업과 동시에 ‘자동’으로 되어야 합니까? 100번 양보해서 자동가입 되는 걸 인정한다 해도 아직 가입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비를 내야 한다는 건 정말 부당한 일입니다. 아마 어떤 학우들은 졸업 후 고려대 교우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 수도 있겠지만 어떤 학우들은 교우회가 뭔지도, 졸업 직전에 교우회비를 낸 사실도 모르면서 교우회와는 전혀 관련 없는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대학시절 나의 과반이나 동아리 선후배들, 소모임 동기들이 졸업 이후에도 더욱 친밀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학교와 교우회에서는 이렇게 모은 교우회비를 장학금 지급, 교우회보 제작 및 발송, 모교 후원 사업에 쓴다고 하는데, 누가 나쁘다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이 좋은 일도 교우회에서 하는 일일 뿐, 좋은 데에 쓰이는 돈이라고 해서 단체에 가입도 하지 않은 재학생에게 회비 납부를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회비가 얼마나 좋은 곳에 쓰이고 얼마나 투명하게 쓰이는지는 교우회가 나서서 홍보하고 공개해야 할 문제이며 가입의사를 묻는 것도 교우회가 직접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등록금에 포함된) 교우회비를 납부했던 때만큼 그렇게 쉽게 예결산 내역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올해 8~9월에 마지막 학기 등록을 앞두고 몇몇 (졸업예정인)학생들이 교우회비와 관련하여 재무부에 문의하고 항의했습니다. 재무부에서는 교우회비 ‘필수납부’에 대한 학생들의 항의가 있어서 “‘분리납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당연히 검토해야 할 문제지요. 그러나 그 ‘검토’가 언제쯤 현실이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애초 “일단 내고 교우회로부터 직접 환불받으라”고 했던 답변은 항의를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했습니다.
교우회에서는 이미 납부한 교우회비를 쉽게 환불해줄 수 없다는 내용의 답변을 했고, 재무부가 학생들에게 잘못 답변하고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낼 때는 등록금의 ‘필수’ 납부 내역이고, 환불받을 때는 교우회관에 직접 찾아가 담당자와 면담을 거쳐야 하는 상황이라니요! 고려대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을 총괄하고 있는 재무부가 이렇게 무책임한 답변만 늘어놓았으니 이후 ‘분리납부’를 검토하겠다는 말에도 큰 신뢰가 가질 않습니다.
재무부는 궤변을 하고 교우회는 책임을 떠밀어 왔습니다. 이런 황당하고도 부당한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는 1~3학년 학우들이 머지않아 겪게 될 일이 될 것이며 매년 반복되는 문제가 될 것입니다. 교우회 가입과 회비 납부에 대한 지금의 등록금 수납 체계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단체에 가입할 수 있으며 그 행위엔 언제나 개인의 의지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상식을 뒤집는 것입니다. 교우회가 어떤 사업을 하고 있으며 교우회비가 어떤 곳에 쓰이는지는 두 번째 문제입니다. 교우회 가입과 회비 납부에 대한 개인의 의사를 무시하는 고려대학교의 등록금 수납 체계는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
박장준 고려대 총복학생협의회장
박장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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