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 아닌 창조가 대안이다

[내 인생의 첫 수업] 조희연l승인2009.11.09 11:51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우리의 삶에서 작은 대화가 뭔가 충격을 주고 뇌리에 계속 남아서 이후 삶의 화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수년 간 고민하고 있고, 인식과 실천의 화두로 삼게 되는 작은 대화가 있었다.
 

필자에게 우리 스스로 대안을 찾는 길에 대한 고민을 안겨준 ‘멀티버시티’의 회보.

하나는 인도에서 온 교육운동가를 만난 일이다. 이 사람은 ‘멀티버시티’(Multiversity)라는 운동을 하는 친구였다. 일종의 주민 사회과학학교 같은 것이었다. 그는 자신들이 발행하는 회보를 보여주었다. 그 제목은 ‘왜 유럽사회과학을 아시아인들에게 가르치는가’(Why Teach European Social Science to Asians?)였다. 그러면서 한 사례를 이야기해주었다.

한 교수의 실험인데, 민중들에게 비판사회과학적 사유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 맑스, 베버나 뒤르켐 등과 같은 서구의 근대 사상가들의 지식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자신들의 전통사상 중에서 비판사회학적인 사유의 소재를 찾아서 강의하고 토론한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참 특이한 이야기를 하는구나. 사회학을 하는데 맑스, 베버와 뒤르켐을 하지 않고 할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후 이 친구와의 대화가 계속 내 머리 한구석을 떠나지 않았다.

식민지 경험을 한 비(非)서구사회에서는 사회과학적 교육을 하는데 서구근대의 비판적인 사유를 가르치는 것으로 출발한다. 심지어 비판적 사유와 진보적 운동을 하는 경우에도 서구의 비판적 사상이나 이론을 도입하여 적용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한국의 사회과학 교육-비판적인 사회과학 교육도 마찬가지인데-에서도 서구의 근대사상가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사실 내 자신을 포함하여 개인적으로도 80년대 이후 주요 진보적 학술연구자들 대부분은 서구의 비판이론을 소개하는 일이 비판의 확산에 기여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서구비판이론 소개에 상당부분 역량을 투입했다.

그러나 정작 한국이나 아시아 등과 같은 비서구의 전통 사상을 현재의 진보적 실천이나 논의들과 연계시키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 친구와의 대화는 두고두고 내 마음 한구석에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의 전통적 근거들을 사고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다른 하나의 경험은 90년대의 경험이다. 미국 LA에 교환교수로 가있을 때의 일이다. 처음 미국에 갔기 때문에 더 많이 영어를 배우고, 더 많이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서 남가주대학교(USC)와 UCLA의 두 대학을 오가면서 많은 강의를 청강하고 있었다. 그때 ‘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지오바니 아리기(G. Arrighi) 교수의 세계체제변동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일종의 초빙강의였다. 강의 후반부에 ‘세계체제와 노동의 변화’라는 부분이 있었다.

이 강의의 토론과정에서 내가 그 교수에게 “현재 세계체제의 구조가 변화하고 있는데 당신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과 같은 주변부 사회에서 노동운동의 향후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질문하였다.

사실 외국의 유명한 학자들이 한국에 오면 우리가 그 강의를 듣고 대개 이런 식으로 질문을 한다. 이 질문에 대해 그 학자는 답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로 당신이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노동운동이야말로 현재 주변부에서 가장 역동적인 운동이고, 이 운동의 향방이 어떤 의미에서 전 세계 노동운동의 향방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강의가 끝난 이후에 멍한 상태로 1시간 정도 캠퍼스의 벤치에서 부끄러운 얼굴로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작은 대화에서 큰 깨달음

현재 서구의 인문사회과학계에서는 탈식민주의(de-colonialism)가 하나의 중요한 비판담론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물론 나는 반드시 학문적인 차원에서의 탈식민주의, 지적인 탈서구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시민사회에서의 어떤 창조적 시각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요즘 한국의 사회운동과 시민사회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서구 모방적인 운동을 넘어서서 한국적 특수성으로부터 이루어지는 창조적인 운동이 가능한가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결론적인 하나의 생각은 우리가 서구의 운동, 서구의 의제들, 서구의 제도들을 모방하고 이식해서 사회진보를 달성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새로운 대안적 모형을 우리가, 우리의 고투 속에서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꼭 시민사회운동만 아니라 우리사회 모두가 ‘모방적 사고’ 만으로는 전진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해 있다고 생각된다. 60년대 이후 한국의 근대화는 기본적으로 모방적 사고에 기초해 있었다. 서구적인 의미에서의 ‘서구=선진, 비서구=한국=후진’의 등식 속에서 우리의 후진적 제도·문화·역사·생활양식·제도 등을 가능하면 빨리 척결하고 서구의 선진적인 것을 빨리 습득?모방?이식하는 것이 성공의 전략이었다. 이 점은 시민사회운동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보자. 90년대 이후 시민사회운동의 주요한 의제는 ‘시민의 사법참여’였다.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줄기차게 이를 추진해왔고, 현재 배심제 형태의 모델이 시행되기 전에 예비실험을 하고 있는 단계이다. 그런데 여기서 당연히 실현해가야 하는 모델은 서구모델이었다. 미국식의 배심제와 일본 등의 참심제가 당연히 선진제도모형으로서 상정되고, 이를 도입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됐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배심제적 형태가 관철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시민의 사법참여라는 점에서 중대한 진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배심제와 참심제를 실현하는 어느 사회에서도 그 제도를 이상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두 제도 모두에 대해서 문제와 한계를 지적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여기서 나는 배심제와 참심제를 넘어서서 시민사법참여의 더욱 선진적인 형태를 우리가 상상하고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제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이 서구의 어떤 모델을 이상적인 모델로 상정하고 추진하는 단계는 넘어서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 ‘시민사회 사법참여’를 가능케 하는 시민권력은 우리사회가 서구의 어느 나라보다도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더 높은 시민권력을 바탕으로 더 높은 제도를 창조하는 것도 가능하다.

90년대 로스쿨 도입 운동도 마찬가지이다. 로스쿨은 사법개혁운동의 일환으로 추진됐지만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좌초되었다가 결국 노무현 정부에서 실현되었다. 그런데 로스쿨은 분명 또 다른 문제들이 많다. 예컨대 로스쿨은 많은 이들이 우려하듯이 계급고착화의 첩경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사법엘리트’들을 양성하는데 있어서 훨씬 더 평등주의적인 모델을 한국에서 만든다는 사고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우리가 대개 ‘모방형’ 혹은 ‘이식형’ 사고에 서 있기 때문에 이러한 창조적 상상력이 제약된다는 점이다. 우리 시민사회운동의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의 병목지점은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창조적 상상력의 부족인지도 모르겠다. 대안적인 제도모형들을 안출(案出) 해내는 창조적 상상력을 갖는데 있어 중요한 사고의 전환은 대안적인 모델이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시민사회운동만 아니라 한국사회가 국가적 수준에서도 ‘대안 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다.

대안은 내 안에 있다

그런데 요즘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러한 대안은 우리사회 속에서 이미 존재하고 실험되는 많은 대안적인 맹아들이 발전하면서 탄생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현존 제도에 의해서 고통 받거나 그것에 대해서 문제를 느끼는 시민적, 민중적 주체들이 자기 삶의 현장에서 뭔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실험을 이미 하고 있다.

이 맹아들에 대해 적극적인 의미부여를 하고 그것을 확장해갈 때 비로소 대안이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한 선도적인 맹아들을 담지하고 있는 작은 영웅들이 우리 주위에 있다. 또 현대적인 어떤 제도모델의 맹아적인 사고들이 우리의 전통 속에 있다. 나는 이를 ‘우리 안의 보편성’이라는 다소 현학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그 제목으로 책을 낸 바도 있다. 있다.

우리사회 속에, 그 사회 속에서 고통 받고 살아가는 민초들의 다양한 고투(苦鬪) 속에, 그리고 그러한 고통의 집적(集積)인 우리의 전통사상과 현재적 현실 속에 대안적인 맹아들이 있다는 시각에서 우리 주위를 다시 돌아보자. 그럴 때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대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조희연 성공회대학교 통합대학원장

조희연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희연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회장·논설주간 : 강상헌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