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는 새로운 철학이다-데리다[2]

철학여행까페[85]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9.11.09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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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텍스트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해서 언어와 독립된 실재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우리가 언어를 사용할 때 상정하고 있는 언어의 대상 또는 실재는 없을 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 언어의 의미와 실재 사이에는 관련이 없다. 언어는 실재와 상관없이 텍스트 속에서 자유롭게 놀이를 하며 그 의미가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동희
데리다

데리다는 텍스트에 대한 해체적 독해를 통해 기존의 확정적이고 고정된 텍스트의 의미를 해체해 의미가 끊임없이 유동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과정에서 하나의 진리가 아니라 복수의 진리가 드러날 수 있다. 기존 사유 체계와 의미에 대한 이러한 데리다의 해체적 작업은 종종 대책 없는 철학의 부정으로, 아니면 허무주의적인 운동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데리다에 따르면, 해체는 파괴가 아니라 기존 사유 체계의 한계를 교정하는 것이다. 해체론은 로고스 중심적인 전통을 구성하는 언어, 개념, 범주 등의 검증이라 볼 수 있다. 그는 해체가 긍정적이며 변형의 잠재력을 갖춘 독해방식임을 강조한다.

잠재력 가진 독해방식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학문 체계를 세우는 방법을 순수이성의 건축술에 비유한 바 있다. 그에게 건축술은 “하나의 이념 아래서의 다양한 인식의 통일”을 뜻한다. 형이상학적인 ‘하나의 이념’은 철학이라는 집을 유지하는 원리이자 뼈대이다. 헤겔은 그러한 하나의 이념 하에 우주와 세계를 포괄하는 하나의 철학적 건축물을 짓고자 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 2부에서 서양 형이상학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내세웠다. 데리다는 하이데거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한 서양 형이상학의 해체를 주장한 것이다.

데리다는 전통적 철학이 추구해 왔던 철학의 목표에 대해 문제를 삼았다. 영미분석철학자들이나 논리실증주의자들이나 모두 철학의 목표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그것에 도달하는 방법이나 철학의 목표를 보다 더 분명하게 하는 것에 신경을 썼다.

그러나 데리다는 해체적 독법을 통해 그러한 철학의 목표를 해체하고자 시도한다. 데리다에게 해체는 철학의 방법론이 아니라 그 자체가 새로운 철학이라 할 수 있다.

데리다는 일본의 이주추(Izutzu) 교수에게 보내는 1983년 7월 10일자 서한에서 ‘해체’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해체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리고 한 가지 것으로 변형될 수 없습니다… 해체라는 단어에 반드시 붙어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기술적, 방법론적 은유가 어떤 영역(특히 미국의 대학 또는 문화적 영역)에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옆길로 새게 만들어 왔고 나쁜 길로 이끌어 왔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데리다의 책들은 그를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특히 그는 미국에서 환영을 받았다. 1972년부터 시작해서 데리다는 <조종>, <우편엽서> 등 중요한 책을 1년에 1권 이상 발간해 냈다.

이해부터 그는 파리와 미국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미국의 존스 홉킨스 대학과 예일 대학에서 정기적으로 강의를 했다. 프랑스보다 미국에서 데리다의 영향력은 커져 갔다. 그는 미국의 철학자들 보다는 문학 비평가와 이론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1979년에 그는 <에프롱: 니체의 양식>과 <살아가기: 경계선상>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 논문이 일종의 예일 선언문이라 할 수 있는 <해체론과 비평>에 수록되었다. 예일 학파의 구성원은 해럴드 블룸(Harold Bloom), 제프리 하트먼(Geoffrey Hartman), 힐리스 밀러(Hillis Miller), 폴 드 만(Paul De Man) 등의 비평가들이었다.

이들은 예일대학교 영문학과와 비교문학과에서 가르치며 서로 가까운 사이였다. 이들은 모두 자크 데리다의 추종자들로서 문학작품의 해석에 해체비평을 도입하여 고도로 이론적인 성격의 비평활동을 수행하였다.

이들은 함께 비평집을 내고, 서로 외형적인 면에서 유사한 공통점을 지녔어도 각기 독자적인 방법을 추구했다. 그러므로 예일 학파라는 이름 자체는 존재하고 있지만 사실은 해산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동희
하버마스와 데리다
반유대주의 논란


그들이 데리다를 이용했다는 혐의까지 낳고 있다. 데리다는 벨기에 출신의 폴 드 만과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만나 1983년 그가 죽을 때까지 관계를 지속했다. 데리다는 폴 드 만이 죽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폴 드 만을 위한 회고록>(Memoires: pour Paul de Man)을 썼다.

1988년에는 ‘Critical Inquiry’에 <Like the Sound of the Sea Deep Within a Shell: Paul de Man's War>를 썼다. 데리다가 이러한 글을 쓰기 전에 폴 드 만의 과거 전력에 대한 폭로가 있었다. 폴 드 만은 벨기에의 나치 점령 시절에 나치를 동조하는 신문에 200편 이상의 글을 썼고, 그 중 몇 편은 분명하게 반유대적이었다.

비평가들은 데리다가 폴 드 만의 반유대적 성격을 최소화했다고 비난했다. 몇몇 비평가들은 데리다가 반유대주의에 반대하는 발언을 해왔으며 드 만에게는 너무 관대했다고 지적했다. 1960년대에 데리다는 하이데거의 제자 쟝 보프레의 글이 반유대적이라고 해서 결별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데리다에 대한 미국에서의 평가는 높았지만 프랑스 국내에서는 아직도 냉담한 편이었다. 그가 1980년 폴 리쾨르의 후임 교수직에 지원했다가 실패했다는 것은 그러한 분위기를 반영한다.

1981년에 국제적으로 데리다를 주목하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그가 마약소지범으로 체코슬로바키아 당국에 체포된 것이었다. 그는 체코의 반체제 지식인들을 돕기 위한 얀 후스재단을 설립한 적이 있었다.

그는 1982년에 체코슬로바키아를 방문해 반체제 인사들이 주관하는 ‘비공식적’ 세미나에 참석했다. 그리고 카프카의 무덤을 방문했다. 그러나 체코 당국은 그에게 치욕을 주기 위해 마약 소지라는 야비한 죄명으로 체포해 구금한 것이었다.

데리다는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데리다는 1989년에도 바츨라프 하벨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이전에 체코슬로바키아의 표현의 자유를 위한 운동을 벌였었다.

1983년에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국제철학학교를 설립하고 초대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1987년에 미국 어빈 시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정규 교수가 되었다.

이동희
폴 드 만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자크 데리다

‘해체론’을 통해 문학, 건축, 영화, 패션에 포스트모더니즘의 바람을 몰고 온 데리다의 철학은 뒤늦게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 예술과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고, 캠브리지와 콜럼비아 대학 등 유수한 여러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에는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아도르노 상을 받았다.

그는 연구 이외에도 현실에 대한 참여를 꾸준히 해왔다. 사망하기 1년 전 까지도 그는 현실문제에 대해 발언을 했다. 조지 부시의 이라크 전쟁 승리 선언이 나온 직후인 2003년 5월에 그는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와 함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공동 선언문을 독일과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들에 게재했다.

이 선언문에서 하버마스와 함께 그는 이라크 전쟁을 “우리 스스로를 유인원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우리 시대 중요한 지성”

데리다는 2004년에 췌장암 선고를 받았다. 투병 중이던 그는 그해 8월 르 몽드와 회견에서 “나는 자신과 ‘싸움 중’이고 이는 무섭고 고된 싸움이지만 이것이 바로 인생이란 걸 안다”고 말했다. 2004년 10월 8일 그는 인생이라는 고된 싸움에 종지부를 찍었다.

데리다는 평생 프랑스 공립 대학교에서 어떤 교수자리도 제공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사망은 프랑스 대통령 미테랑에 의해 발표되었다.

“우리 시대 지성계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이 타계했다.”

평생 ‘해체론’ 때문에 반철학자 또는 허무주의자로 오해되어 온 데리다에게 한 기자가 물었다.

“당신은 자신을 철학자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점점 체계적으로 비처소 또는 비철학적인 처소를 찾아 나서게 되었습니다. 거기서부터 철학에 대한 의문을 제거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비철학적인 처소를 추구한다고 해서 반철학적 태도를 취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나의 핵심적인 과제는 이런 것입니다. 현재의 철학은 현재의 그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그 자신에게 나타날 수는 없을까? 그리하여 좀 더 독창적인 방식으로 그 자신을 반성하고 또 질문할 수는 없을까?”

<데리다 편 끝>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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