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반복은 과정이다

[책권하는 사회] 최윤도l승인2009.11.09 12:22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나는 국가와 자본의 반복강박적인 성질에서 유래한 반복은 폐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약 60년이라는 역사의 주기성에는 경제학적으로 근거가 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반복성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1990년대는 왜 60년 전과 닮은 것 같지만 다른 상태가 된 것일까? 내가 깨달은 것은 상황을 60년 전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그 배인 120년 전과 비교하면 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해, 1990년대와 닮은 것은 1930년대가 아니라 1870년대라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1880년대에 제국주의가 현재화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2000년 이후의 사태는 오히려 그런 시기와의 비교를 통해 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60년 전의 일은 그럭저럭 기억하고 있지만 120년 전의 일은 기억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어 현재 동아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태를 60년 전과 비교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어긋나는 일이 많기 때문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실례로 동아시아에서 중국, 대만, 한국, 북한, 그리고 일본 사이의 관계에 전전(戰前)의 문제가 이제 다시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현재는 진전했는가

그러나 그것만을 보고 있으면 현재가 전전과 얼마나 다른가를 보지 못하게 된다. 중국은 전전처럼 제국주의적 침략에 노출되고 분열된 상태가 아니며 이제 다시 정치, 경제적으로 거대한 존재가 되었다. 대만, 한국, 북한에 대해서도 같은 것을 말할 수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비평가인 가라타니 고진이 ‘종언’을 선언하고 다시 종언을 넘어서는 사유를 펼쳐 보여주어야만 하는 까닭이 담긴 책, <역사와 반복>(조영일 역, 도서출판 비)은 <근대문학의 종언>의 본편(本篇)이자 <트랜스크리틱>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헤겔적 개념인 ‘종언’이다. 그런데, 가라타니 고진은 이 책에서 ‘역사’와 ‘반복’이라는 관점에서 종언 문제를 완전히 재편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종언이란 역사에 있어 반복의 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이 말은 당연 ‘근대문학의 종언’에도 해당된다. 즉 한국문학이 ‘종언을 고했나, 아직 건재한가’라는 평면적인 물음만을 반복하고 있을 때, 가라타니는 그것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역사와 반복>의 압권 중 하나는 누가 뭐래도 마르크스 다시 읽기와 무라카미 하루키론이다. 전자는 그가 이제까지 보여준 마르크스 읽기(마르크스+칸트)와는 확연히 다른 접근법을 보여준다. 도식화하자면, 그것은 마르크스+프로이트 읽기라 할 수 있다. 후자는 ‘근대문학의 종언’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고 또 ‘근대문학 이후의 문학’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서 오늘날 가장 큰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 만큼 인구에 회자된 책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별 성과 없이 화제로 그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것은 ‘근대문학의 종언’이 문제가 될 때, 한국의 비평가들이 하나같이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는 것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가라타니 고진은 사상가다.”

이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여기서의 의미는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사상가로서의 가라타니 고진은 훌륭하지만, 비평가로서의 가라타니 고진은 그렇지 않다. 비약과 억측만으로 가득한 ‘근대문학의 종언’ 테제가 그 증거다.”

물론 이런 반응에는 가라타니 고진의 책임 또한 존재한다. 문제의 중요성에 비해 분량이 너무 적었던 것이다. 보는 이에 따라 근대문학을 논하는 데 있어서의 비약과 한국문학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의 억측에서 나온 주장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국문단은 “가라타니 고진은 사상가로서는 뛰어나지만, 비평가로서는 그렇지 않다”고 완곡한 평가를 내렸던 것이다.

‘종언’의 입체적 재구성

그런데 과연 가라타니는 비평가라기보다는 사상가인가? 그리고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는 문학을 떠나 철학(사상)으로 건너간 가라타니가 내뱉은 엉성하고 즉흥적인 발언에 불과한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은 바로 <역사와 반복>에 있다.

흔히 가라타니 고진의 주저로 <일본근대문학의 기원>과 <트랜스크리틱>, <세계공화국으로>가 이야기되는데, 알다시피 전자는 비평서이고 후자는 사상서이다. 따라서 ‘비평가냐, 사상가냐’라는 물음이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역사와 반복>에 있어서만큼은 이 물음이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책은 한편으로는 비평서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상서이기 때문이다. 아니, <역사와 반복>은 도리어 가라타니의 사상이란 그의 비평에서 나온 것이며 가라타니의 비평이란 그의 사상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그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것은 독자의 자유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어느 한쪽만 선택하게 되면 결국은 반쪽짜리 독해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사상가인가 비평가인가라는 구분은 어쩌면 한국적 상황에서나 통용되는 우문(愚問)에 불과하다.

최윤도 두리미디어 기획과장

최윤도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윤도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회장·논설주간 : 강상헌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