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중심은 아픈 곳입니다

수챗구멍에 떨어진 파 조각을 거두며
‘미운 놈 떡 하나…’ 속담의 메시지를

밤참을 먹으려고 라면 물을 올려놓고 파를 썹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잘게 썰어지는 비취색의 파뿌리가 참 곱습니다. 칼질이 서툴러서일까요. 가끔씩 싱크대 수챗구멍으로 튕겨져 나가는 놈들이 있습니다.

저걸 건질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칼질을 멈추고 수챗구멍에 떨어진 파 조각 몇 개를 건져 올립니다. 세상 어느 것 하나 가치 없는 것이 없다고 눈앞의 먼지 하나, 매일 빠지고 또 생겨나는 머리카락 하나에도 그 의미가 있을 거라는 사소한 자연의 이치를 그냥 한번 흉내 내어 보는 겁니다.

내가 끓이는 라면 그릇에도 섞이지 못한다면 파 한 조각이 지녀왔을 존재의미를 산산조각 내버리는 거라는 숨은 자책이 조금은 깔려 있습니다. 사실 내가 보내고 있는 짧은 시간 시간의 조각이, 또 늘 나의 발뒷꿈치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나를 따라오는 발자국 한걸음 한걸음이 내가 버린 파 조각처럼 쓸데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는건 아닌가 하는 작은 애정이 내가 건져올리는 파 조각 속에 있습니다.

작은 것 하나를 허투로 다루지 않는 일. 그래서 아주 작은 나로 그냥 머물러 있는 것도 꽤나 의미있는 일임을 깨닫는 일. 가끔씩 라면을 끓이면서 느끼는 나의 소중한 교훈입니다. 그래서 도마 위에서 튕겨져 나간 파를 주섬주섬 주워 끓인 라면은 더 맛있습니다

“파리는 괜찮습니다”

조안나 메이시라는 심층 생태학자이자 작가인 분이 티벳에서 겪은 어느 여름날의 이야기입니다. 메이시는 현지 불교신자들과 회의를 하면서 공예품 조합을 만들기 위한 계획을 통과시키는 데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파리 한 마리가 찻잔에 빠졌는데 메이시는 대수롭지 않게 건져내어 버리면 된다고 생각했지요.

초아겔 린포체라는 열여덟 살의 라마승이 동정 어린 눈빛으로 메이시 쪽으로 몸을 구부리며 무슨 일이냐고 물어왔습니다. 메이시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그저 찻잔에 파리가 빠졌다고 대답했지요. 린포체가 여전히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자 메이시는 스님이 자기가 걱정되어서 그러는 줄 알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거듭 말하며 찻잔을 옆으로 치웠습니다. 하지만 라마승은 계속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던 끝에 메이시의 찻잔에 손을 넣어 조심스럽게 파리를 건져내더니 방을 나갔습니다.

회의는 다시 진행되었고 메이시는 회의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다시 방에 들어선 린포체의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했습니다. 스님은 메이시에 다가가더니 파리가 괜찮을 거라고 조용히 말해주었습니다. 찻물에 흠뻑 젖은 파리를 문밖에 있는 잎사귀 무성한 나뭇가지에 내려놓고 파리가 날갯짓을 할 때까지 지켜보았다고 설명하고 이제 곧 파리가 날아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며 메이시를 안심시켰답니다. (조안 엘리자베스 록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중)

100명 중에 가장 재산을 많이 가진 1명에게 1천원을 주고 나누라고 한다면 가장 가난한 1명이 가질 수 있는 돈은 얼마가 될까요? 계산이 안 되지만 0.00…1원쯤 될 겁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 하고 있는 빈부 양극화의 모습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제일 가는 부자라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의 재산과 마이너스 통장 몇 개에 집을 저당 잡힌 우리시대 서민 가장의 재산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간극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꾸로100명 중 가장 가난한 1명에게 1천원을 줄 필요도 없이 1원을 준다고 가정해보면 그보다 부자인 나머지 99명은 최소한 1원 이상씩은 다 가지게 될 겁니다.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정한 4인 가족 최저생계비를 120여 만원에서 200만원 쯤으로 올리면 기초생활 수급자 보다 소득이 많은 모든 가구는 분배의 사회적 기준에 의해 200만원 보다 많은 소득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약자와 장애인들의 이동에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놓았습니다(아직 충분치는 않습니다만). 순전히 그들을 위한 장치이지만 반드시 노약자와 장애인만 그것을 이용 하진 않습니다.

출근길에 지각한 직장인도, 큰 배낭을 멘 여행객도, 유모차를 끌고 나들이 나온 애기엄마도 다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집도 절도 없이 거리를 헤매이는노숙인들에게 단칸방 집 한 채를 제공하면 그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은 몸 누일 집 한 채 씩은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거기에 소요되는 예산은 국가가 책임집니다. 많은 이들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서구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는 지금의 우리나라보다 훨씬 못살 때부터 그렇게 해왔고, 국민의 삶의 질에 관한 복지예산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요즘 들어 한명의 천재가 수천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재벌이 돈을 더 많이 벌어야 중소기업과 서민경제의 선순환이 일어난다는 이른바 ‘트리클 다운’ 이론을 빗대어서 하는 말이겠지만, 소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일컬어진 1997년 이후 10년 동안 가계 소득 증가율은 물가 상승분을 포함하면 거의 제 자리 걸음인 연평균 2.4% 인데 반해 기업소득 증가율은 18%를 웃돈다는 한국은행 통계치를 보면 가계와 기업 간의 소득 양극화가 심해지는 데도 기업 우선의 성장정책을 중심에 둔다는 것이 우리 서민들에게 얼마나 독이 되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평화운동가이자 사진작가인 이시우 씨는 “사람의 중심은 아픈 곳”이라고 했습니다. 새 구두가 맞지 않아 발뒷꿈치가 벗겨지면 아물기 전까지는 그 상처를 가장 많이 신경쓰게 됩니다. 무릎이든 어깨든 어디 한군데라도 아프면 모든 생활은 그곳을 보호하는데 맞추어 집니다. 손톱 밑에 큰 가시가 박힌 사람이 당장 병원에 가야 할 돈으로 멋을 내기 위해 매니큐어를 사진 않습니다. 두통이 심해 고개를 들 수 없는 사람이 약국엘 가지 않고 모자가게를 먼저 가진 않습니다.

지난 1월 20일 6명의 사상자를 내며 사회를 충격에 몰아넣었던 용산참사 사건이 일어난지 11개월 째를 맞고 있지만 문제의 매듭은 아직 풀지 못하고 있다. 정운찬 총리는 후보 시절 용산참사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고 했지만 해결의 진도는 나가지 않고 있다.

가장 많이 신경을 써야 하는 곳이 아픈 곳 입니다. 아픈 곳은 가장 약한 곳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중심이 이럴진대 사회의 중심도 아픈 곳, 약한 곳이어야 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한번만 돌아보면 감싸고 보듬어야할 상처가 곳곳에 널려있는 우리 사회에서 정부가 오히려 상처 입은 이들의 붕대 값마저 빼앗아 건장한 청년의 레저신발을 사서 신기는 일에 쓴다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고 치료비로 술을 사서 마시는 간암환자처럼 국가의 운영주체로써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경찰은 그들을 적으로 생각하였다. 20일 오전 5시 30분, 한강로 일대 5차선 도로의 교통이 전면 통제되었다. 경찰 병력 20개 중대 1천600명과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대테러 담당 경찰특공대 49명, 그리고 살수차 4대가 배치되었다. 경찰은 처음부터 철거민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한강로 2가 재개발 지역의 철거 예정 5층 상가 건물 옥상에 컨테이너 박스 등으로 망루를 설치하고 농성중인 세입자 철거민 50여명도 경찰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최후의 자위책으로 화염병과 염산병 그리고 시너 60여통을 옥상에 확보했다. 6시 5분, 경찰이 건물 1층으로 진입을 시도하자 곧바로 화염병이 투척되었다. 6시 10분, 살수차가 건물 옥상을 향해 거센 물대포를 쏘았다. 경찰은 쥐처럼 물에 흠뻑 젖은 시민을 중요 범죄자나 테러범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6시 45분, 경찰특공대원 13명이 기중기로 끌어올려진 컨테이너를 타고 옥상에 투입되었다. 이때 컨테이너가 망루에 거세게 부딪쳤고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이 물대포를 갈랐다. 7시 10분, 망루에서 첫 화재가 발생했다. 7시 20분, 특공대원 10명이 추가로 옥상에 투입되었다.

7시 26분, 특공대원들이 망루 1단에 진입하자 농성자들이 위층으로 올라가 격렬히 저항했고 이때 내부에서 벌건 불길이 새어나오기 시작했으며 큰 폭발음과 함께 망루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물대포로 인해 옥상 바닥엔 발목까지 빠질 정도로 물이 흥건했고 그 위를 가벼운 시너가 떠다니고 있었다. 이때 불길 속에서 뛰쳐나온 농성자 3~4명이 연기를 피해 옥상 난간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외쳤으나 아무도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 매트리스도 없는 차가운 길바닥 위로 떨어졌다. 이날의 투입 작전은 경찰 한명을 포함, 여섯구의 숯처럼 까맣게 탄 시신을 망루 안에 남긴 채 끝났으나 애초에 경찰은 철거민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철거민 또한 그들을 전혀 자신의 경찰로 여기지 않았다.”(‘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이시영 시, 이지상 곡)

소수자를 위하는 이유

어느 봄날 밭을 갈아 상추를 심었습니다. 모종을 옮기고 며칠이 지나니 대부분의 상추 모는 뿌리를 내렸는데 유독 하나가 시들시들 해집니다. 봄 햇살 따갑게 내려쬐는 날 반 바가지 밖에 없는 물을 들고 어디에다 줄까 생각 하다가 나는 다른 것처럼 튼실하게 자라주길바라는 마음으로 시들시들한 상추 모에 제일 먼저 물을 줍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는 속담에서 미운 놈은 자신에게 피해를 준 나쁜 사람을 뜻 한다기 보다는 공동체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수자(minority)를 의미한다고 봐야 합니다. 100명 중 가진 게 있어 평범하게 사는 여럿이 아니라 가장 가진 게 없어 피 눈물 흘리는 몇 명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구의 이해와 도움이 없이는 정상적 활동을 할 수 없는 이들에게 떡 하나 더 얹어주어 그 사회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는 공동체적 인식과 합의를 우리 조상들은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으로 표현 했던 겁니다.

파리의 생명조차 소중히 여겼던 초아겔 린포체의 마음은 그녀가 알고 있는 모든 생명에게 적용 됩니다. 수챗구멍에 빠진 파 한 조각을 건지는, 찻잔에 빠진 파리의 생명을 걱정하는 사람의 손길에서 아픈 곳을 반드시 중심으로 삼아야생존할 수 있는 사회의 모습을 봅니다.

“환자 1만명에게 약을 써서 3명만 듣는다면 그것을 약이라 할 수 있는가”라던 2500년 전 춘추전국 시대 묵자의 탄식을 온전한 9천997명을 놔두고 병이난 3명을 위해 약을 추렴하는 지혜로 바꾸어야 합니다. 사회 또한 미운 곳, 약한 곳, 작은 곳, 아픈 곳이 중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