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파병, 그 역사퇴행

[색깔있는 역사스케치] 정창수l승인2009.11.16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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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同盟)은 국가들이 상호보조를 취하는 정치상의 제휴를 말한다. 현대에 이르러 그 사례들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과거에도 그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1, 2차 세계대전은 동맹국끼리의 전쟁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어 일어난 사례다. 연합국과 동맹군들의 전쟁은 동맹이 단순한 보조를 넘어서서 운명을 건 싸움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국가의 틀이 먼저 잡혔던 동북아에서는 그 양상이 더 오래되고 복잡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각 국가들이 동맹관계를 활용해서 서로를 견제하기도 하였다. 합종연횡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어느 쪽이 자신들의 국가이익에 맞는가를 고민하고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동맹은 대개의 경우 허울뿐인 경우가 많다. 특히 전쟁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전쟁은 단순히 외교적인 문제를 떠나서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맹군을 결성한다는 것은 비용도 그렇지만 명분상에서도 한나라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이 있다.

동맹군을 가장 잘 활용한 것은 로마이다. 로마는 최고의 절정기에도 군대의 수를 30개 군단에 30만명 이하로 유지하였다. 그 정도가 재정적으로 감당 가능한 규모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로마군이 아니었다. 그 중 절반이 지배지역의 속주병이었다. 일종의 동맹군인 속주병들은 공을 세우면 로마시민이 될 수 있었으므로 충성심이 높았다.

로마는 브리타니아의 부디카 여왕의 반란이나 갈리아의 반란을 진압할 때 각각 100만명 이상을 학살하였다. 이때 다른 지역에서 온 동맹군들이 더 잔인하고 대규모적인 살육을 자행하였다. 원래 지배민족보다 용병과 같이 이해관계가 없는 경우가 더 잔인하기 마련이다. 중국의 이이제이 정책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동맹군 동원에서 가장 처절한 실패를 한 것은 나폴레옹이다. 당시 러시아는 대륙 봉쇄령을 어기고 영국과 무역을 지속하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이러한 러시아를 응징하기 위해 유럽 각국의 동맹군 등 65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원정에 나섰다. 그러나 러시아의 초토화 전술과 추위, 돌림병 등으로 인해 80일만에 모스크바를 점령했을 때 동맹군은 11만 명으로 줄고, 퇴각이 끝났을 때는 600명까지 줄었다. 대부분 유럽 각지에서 동맹이라는 허울로 억지로 끌려온 터라 하루에 5천명 이상이 탈영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를 원정할 때 소아시아의 그라니코스강에서 3만5천의 군대로 다리우스의 60만 대군을 격파한다. 원인은 그리스 군대가 강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페르시아 각지에서 동원된 동맹군들의 전투의지가 약하고, 지휘통솔에 문제가 많아 기동성이 뛰어난 마케도니아의 군대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동맹군을 동원하는 것은 전투의 도움도 있지만 명분의 필요성도 있기 때문이다. 청나라가 러시아와의 전쟁을 할 때 겨우 100~260명의 조선 동맹군을 바라고 원군을 요청한 것은 동맹으로서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잠재적으로 러시아와 우리의 관계를 적으로 규정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전에 원나라가 강남의 한족을 토벌할 때에도 고려에서 5만명이 동원되었다.

아무튼 대부분의 경우 동맹군은 쉽게 배신하고 이탈하였다. 그들의 목적은 국익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해외파병은 생각보다 많았다. 1479년 성종 10년 명나라로 부터 건주여진에 대한 토벌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논란이 벌어졌다. 이때 정효종이라는 하급관리의 상소가 이 논쟁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이웃마을에 싸움이 있으면 문을 닫아걸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라며 부득이 파병하더라도 봄으로 시기를 늦추고, 중국의 상황을 보아 천천히 하자고 한 것이다.

이렇게 조선 전기까지는 국가 실리에 맞추어 파병을 결정했다. 광해군이 명나라의 동맹군으로 참전한 강홍립 장군에게 적절한 중립을 지키라고 한 것도 그런 전통 속에서였기 때문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정창수 편집위원

정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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