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민들의 일상도 법에 의한 규율과 법절차에 따른 구제가 생활화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법원의 통계상 민사소송 사건의 80% 이상이 서민과 관련이 깊은 2천만원 이하의 소액소송사건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이 소액소송 중 변호사를 선임하는 비율이 5%를 넘지 않고, 대부분이 ‘나홀로 소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잘 알려지지 않은 현실이다. 2천만원 이하의 소액소송을 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당사자 입장에서는 변호사비가 너무 부담스럽고, 변호사 입장에서는 수고에 비해 보수를 많이 받을 수 없어 수임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나홀로 소송’은 대부분 당사자들이 법무사를 찾아 소장 작성, 준비서면, 답변서, 증거신청 등의 전반적인 절차를 안내받으며 진행하고 있으면서도 법무사에게는 소송대리권이 없기 때문에 법정에는 당사자가 직접 나가서 재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소송 경험이 많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리를 잘 몰라 상호 모순된 진술을 하거나, 판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절차를 잘 몰라서 이길 재판도 지는 경우가 많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생업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는 서민들, 판단력이 부족한 고령자, 구두진술능력이 없거나 미약한 장애우 등은 법정에 나갈 수 없어 억울하게 재판에 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법제도가 탄생한 이후 100여년 동안 변호사들이 외면한 민사소액소송을 실질적으로 담당하였던 법무사들은 2천만원 이하의 소액소송이라 하더라도 법정에서 법률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을 체험하였고, 변호사가 이 부분을 방기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전국 시군구 어디에서나 서비스가 가능하고, 보다 저렴하게 서비스가 가능한 법무사들에게 소액소송 대리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발의하였다. 그런데 17대 국회에서는 변호사들의 반대로 무산된바 있고, 18대 국회에서도 ‘소액사건심판법’ 개정안이 제출되어 있으나 통과가 불투명한 상태다. 변호사들이 이를 밥그릇 싸움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들은 소액소송은 돈벌이가 안 되어서 자신들이 하지는 않지만 소송대리권은 변호사들만이 가져야 하고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는 입장이다.
모든 시민의 재판받을 권리는 헌법상 보장된 권리이다. 변호인제도는 시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제도이다. 국가는 시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해줄 의무를 지닌다. 최소한 서민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민사소액소송에서만이라도 변호사를 선임할 형편이 안 되는 시민은 또 다른 법률전문가인 법무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해서라도 자신의 재산과 권리를 보호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넓혀 주어야 한다. 변호사들은 로스쿨제도가 시행되어 변호사가 많이 배출되면 이 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변호사 1만명 시대를 맞이하여 빚더미에 앉은 변호사가 속출하고 있지만 소액소송에서 변호사선임 비율이 변함없고, 로스쿨이 주로 국제 경쟁력을 갖춘 인력을 배출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진 현실에서는 변호사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시민의 생활법률부분에서의 이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소액소송 절차에서 법률전문가의 부재는 곧 실질적인 시민권의 부재를 의미한다. 따라서 ‘소액소송대리권’이라는 현재의 의제는 특정 전문자격자의 이해관계를 떠나 시민이 주체가 되어야 하며 시민의 재판받을 권리의 실질적 보장을 위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변호사나 법무사가 주체가 되어버린 이 논쟁에서 정작 당사자인 시민의 목소리는 아직 적극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오늘날 시민운동은 시민들의 생활에 깊이 천착하여 새롭게 변신해야할 과제를 안고 있다. 법조계와 관련한 그간의 시민운동이 피해자구제, 사법부패, 사법개혁 분야에서는 소송절차 개선, 법조인양성, 국민사법 참여제 등 거시적인 부분에 집중되어있었다면, 이제는 시민들의 생활법률부분과 같은 미시적인 부분에도 관심의 지평을 넓혀야 하는 때가 아닌가 한다.
구숙경 전국여성법무사회 회장
구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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