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시민행동’이 다음 10년을 바라보며 준비한 새로운 소통의 장인 ‘함께하는 시민학교’를 지난 18일 개강했다. ‘열린특강-개념있는 시민학교’란 타이틀로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과 사회적인 것들의 만남을 통해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망을 형성하고, 배운 것을 나누고 실천하는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생각이다. 시민사회의 교육활동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시민행동의 시민학교 첫 강좌는 ‘성찰’을 주제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진행했다. 두 번째 강좌인 ‘나눔’ 주제는 지난 24일 윤정숙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가 맡았다. 각각 ‘숲으로 가는길’, ‘변화를 꿈꾸는 새로운 상상력’이란 소제목을 달았다. <시민사회신문>은 이 두 강좌를 지상중계한다. 이어지는 시민학교 강좌도 함께한다. /편집자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생긴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합의하고 있는 거대한 오류가 실사구시입니다. 사실에 다가가서 참된 진리를 구하는 것. 그런데 사실은 이건 진리가 아니라 물리입니다. 사실에 다가가서 여러 팩트의 상호관계를 봐서 순위를 매기고 장애가 되는 것을 조정하는 것입니다.

만일 경제에 애로가 발생했다면 어떻게 조정합니까? 흔히 말하는 구조조정입니다. 사람을 내쫓고 비정규직으로 만듭니다. 다른 방식은 경제가 뭐냐를 묻는 것입니다. 경제라는 개념 자체를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발견되는 것을 진리라고 합니다. 우리는 물리적 대응방식에 익숙하고 그것이 옳다고 합의하고 있습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 차원에서는 진리 문제가 반드시 들어가야 합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다시 발로 사람을 이야기 해야 합니다.

제가 감옥에서 많은 다른 재소자 바라보면서 ‘저 사람은 왜 저런 죄를 저질렀을까? 결손 가정 출신인가?’ 하고 대상화해서 계속 분석하곤 했습니다. 그런 기간 동안은 왕따였습니다. 제가 그런다는 걸 사람들이 알기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난 내가 굉장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자위했습니다. 갇혀있긴 했지만 2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나고 보니, ‘나도 저 사람의 부모를 만나고 저 사람의 가정환경과 같은 상황에 처하면 나도 저렇게 되어 지금 여기에 있겠다’ 하고 납득이 갑니다.

가슴이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라고 할 때 머리에 손 얹고 생각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고 합니다. 어릴 때 해가 저물어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생각한 적 있지요? 가슴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건 그 사람을 내 세계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은 세계를 조직하고 참여하는 것입니다.

조직하고 참여하라

그러면 진리는 무엇입니까? 진리는 조직하는 것입니다. 불변의 초역사적 진리는 없습니다. E.H.카는 역사를 역사가가 조직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수많은 팩트 속에서 역사가가 취사선택한 것이 히스토리컬 팩트, 곧 사실(史實)입니다. 생각은 가슴이 하는 게 맞습니다. 시민운동, 사회운동도 머리로 하면 안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분석의 대상인지 공감받고 있는지 다 압니다.

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머리로부터 발까지의 긴 여행도 해야 하지만, 외부에 대한 사고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타성적 사고를 부단히 깨뜨려야 합니다. 외침을 받은 정부가 망명해버리자 버려진 노동자 농민들이 자신들의 정권을 꾸린 것이 파리 꼬뮨입니다. 파리 꼬뮨이라는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누구도 노동자가 정치적 역량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은 자신의 영토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탈영토화하는 것입니다. 영토화하는데서 자신은 갇힙니다. 변화는 외부에서 일어납니다.

고대 오리엔트, 이집트의 국가에 비하면 일개 마당 수준이었던 그리스 도시 국가에서 다음의 문명이 태어났습니다. 다시 로마 제국의 변방이던 프랑크왕국에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중세 문화가 꽃피었고, 거기서 볼 때 골짜기였던 네덜란드에서 근대 문화가 탄생했습니다. 미국도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왜 주변부, 외부가 새로운 문화의 산실이 되는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심부는 완고한 보수적 문화를 갖고 있어 새로운 사고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깥에 서야 합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마이너리티가 되어야 합니다. 교도소라는, 진정한 마이너리티 안에 있었기 때문에 제가 변화할 수 있었습니다.

마이너리티의 창조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 역사상 최고의 사상가이자 문장가인 연암 박지원은 노론 집안에 뼈대는 좋았지만 가난했기 때문에 열 여섯에야 처음으로 글공부를 했습니다. 처가에서 박지원을 사위로 맞고 보니 글을 모르길래 처삼촌에게서 글을 배웠습니다. 어릴 때 서당 체계에서 글을 배웠으면 그 체계에 갇혔을 텐데, 연암은 시원하게 뛰어넘었습니다. 다산은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는 그 시대에 그런 고민을 한 사상가가 있었음을 자랑하고 있습니다만, 당시에 다산은 강진 다산초당에 갇혀 있던 철저한 마이너리티였습니다.

변화하는 것은 실제로 참 어렵습니다. 요즘 사회단체 모임에서 늘 강조하는 것이 사고를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의 사고는 다 웹 2.0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사고는 여전히 웹 1.0입니다. 이번에 사회과학개론 수업하러 들어가보니 다 09학번입니다. 저는 59학번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촛불집회 때 보면 사회단체들이 깃발을 들고 나타납니다. 자기 조직, 존재론적으로 근대의 패러다임인 조직의 틀에 촛불이 이룬 성과를 퍼담으려고 고민하는 모습에 대단히 안타까웠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어딘가에 접속하려 합니다. 웹 1.0 세대는 서버에 접속해야 합니다. 그런데 촛불은 접속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서버가 됩니다.

공동체를 얘기하면서도 복고적인 공간 공동체의 개념으로 회귀합니다. 사람이 새로운 것을 사고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로베스피에르 같은 혁명가도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사고하지 못했습니만, 공간 공동체가 아닌 새로운 문맥으로 새로운 전형을 만들 수 없을까 고민해야 합니다. 양적으로 큰 모임 만든다고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마이너리티가 되려면 중심부에 대한 허망한 콤플렉스를 갖지 않아야 합니다. 가장 마지막까지 완고하게 남는 것이 콤플렉스입니다.

시대와 접속하길

콤플렉스를 청산하고 자기 자부심을 가지고 숲으로 갑시다. 나무의 완성은 숲입니다. 시민학교도 저는 작은 숲이라고 봅니다. 숲도 공간 개념에서 벗어나는 게 좋습니다. 이곳은 모였다 흩어지면서 움직이는 숲입니다.

처음 감옥 나왔을 때 모 시민단체에서 후원행사를 한다며 글을 써달라고 하기에 ‘여럿이 함께’라고 썼습니다. (유홍준 교수는 제 서체를 어깨동무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그 글을 보고 누군가 와서 그럽니다. 쉽고 글자도 크고 궁서체가 아니고 서민적인 서체라서 다 좋은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고, ‘여럿이 함께’라는 방법만 있고, ‘무엇을 위해’라는 목표가 없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여럿이 함께’라고 쓰고 나서 그 아래에 작은 글귀를 덧붙입니다.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뒤에 생겨난다”고. 그게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갈 길을 그들이 아닌 다른 누가 지시합니까? 리더십보다는 펠로우십이 좋고, 더 나아가 팔로우십이 좋습니다. 그람시가 얘기했듯이 열 사람이 한 걸음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쉽게 변화하리라고 낙관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갇힌 완고한 구조, 완고한 문맥 속에서 여러분처럼 뭔가 고민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자주 만나서 우정을, 음모를 돈독히 하십시오.”


“돌봄과 연대의 사회 위한 상상력”
윤정숙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나눔은 지갑을 열기 전에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마음만 있다면 무엇이든 나눌 수 있습니다. 돈, 시간, 재능, 끼, 좌석, 대화, 지식…. 그런데 다른 것은 익숙할 텐데, 좌석은 어떻게 나눌까요? 좌석나눔하면 떠오르는 이가 있습니다. 지하철 1호선의 연출자인 김민기 씨입니다.

그 분이 뮤지컬 볼 꿈도 못 꿔본 사람들을 위해 매 번 공연마다 250여 좌석 중 10%를 저희에게 기부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3500회 기념 공연은 조승우를 비롯해서 지하철 1호선을 통해 배출된 배우들이 다 나오는 귀한 공연이었는데, 전 좌석을 저희에게 기부했습니다. 그 좌석을 어떻게 배분할까 고민하다가, 그 뮤지컬에 나오는 캐릭터가 노숙자, 성매매여성, 장애인 같은 사람들이라는 데 착안했습니다. 그래서 실제 인천부터 의정부까지 지하철 1호선 주변에 있는 성매매여성 지원단체, 장애인 단체, 노숙자 단체들의 당사자들, 회원, 활동가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200석 넘는 좌석을 채운 이들이 노숙자들, 장애인들이었습니다. 성매매 여성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열연을 하고 나서, 공연 후 기념 사진을 찍는 순서가 있었습니다다. 사진 찍는다고 하면 대개 '사진 찍고 싶은 이들 앞으로 나오세요'라고 할 텐데, 그 때는 '사진 찍습니다'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김민기를 비롯해 30명의 배우들이 일제히 관객 속으로 들어가서 빈 좌석에, 통로에 앉아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관객들이 돌아가기 위해 일어서자 그 30명의 배우들이 다 나가서 장미꽃 한 송이와 백설기 하나씩을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좌석을 나눴을 뿐 아니라 만남부터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나눔의 마음으로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신문의 작은 1단 기사가 저희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영감을 줍니다. 몇 년 전 신문을 보니 전기세를 못내 전기가 끊겨서 두 남매가 촛불을 켜고 시험공부를 하다가 화재로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조사를 했더니 3개월간 전기세를 못 내면 전기를 끊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너지권은 인권이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모금을 했는데 엄청난 기부금이 밀려왔습니다.

올 3월에 허름한 복장의 아저씨가 찾아오셨습니다. 3년 전에 마장동에서 큰 정육점을 했는데 소고기 파동이 나서 한 순간에 전기세도 못 낼 정도로 정육점이 망했었다고 합니다. 오늘 죽을까 내일 죽을까 하던 절망적인 때 아름다운 재단에서 240만원의 전기세를 지원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매월 30만원씩 기부하겠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너무 많다고, 20만원으로 줄이자고 하자, '그렇지 않습니다. 그 때 240만원이 없었으면 저는 다시 일어날 수 없었을 겁니다'라고 고집을 꺽지 않으셨습니다. 수혜자를 기부자로 다시 만나게 됩니다.

재단에서는 공익제보자에 대한 시상을 합니다. 얼마 전 해군의 한 장교가 정부 기관 여러 곳에 군납비리를 제보한 적이 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와 국방부에서 비리 사실을 확인까지 했는데도 문책도 시정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MBC PD수첩에 제보해 방송이 나갔습니다. 이 분이 압도적으로 지지받아 공익상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그런데 수상 사실을 전했더니 그 분 말씀이 '영광이지만, 저는 지금 처벌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처벌을 기다리는 사람이 상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라는 것입니다. 그 분이 처벌받는 이유가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MBC에 제보했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당신이 처벌받는 바로 그 이유로 우리가 상을 주는 것'이라고, '당신이 받지 않더라도 우리는 상을 줄 것'이라고 했더니 ‘상을 받아도 되는지 상부에 물어보겠다’고 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상을 줄 수 있는 것도 공익을 위한 기부자들의 나눔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재단에는 공감이라는 공익변호사 그룹이 있습니다. 이 분들이 받는 급여가 동년배의 30~40%에 불과합니다. 채용공고를 내면 클릭 수는 2천개가 넘지만, 원서는 거의 안 들어옵니다. 여섯 번째 변호사를 뽑는데, 마지막 날 밤에 원서가 하나 왔습니다. 스물아홉 살 나이의 여자 검사였습니다. 면접 때, ‘이제 검사 1년차인데 3~4년간 더 현장 경험하고 오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더니 정색을 합니다. 자기가 너무 기다린 기회라고, 3~4년 지나면 검사들 세계에 동화되어서 이 마음이 사그라들지도 모르니 지금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딱 한 달만 더 생각해보자고 했습니다.

한 달 후에 다시 만났더니 ‘그 동안 딱 한 순간 흔들린 적이 있었습니다. 서울서 할아버지가 내려와 눈물로 마음 바꾸라고 호소하셨을 때 잠깐 흔들렸지만, 지금도 하겠다는 마음에 변화가 없습니다’라며, 1년만 채우고 나올 테니 받아달라고 했습니다. 그 분이 지금 우리와 일하는 장서연 변호사입니다.

잊을 수 없는 기부자가 세 분이 있습니다. 먼저 정신대 출신으로 나눔의 집에 기거하시는 김군자 할머니입니다. 재단이 조그만 월세방에서 막 시작했을 때, 설립했다는 기사가 겨우 신문에 났을 무렵, 전 재산인 5천만원을 기부하신 분입니다. 당신에게는 배움의 열망이 있었다며, 고아원을 퇴소한 아이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써달라고 하셨습니다. 재단의 첫 번째 고액기부자이고, 저희에게는 어머니같은 분이십니다.

재단에 박영미 기금이라고 있습니다. 2006년 어느 날 보험설계사가 찾아왔습니다. 박영미란 사람이 얼마 전에 둘째 아이 낳다가 돌아가셨는데 사망보험의 수혜자가 아름다운 재단이라는 것입니다. 이 분은 30대 후반의 사회복지사였고 남편도 사회복지사였습니다. ‘이 기부를 우리가 받아야 할까? 오히려 지원을 받아야 할 가족인데…’ 싶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가 결국 그 분의 뜻대로 쓰는 것이 그 분을 바로 기리는 것이라고 결론내렸습니다. 이 사연이 전해진 순간 아름다운 재단의 모든 기사 중 가장 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아직도 추모의 댓글이 달리고 있습니다.

사람과 삶을 바꾸는 행위

마지막으로 미연이의 수호천사 기금이라고 있습니다. 미연이가 열 살 때 동네 어른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죽었습니다. 평범한 맞벌이 부부인 미연이 부모님이 아이가 죽은 지 1년만에 재단을 찾아와서 ‘미연이가 이 세상을 살다간 게 10년입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10년밖에 못 산 미연이를 추모하면서 아이가 산 기간만큼 매년 1천만원씩 기부하겠습니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분들이 처음 오셨던 2007년 3월 8일에 그렇게 많이 눈이 내리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 때는 미연이란 이름도 꺼낼 수 없을 만큼 굉장히 고통스러워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기부금 가져오는 날이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하십니다. 나눔에는 추모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기능이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눔은 1회성 자선도 아니고 먹을 것, 입을 것을 채워주는 단순한 기능도 아닙니다. 나눔은 변화입니다. 나눔은 자기 삶을 바꾸고 도움받은 사람의 인생을 바꿉니다. 나아가 소유와 소비의 사회를 돌봄과 연대의 사회로 바꾸는 상상력입니다.”

정리=함께하는 시민학교

정리=함께하는 시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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