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옳다면 소통은?

강상헌의 한자이야기[12]-트일 소(疏) 강상헌l승인2009.12.0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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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疏通)이 문제다. 나의 ‘가나다’가 그 사람의 ‘가나다’와 다른 것이다. 간혹은 삿된 이득을 챙기려는 다른 마음, 곧 사심(邪心)이 여러 불통의 까닭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소통이 매끄럽지 못한 것은 대개 같은 사물에 대해서도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갖는데서 생기는 차이가 부각(浮刻)되는 상황이기 쉽다.

개인 간의 문제라면 대화가 방법이다. 사회나 나라의 문제라면 언론의 기능이 해소책으로 적격(適格)이다. 전제는 쌍방(雙方)이건, 여러 사람이나 조직 사이의 일이건 서로의 진정성에 대해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서로의 논점(論點)이 가진 차이의 의미를 더 진지하게 궁리하는 자세는 기본 전제다.

‘열정으로 설득하면 내 진심을 왜 몰라주겠는가’하는 식의 한국적 소통법은 좋게 말해 전근대적이고, 바로 말해 억지다. 내가 옳다, 나만 옳다는 생각에다, 결과만 좋으면 다 좋다는 위험한 발상이 아직도 우리의 ‘소통문화’다.

우리 사회에만 국한(局限)한 주제는 아니다. 서양 사람들도 역시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다. 이는 그쪽도 소통의 문제가 없지 않다는 반증이다. 민주주의의 궁극적(窮極的) 바탕이랄 수 있는 소통, 앞으로도 오래 큰 화두(話頭)가 될 터다.

소통의 소(疏)자는 그 훈(訓)이 ‘소통할’ 또는 ‘트일’이다. 막힌 것이 해소되어 서로 통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의미의 통(通)과 어우러져 현대 사회의 막강한 어휘(語彙)로 떠올랐다.

원래 임금에게 간(諫)하는 글 상소(上疏)의 뜻이었다. 또 죽은 사람을 위해 부처님 앞의 명부(名簿)에 적는 글이기도 했다. 뜻의 왕래(往來), 의미를 주고받는 것이 전제된 매우 간절한 의사표시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소리요소[성부(聲符)]인 부수자 疋(필 필)과 ‘흐른다’는 의미로 쓰인 '류'가 합쳐진 글자다.

필(疋)은 원래 발[足]을 뜻했던 글자로 ‘필’이라는 발음 말고도 ‘소’라는 음(音)을 가지고 있다. 설문해자는 ‘발이다’라는 뜻의 ‘족야(足也)...’로 시작하여 위는 장딴지를 상형하였고, 아래는 발 지(止)로 구성되었다고 풀었다.

이런 풀이는 지금 서체인 해서체보다는 고문(古文)의 글자 형태를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나중에 옷감이나 가축의 수를 세는 필(匹)과 혼용되면서 원래 발음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줄어든 것이다.

류는 면류관의 늘어진 끈이나 깃발을 뜻하는 글자다. 흐른다는 뜻과 어느 정도 연관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은가?

이런 경우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오늘날의 생각으로 이를 따지고자 하면 문제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글자가 만들어질 당시의 상황으로 살핀다는 마음자세의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물[水]를 뜻하는 氵자가 더해져서 비로소 우리가 오늘날 흐른다는 뜻으로 쓰는 류(流)자로 정착한 것이다.

반대의 뜻을 가진 단어로는 험하다, 막히다는 뜻의 조(阻)자가 있다. 많이 쓰는 단어는 아니지만 사이 뜰 격 자(字)을 붙여 만든 조격(阻隔)이란 말이 있다. 소통이란 단어의 반대 짝이다. 어려우면 쉽게 불통(不通)이라 써도 의미상으로 별 손색을 없겠다.

오고 가고 흐르는 것이 소(疏)인 것을 알겠다. 당연한 얘기지만, 내 뜻, 내 말만 들으라고 하는 것은 소가 아니다. 모두가 ‘내가 옳다’고 목청 높이고, ‘소통’이라며 서로 또 하늘 향해 삿대질 하는 인간들의 모습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다시금 확인할 필요가 있다. 진리에는 예외가 없다. 권력이나 학문 등으로 남 앞에 선 이들에게 더 가혹한 것이 진리다.

*<시민사회신문> 한자교육원 예지서원 홈페이지(www.yejiseowon.com)

트일 疏자의 전문(篆文)
토막해설-트일 소(疏)


뜻 요소[形符] '류'와 소리 요소[聲符] 필(疋)이 합쳐진 형성문자다. 성부 필의 요즘 발음과 달리 원래 발음은 ‘소’이며 장딴지 아래 발을 뜻하는 글자였다. 소(疏)는 발의 오고 가는 역할까지를 보듬은 글자다. 트이다, 상소하다는 뜻 말고도 드물다 성기다 멀어지다는 뜻이 있어 우리 일상에서 자주 쓰인다. 왕따 소외(疏外), 서먹하다 소원(疏遠), 하찮게 여기다 소홀(疏忽), 아내를 박대한다 소박(疏薄) 등이 그것이다. 공간이 트이면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이치다.


강상헌 본사 논설주간․한자교육원 예지서원 원장

강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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