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게 생각하고 좁게 살기

욕망의 굴레 속 진정한 경쟁력이란? 최윤도l승인2009.12.07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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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요괴에 맞선 퇴마술의 일진일퇴

요괴는 두 종류. 세계의 메이저급 요괴와 한국의 생태요괴가 있다. 그리고 종국엔 그 요괴들을 처단할 퇴마전이 기다리고 있다. 우석훈의 새 책인 <생태요괴전>(개마고원)의 소개 글이다.

그런데 저자는 왜 요괴 혹은 귀신들을 불러들였을까? 저자의 말을 빌어본다.

“나는 이제 과학의 세계에 속하는 사람이다. 어릴 때의 나는 드라큘라 백작도 보고, 숲 속에서 플래시를 비출 때마다 나무 사이로 달아나는 숲의 정령도 보고, 개나리꽃 너머에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나무귀신도 보았는데, 이제는 내 주위에서 그런 것들을 볼 수 없는, 그런 과학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나는 내가 볼 수 없는 것들을 보는 사람들과, 우리가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른다. 무슨 상관이랴.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 10년간 한국은 그렇게 합리적인 세계가 아니었다.

다만 저자로서, 혹은 여러분보다 먼저 요괴와 귀신들이 사는 세계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이 책을 다 덮을 때쯤이면 여러분들이 최소한 요괴들의 이야기만큼이나 생태에 관해서 더 많이 알게 되기를 바랄 뿐이고, 최소한 이 책의 첫 쪽을 펴기 전보다는 해박해져 있기를 바랄 뿐이다. 좀 더 원한다면, 드라큘라 백작을 평생 추적했던 반 헬싱 교수의 청소년기를 떠올릴 정도로, 귀신들에게 잘 속지 않는 퇴마사의 유년 시절과 비슷한 사람이 되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요컨대, 이 세상 자체가 우리가 믿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합리적이거나 과학적인 것은 아니므로 요괴들과 어울려 이야기판을 한번 벌여본다 해도 그리 이상하진 않을 거라는 말이다.

초일류급 요괴의 대표인 ‘드라큘라’의 예를 들어보자. 저자의 말에 따르면, 드라큘라 백작이 중세 때부터 귀신계를 쥐락펴락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소리고, 지금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의 이미지―날카로운 송곳니로 사람의 목을 깨물어 피를 빨아먹는 검은 망토의 흡혈귀―는 전 세계 경제가 얼어붙었던 대공황 직후인 1931년에 미국 유니버설 영화사의 회심작 <드라큘라>를 통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뒤에 등장하는 프랑켄슈타인 역시 그 시기에 만들어진 괴물이다) 당시 사람들은 왜 이 영화에 열광했으며, 드라큘라 백작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

백작은 이런 왕의 직계 친족보다는 약간 급이 떨어지는 지방 호족을 의미하는데, 대개는 한 지역만을 자신의 봉토로 지배하는 사람들이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경기도지사나 대구시장 혹은 광주시장 정도 되는 셈이다. 그 당시의 맥락에서 보면 백작이라는 지위는 독자적으로 전쟁을 벌일 수 있는 최소 단위였다고 할 수 있다. 백작은 국가를 통치하는 왕은 아니지만, 지역 제후로서 작은 전쟁 정도는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인 셈이다. 그래서 ‘드라큘라 백작’이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는 것이다.

뒤에 등장할 좀비나 프랑켄슈타인 같은 괴물들은 확실히 드라큘라 백작과는 신분이 다르다. 다 고만고만해 보이는 이 기이한 존재들 속에서 드라큘라 백작이 20세기 초반 호러물의 선봉장이 된 것은 다 그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냥 고귀한 신분이 아니라 스스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이 백작이란 게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너무 뻔하지 않겠는가? 20세기, 자본주의라는 공간에서 독자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은 회사, 그것도 작은 중소기업이 아니라 상당히 큰 규모, 쉽게 말해 다국적기업의 사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사장이 무섭나, 노동자가 무섭나? 물론 당연히 사장이 무서울 것이고, 그 무서운 사장의 첫번째 상징으로 백작이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어머, 우리 사장님, 너무 무서워요! 이것이 20세기에 흡혈귀라는 상징이 전면에 나서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여기에서 드라큘라 백작과 기업의 또 한 가지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흡혈귀가 왜 흡혈귀가 되었나?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다. 기업은 왜 이윤이 없으면 작동할 수 없는가? 역시 특별한 이유는 없다. 자본주의라는 사회 자체가 그렇게 구성된 것이다. 마치 흡혈귀가 끊임없이 피를 먹어야 사는 것처럼, 기업 역시 끊임없이 이윤을 먹어야 살 수 있다. 자동차 좀 덜 만들고, 도로 좀 그만 만들고, 화석연료 좀 덜 쓰면 안 되나? 이게 영 쉽지가 않다. 드라큘라 백작에게 피 좀 그만 먹고, 공중도덕도 좀 지키고, 거짓말 좀 그만하라는 말과 본질적으로 그리 다르지 않다. 기업에게 생태 문제들을 생각하면서 이윤을 적당히 추구하라는 말은 얼마나 공허한가.

그렇다고 기업을 없앨 수 있을까? 십자가와 마늘로 통제할 수 있는 흡혈귀와는 달리 ‘이윤 극대화’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기업들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렇다고 드라큘라 왕국에서 살면서,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하고자 하는 기업들이 지구생태계와 지역생태계를 파괴하여 결국 우리 모두가 멸망하게 되는 상황으로 조용히 가게 내버려둘 순 없지 않은가? 좋든 싫든, 우리는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낼 수밖에 없다.

책 후반부에선 한국에만 있는 희한한 요괴인 ‘개발요괴’를 만나게 된다. “아파트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콘크리트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돈을 생각하면 황홀해지고, 경쟁이라는 단어에서 푸근함을 느끼는 ‘경제적 동물’”이 바로 ‘개발요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지난 몇 년간 OECD 국가들에서 ‘다음 세대’들에게 생태교육을 더욱 강화하는 동안 한국에선 어린이들에게 ‘어린이 마시멜로’를 쥐어주고, 재경부와 전경련에서 ‘어린이 경제교실’이라는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중고등학생이 되면 담임요괴가 “지면 죽는다”라고 끊임없이 설교를 하고, ‘엄마에’가 “엄마 말 잘 들어야 착한 사람이지?”라고 속삭이며 ‘정치적으로 무감각한 순둥이’를 길러내고 있다며 신랄한 비판을 쏟아낸다.

그리고 앞으로 10년 정도 지나 전 세계적으로 지속가능한 생태적 경제를 위해 분발해온 선진국들의 젊은이들과 ‘개발요괴’로 길러진 우리의 십대들이 경쟁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며 10대들에게 용기 있고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요청한다. 요괴식 표현을 빌리면, 이런 선택이 바로 ‘퇴마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퇴마술의 요체는 한마디로 ‘넓게 생각하고 좁게 살기’다.

과시적 욕구로 가득 찬 본능, 혹은 마케팅에 의해 급조된 욕망의 지시에 따라 살아가는 삶은 ‘넓게 살기’다. 큰 아파트, 큰 건물, 대형 승용차 같은 것들이 이런 본능 혹은 욕망이 지시하는 방향이다. ‘좁게 살기’는 이와 반대되는 삶의 상징적 표현이다. 예전에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고 말했다. 그는 망했다. 세상은 넓지 않다.

본능이 지시하는 과시적 소비의 욕구를 이기고 좁게 살려면 생각을 아주 많이 해야 한다. 한마디로 ‘넓게 생각하기’가 가능해야 좁게 살 수 있다. 넓게 생각하기란 어떤 것인가? 각자의 삶의 영역에 따라 다를 것이다. ‘좁게 살기’도 해석의 여지가 많다. 적게 먹는다고 라면을 주식으로 먹거나 햄버거 위주의 식사를 하는 것은 ‘싸게 살기’이지, ‘좁게 살기’는 아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좁게 살기 위해서는 아주 넓은 생각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에게 “왜 너는 생태적으로 살지 않니?”라고 야멸치게 쏘아붙이며 잘난 척하라고 좁게 살기를 권하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 높은 빌딩, 큰 차, 열관리 같은 것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해야 개발요괴의 전성기를 극복할 수 있고, 다가오는 ‘희소성의 시대’에도 한국 경제가 무너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독서와 문화, 경험이 ‘넓게 생각하기’의 도구들임을 더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최윤도 두리미디어 기획과장

최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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