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과거 오래된 미래

[이지상의 사람이사는 마을] 이지상l승인2009.12.1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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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에 젖어 ‘선구자’ 그만 부르지?
알고 들으면 가슴 먹먹한 친일노래


제 글에 등장하는 노래가 다 생소하시지요? 무슨 신곡 발표회도 아니고. 사실 저도 부담되요. 여러분들 조실까봐. 그래서 지금 시간에 함께 부를 노래는 진짜 다 아시는 곡으로 골랐습니다. 이거 꼭 다 아셔야 하는데. 자, 제가 반주 할께요. 따라해보세요.

‘엄마가 섬 그늘에/굴 따러 가면/아기가 혼자 남아/집을 보다가….’(노래 ‘섬집 아기’, 한인현 작사, 이흥렬 작곡)

수고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상품이 걸려 있는 퀴즈! 이 노래 제목 다 아시죠? 상품은 없습니다^^ 노래는 <섬 집 아기>입니다. 굉장히 좋은 노래죠. 민중적 서정성을 이만큼 잘 담은 노래가 사실 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노래를 작곡하신 분이 누군지 아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이흥렬이라는 분이죠.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하는 <어머니의 마음>, 군대 갔다 오신 남자 분들이 다 아시는 노래죠, <진짜 사나이> 같은 노래들도 작곡을 하신 분이니까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노래를 아주 다수 작곡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일제 시대 때는 뭘 하셨을까요?

‘진짜 사나이’ 작곡가는?

‘대화악단’이라고 있습니다. ‘대화’(大和)는 일본의 다른 말이죠. 지금은 일본의 우익들이 주로 쓰는 말입니다. 그 사람들이 들고 있는 깃발을 보면 주로 ‘대화혼’이라고 적혀 있잖아요. 1944년에 대화악단이 만들어 졌는데, 이흥렬이 여기서 지휘를 맡아서 했어요. 그런데 그냥 지휘를 한 게 아니에요. 이분은 피아니스트에요. 피아노가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 누비고 다녔죠.

이 악단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악단이 만들어진 목적이 뭐겠습니까? 음악으로 천황에게 보국하자는 거죠. 이 당시가 태평양전쟁 시절이죠. 학도병으로 가고, 전시 물자를 대고, 내선일체(內鮮一體)하고, 멸사봉공(滅私奉公)하는 자세로 황국의 신민이 되자는 내용들을 음악으로 전달하는 악단의 지휘자로 혁혁한 공을 세우신 분이죠. 그래서 친일인명사전에 이번에 등재가 됐는데, 이흥렬은 친일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노래 가운데 우리가 지금도 그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 작품들이 꽤 있거든요. 홍난파 작곡의 <봉선화>에 관한 의미의 변절은 이미 회자 된 바가 많아서 생략 하겠습니다만.

그래도 궁금하시면 딱 두음절로 정리하죠. 여러분들의 ‘숙제’. 2009년이 시작되는 첫날 제야의 종이 울린 다음에 ‘MB OUT' 구호 소리는 다 잘리고, 서울시합창단이 부른 2009년 새해를 여는 첫 노래, 그게 <희망의 나라로>였습니다. 이 노래를 작곡하신 분은 현제명 선생입니다. 이 양반은 친일을 조금 오래 하셨어요. 원래 성악가여서 주로 공연을 많이 하셨고요. <전송>, <후지산을 바라보며> 같은 곡도 쓰셨고, 경성후생 실내악단의 2대 이사장을 지냅니다. 악단의 목적은 대화악단과 똑같죠.

“학도병으로 전쟁에 참여해라”, “징용에 나가라”, “정신대에 나가라” 하는 얘기들을 했죠. 이 악단의 이사장이 되기 한해 전엔 경성음악 연구원의 대표를 지내는데, 이 단체는 해방 후에 뭐가 됐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이 됐습니다. 현제명의 친일 행적은 대단히 뚜렷하죠. <희망의 나라로>는 1931년에 나온 <현제명 작곡집>에 실려 있는 노래니까,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만들어진 의미야 어쨌든 간에 그 이후에 현제명은 철저하게 일본인으로 살았거든요.

자기 민족을 탄압하는 존재가 됐다면, 그 이후에 이 노래가 불렸을 때 “배를 저어 가자 험한 바다 물결 건너 저편 언덕에”에서 ‘저편 언덕’은 어디일까요?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 찬 곳 희망의 나라로”에서 ‘희망의 나라’가 어디일까요? 그때는 내선일체의 사회였고 현제명은 자신이 본국 사람, 일본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을 했죠. 태평양전쟁 시절이니까 아마도 그 ‘희망의 나라’는 정복의 개념에서 미국, 아메리카가 아니었을까요?

또 있습니다. 학교에서 소풍을 가 가지고 학생들이 선생님한테 막 노래를 시키면요, 나이 지긋하신 선생님이 정말 노래 못한다고 막 빼다가 “내가 아는 레퍼토리는 딱 두 곡밖에 없어” 하시는 분들이 있죠. 그 중에 한 곡이 애국가, 나머지 한 곡이 <선구자>. 그러면서 <선구자>를 막 불러요. 그러면 학생들이 시큰둥하게 있다가 정성 봐 가면서 박수 쳐 주고 그러죠.

우리가 알고 있는 <선구자>라는 노래의 의미는 이런거죠 ‘만주 벌판에서 풍찬노숙하며 싸웠던 조선 독립군의 기개를 나타낸 노래.’ 지금도 MBC합창단 ‘가곡의 밤’ 같은 거 하면 <선구자>를 멋지게 편곡해 가지고 쫙 때리고 그러죠. 사람들은 막 감동받고. 용정 가보신 분 계시죠? 거기서 뜨겁게 양 손을 잡고 “우리 선구자 부릅시다” 하면 만주 독립군의 기개를 생각하면서 눈물 뚝뚝 흘리는 분들이 계시죠.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독립군의 기개를 한껏 느끼고 옵니다.

그런데 과연 이 노래가 만주 독립군의 기개를 다룬 노래인가요? 1931년에 만주사변이 일어납니다.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이라는 개념이 조선반도로는 성에 차지 않으니까 이른바 ‘류탸오거우(유조호)사건’이라고 관동군이 만주에 있는 철도를 하나 훼손해 놓고 “니들이 했지?” 하면서 확 치고 들어가요. 그래 가지고 여기 괴뢰 정부를 세워서 완전히 일본 땅이 됐죠. 영화 <마지막 황제>에 나오는 그 사람, 푸이 황제. 실권은 전혀 없는 그 사람을 황제로 세우고 모든 실권은 관동군이 장악하거든요.

여기에 학교도 세우고 군관학교도 세웁니다. 그 군관학교의 가장 우수한 졸업자가 박정희 대통령이죠. 그리고 만주국의 관리를 키워 내는 ‘대동학원’이라는 학원을 세웁니다. 그런데 이곳의 가장 우수한 졸업자는 바로 최규하 대통령입니다. 우리 전직 대통령 두 분께서 만주국 출신이시죠. 이걸 자랑삼아 얘기를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주국의 우수 졸업자

<선구자>를 작곡한 조두남선생의 회고에 따르면, 만주사변이 일어났을 때 용정에 있는 여인숙에 있었는데 윤해영이라는 시인이 조선 독립군의 기개를 나타내는 노래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답니다. 그러면서 가사가 적힌 원고 뭉치를 딱 주고 갔대요. 그래서 나온 노래가 원래는 <룡정의 노래>였는데 그 노래가 해방 이후에 알려지는 과정에서 <선구자>가 됐습니다.

1991년에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맺고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기 시작하잖아요. 그러다가 2003년엔가 중국에서 어떤 분이 오셔서 증언을 했죠. ‘고려악극단’이라는 데서 기타를 치던 김종화라는 분인데, 고려악극단이 무엇을 했는가부터, 조두남이 무슨 일을 했는가 까지 낱낱이 다 얘기를 하시죠. 고려악극단은 만주국에 있었던 경생후생실내악단 같은 단체입니다. 일본이나 다름없는 만주국에 충성을 다하자는 선전대 역할을 했던 고려악극단의 단장이 조두남이었습니다. 조두남의 회고록에 보면 윤해영이라는 사람을 그 뒤에는 못 만난 것으로 돼 있거든요. 하지만 1943년부터 조두남과 윤해영은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작품을 만든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럼 윤해영이라는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냐? 일본의 관변 단체인 ‘협화회’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특히 만주는 ‘오족협화회’라는 단체를 만들어요.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침략적인 개념이 들어 있는 오족 협화회는 철저하게 만주국의 관변 단체죠. 윤해영이라는 사람은 이곳의 간부였어요. 적극적인 친일 단체의 간부였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명확해지는 것 아닙니까? ‘선구자’는 당연히 만주 벌판에서 활약하던 조선 독립군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만주국건설을 위해 애쓰는 친일 세력들, 또는 일본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이 자명해지는 거죠.

우리가 정말 잘못 이해하고 있던 노래죠. 그러니까 나중에 혹시 용정에 가시게 되면 제발 손잡고 <선구자> 부르면서 눈물 흘리지 말아 주세요. 그곳은 친일 말고도 애국의 전통이 살아넘치는 곳이니까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의 친일 행위는 비교적 최근에 연구가 됐습니다. 독일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며 음악을 공부하는 분이 안익태가 작곡한 <만주 환상곡>을 만주에서 직접 지휘하는 동영상을 찾아냈죠. 난리가 났습니다. “애국가를 쓰신 분인데 무슨 친일이냐. 이게 말이 되냐” 하는 반응도 나오고, 처음부터 아주 조심스럽게 제기가 됐습니다. 그러다가 조금씩 연구의 결과들이 쌓여서 지금은 친일인명사전에 오르기까지 한 겁니다.

안익태의 행적도 참 재미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스페인에 가서 살다가 거기서 돌아가시잖아요. 왜 스페인일까요? 그 당시 스페인은 프랑코 정권 아래에 있었습니다. 굉장한 파쇼 집단이죠. <랜드 앤 프리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같은 스페인내전을 다룬 영화를 기억하신다면 프랑코 철권통치를 잘 이해하실 겁니다안익태는 천황을 위한 관현악을 만들었어요. 천황의 즉위식 때 연주하는 ‘에텐라쿠’를 차용해서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에텐라쿠>를 만든 거죠. 그리고 만주국 건설 10주년을 기념하는 <만주 환상곡>을 만들어요.

이 곡 만주에서 직접 지휘도 하죠. 안익태의 스승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도 나치에 부역했던 혐의가 있었습니다. 괴벨스 선전장관 밑에서 음악부장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다른 나라로 못 가잖아요. 그래서 스페인으로 가서 거기서 죽었죠. 스페인에는 ‘안익태 거리’가 있죠. 그게 아마 제 기억으로는 우리말로 ‘안익태’ 거리가 아니라 안익태의 일본 이름인 ‘에키타이 안’ 거리로 되어 있을 겁니다. 나중에 스페인 가시면 한번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 참 답답한 노릇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에텐라쿠>를 만든 그 해에 더블린에서 애국가가 실려 있는 한국 환상곡을 연주합니다. 아주 철철 끊는 조국 독립의 신심이 녹아 있다는데, 아~ 참 답답한 일이긴 하죠. 우리가 매일같이 두 번씩은 들어야 하죠. 텔레비전 켤 때 끌 때. 그런 노래를 그런 분들이 작곡했다니, 새로운 과거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지난 11월8일 친일인명사전 헌정식이 효창공원 내에 김구선생 묘소에서 진행됐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은 이 시대가 품지 못했던 새로운 과거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인명사전에 반대하는 목소리와 행태도 만만치 않습니다. 애초 개최되려 했던 숙명 아트홀 계약이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든가, 행사 시작도 하기 전에 반대 시위에 부딪쳤다던가 또는 친북 인명사전이 더 시급하다던가하는 것들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점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새로운 과거를 딛고 다시 더 새로운 미래로 갈 것인가, 오래된 추억으로만 여겼던 구태를 미래로 둘 것인가는 역시 여러분들이 판단할 몫입니다.


이지상 가수.성공회대 외래교수

이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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